[이성수 교수의 흉부외과 바로알기] 흉부외과 전공의가 중환자 전문의인 이유
[이성수 교수의 흉부외과 바로알기] 흉부외과 전공의가 중환자 전문의인 이유
  • 이성수 강남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교수ㅣ정리·한정선 기자 (fk0824@k-health.com)
  • 승인 2023.04.0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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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수 강남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교수

흉부외과의사들은 중환자실이 너무나 친숙하다. 심장과 폐를 수술한 후에는 그 기능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안정될 때까지 중환자실에서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전공의였을 때는 중환자실 옆에 당직실이 있어 그곳이 삶의 터전이었던 것 같다.

교수들은 외래 진료도 보고 연구도 하는 등 여러 활동을 하지만 전공의는 수술실과 중환자실이 주 활동무대이다 보니 거의 수술복만 입고 지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응급실이나 병동에서 소위 콜이 오면 바로 달려가다 보니 일반근무복이나 사복을 입는 것이 오히려 어색한 것도 이해가 간다.

2019년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일명 전공의법) 시행령이 발표되고 2021년 4월부터는 전공의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예전에는 중환자를 보느라 일주일에 딱 한 번 집에 가는 것이 흉부외과 전공의들의 일상이었으니 주 140시간 이상 근무를 했었는데 전공의법 시행 이후에는 주 80시간까지만 근무해야 하고 연속근무도 36시간을 넘기면 안 된다.

그런데 문제는 전공의법 시행 이후 중환자를 볼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졌다는 것이다.

2021년 통계청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내 사망원인 1·2위는 암 및 순환기질환이며 2020년 심장수술은 2011년 대비 33.8%, 폐암의 대표적 수술인 폐엽절제술은 74.7% 증가했다.

하지만 2022년 전체 흉부외과 수련병원을 기준으로 1‧2‧3‧4년 차에 고루 전공의가 있는 정상적인 수련시스템이 작동하는 병원은 전체의 7.4%인 5개 병원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흉부외과 전공의 수련시스템은 소수병원을 제외하면 이미 무너진 상태이며 흉부외과 의료진의 부족과 특히 중환자실 의료공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물론 필자가 전공의였던 시절과 비교해보면 지금은 수술건수가 비약적으로 늘었다. 또 저침습 수술법(가슴을 크게 열고 수술하던 것에 비해 작게 열고 수술하거나 흉강경 및 로봇수술이 도입)이 주를 이루고 마취 및 수술 술기의 발전 덕분에 수술시간도 단축됐다. 자동봉합기 및 출혈방지제 등 여러 제품이 개발되면서 수술 후 환자 상태도 훨씬 더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일례로 폐암의 대표적 술기인 폐엽절제술 후에는 중환자실에서 상태가 안정되고 나서야 다음날 일반병실로 갔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수술 직후 바로 일반병실로 가고 수술 후 퇴원까지의 입원기간도 7~10일에서 3~4일로 짧아졌다.

모든 환자가 건강한 상태에서 수술하면 좋겠지만 병이 많이 진행된 이후 수술하게 되는 경우 수술범위가 커질 수밖에 없다. 또 고혈압, 당뇨, 간질환, 신장질환, 폐질환 및 심장질환 등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 또는 고령에서는 수술 후 중환자실 관리가 필요하다. 수술 후 일반병실에서 순조롭게 회복되는 듯하다가도 갑자기 상태가 악화돼 중환자실로 내려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러한 중환자들은 병동환자들과 달리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상태를 파악하고 바로바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폐렴, 호흡곤란 등으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는 환자, 신장기능이 떨어져서 간이 혈액투석을 해야 하는 환자, 심장기능이 떨어져서 혈압을 올리거나 에크모(심장과 폐기능을 보조하는 체외순환장치)를 장착한 환자, 수술 후 또는 외상 후 출혈이 많아 수혈하면서 추가 수술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환자 등 다양한 상황의 중환자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활력징후를 판단하는 곳이 바로 중환자실인 것이다.

어찌 보면 외상파트와도 비슷한데 일반 질병과는 달라서 처음 보이는 증상과 문제만 봐서는 안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숨어있던 새로운 증상과 문제가 다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계속 새로운 점을 파악하고 치료계획을 세워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흉부외과를 지원하는 전공의가 부족하다 보니 이러한 중환자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미국의 경우 수술은 흉부외과의사가 담당하고 수술 후 환자가 중환자실로 가면 중환자의학과로 주치의가 변경돼 치료한다. 전문분야를 나누고 분업이 확실히 되는 시스템이다.

우리나라는 이 부분에 있어 과도기에 놓여 있다. 현재 중환자의학을 전공한 전문의는 구하기 힘들 정도로 귀하다. 게다가 내과계중환자와 외과계중환자를 구분해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아직까지는 대부분 해당 과에서 중환자관리를 맡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수련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전공의 과정에서의 중환자관리는 바이탈 사인을 집중적으로 파악하는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병원생활을 돌아볼 때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는 환자로부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인사를 받을 때인 것 같다. 중환자실에서 밤을 꼬박 새우며 불안정한 환자상태를 지켜보고 고민해서 약을 조절하고 적절한 시술을 통해 환자가 좋아져서 일반병실로 가면 또 다른 중환자를 보느라 그 환자를 잊게 된다.

하지만 퇴원 후 외래에서 누군지도 못 알아볼 정도로 말끔한 모습으로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들을 때, ‘아! 내가 환자에게 도움이 됐구나. 내가 그래도 잘하고 있었구나’라는 뿌듯함과 보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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