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환장지경(換腸之境)인 희귀질환치료제 급여
[기자의 눈] 환장지경(換腸之境)인 희귀질환치료제 급여
  • 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23.12.14 17: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원국 기자
이원국 기자

‘행복하다고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행복은 결코 오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행복이란 내일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 내일을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미래의 행복은 사치가 돼버린다.

기자는 의료·제약을 담당하고 있다. 6년이 넘게 펜대를 쥐고 있지만 쉽사리 써지지 않는 주제가 있다. 바로 ‘희귀질환’이다. 지난 3여년간 [극복해요! 희귀질환]이란 코너를 연재해왔다. 수많은 환자와 얘기를 나눴고 그중에는 작고하신 분들도 있다. 쓰면 쓸수록 지쳐갔다. 마치 내 안의 무언가가 깎여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들을 동정해서는 아니다. 희귀질환자들과 가족들은 누구보다 단단한 마음을 갖고 있다. 어쭙잖은 의용과 의로움이 스스로를 좀먹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희귀질환치료제 급여는 경제성평가보다 발병 시점, 즉 나이에 큰 연관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희귀질환의 80%는 소아에게 발병한다. 이런 까닭에 ‘희귀질환=소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희귀질환은 젊은층·중장년층·고령층 등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지난해와 올해 보험급여에는 많은 희귀질환치료제가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대부분 소아에게 발병하는 희귀질환치료제였다.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 심근병증(이하 ATTR-CM)’을 예로 들겠다. ATTR-CM은 일종의 심장근육병인데 주로 65세 이상 고령환자에서 발병한다.

ATTR-CM은 트랜스티레틴(TTR)이라는 혈액 속 혈장단백질이 원인이다. 트랜스티레틴은 간에서 만들어지는 단백질로 혈액 속 갑상선호르몬인 티록신(T4)과 레티놀 결합 단백질을 운반하는 일종의 ’수송선‘이다. 트랜스티레틴은 4개의 입자가 결합된 혈장단백질인데 어떤 이유로 결합과정에 문제가 생겨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분리돼 장기에 침착, 결국 심장근육에 영향을 미쳐 ATTR-CM이 발생한다.

ATTR-CM의 치료제는 한국화이자제약의 ‘타파미드스(빈다맥스)’가 유일하다. 한국화이자는 당시 타파미드스의 첫 번째 급여 도전에 나서며 필수의약품 지정을 시도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2021년 상반기 위험분담제(RSA)를 통해 두 번째 급여 도전에 나섰지만 이 역시 실패했다. 세 번째 급여 도전 역시 급여기준이 설정됐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제위) 비급여 결정 요인은 크게 세 가지다. ▲티파미드스의 임상적 개선 정도가 질환의 유형 및 단계에 따라 달라지고 이를 분석할 만큼의 환자 수, 관찰기간을 가진 연구가 없다는 것 ▲불확실성을 고려해 위험분담소위원회에서 초기 치료 전액 환급형, 이후 단순 환급률 환급형 및 총액 제한형 등을 제시했지만 제약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 ▲경제성 평가결과 타파미드스가 비용효과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약가협상에 관한 한국화이자제약의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약제위의 결정요인에는 문제점이 많다. 현재 ATTR-CM의 치료제는 타파미드스외에는 전무(全無)하다는 점. 또 희귀질환은 경제성입증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파브리병 역시 마찬가지다. 파브리병은 효소결핍으로 인해 생기는 리소좀축적질환 중 하나다.

파브리병은 알파 갈락토시다제 A라는 효소가 부족해지면서 당지질(GL-3)이 분해되지 못하고 여러 세포에 축적되면서 발생하는 유전질환이다. 몸 곳곳에 쌓이기 때문에 피부부터 신경계, 심장, 전신까지 다양한 증상을 유발한다. 무엇보다 진행성질환으로 조기에 진단받고 치료하지 않으면 심장, 신장 등 주요 장기가 손상돼 결국 생명을 위협하는 다양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파브리명의 정확한 통계는 어렵지만 국내 200~250여명 정도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파브리병 치료에는 다케다제약의 ‘아갈시다제 알파(레프라갈)’와 사노피의 ‘아갈시다제베타(파브라자임)’ 등 효소대체요법이 사용된다. 하지만 효소대체요법은 2주에 한 번 정맥주사로 진행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다행히 최근에는 환자의 복용편의성을 높인 경구치료제가 출시된 상태다. 한독의 ‘미갈라스타트(갈라폴드)’다. 이틀에 한 번씩만 복용하면 된다. 2021년에는 급여기간이 60일까지 확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미갈라스타트는 약물효과가 있는 변이형에 해당하면서 효소대체요법을 1년 이상 받은 환자만 급여로 처방받을 수 있다. 효소대체요법을 우선 시도하고 일부 환자에 한해 미갈라스타트를 2차치료제로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세상 어느 누가 아프고 싶을까. 희귀질환자들이 일상에서 겪는 통증을 단 하루라도 겪어본다면 정부는 차별화된 전략을 세웠을 것이다. 희귀질환자들은 본인의 통증을 이해달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다. 사람답게 남들처럼 일상을 영위하고 싶어할 뿐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에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이 필요한 시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