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다고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행복은 결코 오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행복이란 내일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 내일을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미래의 행복은 사치가 돼버린다.
기자는 의료·제약을 담당하고 있다. 6년이 넘게 펜대를 쥐고 있지만 쉽사리 써지지 않는 주제가 있다. 바로 ‘희귀질환’이다. 지난 3여년간 [극복해요! 희귀질환]이란 코너를 연재해왔다. 수많은 환자와 얘기를 나눴고 그중에는 작고하신 분들도 있다. 쓰면 쓸수록 지쳐갔다. 마치 내 안의 무언가가 깎여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들을 동정해서는 아니다. 희귀질환자들과 가족들은 누구보다 단단한 마음을 갖고 있다. 어쭙잖은 의용과 의로움이 스스로를 좀먹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희귀질환치료제 급여는 경제성평가보다 발병 시점, 즉 나이에 큰 연관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희귀질환의 80%는 소아에게 발병한다. 이런 까닭에 ‘희귀질환=소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희귀질환은 젊은층·중장년층·고령층 등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지난해와 올해 보험급여에는 많은 희귀질환치료제가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대부분 소아에게 발병하는 희귀질환치료제였다.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 심근병증(이하 ATTR-CM)’을 예로 들겠다. ATTR-CM은 일종의 심장근육병인데 주로 65세 이상 고령환자에서 발병한다.
ATTR-CM은 트랜스티레틴(TTR)이라는 혈액 속 혈장단백질이 원인이다. 트랜스티레틴은 간에서 만들어지는 단백질로 혈액 속 갑상선호르몬인 티록신(T4)과 레티놀 결합 단백질을 운반하는 일종의 ’수송선‘이다. 트랜스티레틴은 4개의 입자가 결합된 혈장단백질인데 어떤 이유로 결합과정에 문제가 생겨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분리돼 장기에 침착, 결국 심장근육에 영향을 미쳐 ATTR-CM이 발생한다.
ATTR-CM의 치료제는 한국화이자제약의 ‘타파미드스(빈다맥스)’가 유일하다. 한국화이자는 당시 타파미드스의 첫 번째 급여 도전에 나서며 필수의약품 지정을 시도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2021년 상반기 위험분담제(RSA)를 통해 두 번째 급여 도전에 나섰지만 이 역시 실패했다. 세 번째 급여 도전 역시 급여기준이 설정됐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제위) 비급여 결정 요인은 크게 세 가지다. ▲티파미드스의 임상적 개선 정도가 질환의 유형 및 단계에 따라 달라지고 이를 분석할 만큼의 환자 수, 관찰기간을 가진 연구가 없다는 것 ▲불확실성을 고려해 위험분담소위원회에서 초기 치료 전액 환급형, 이후 단순 환급률 환급형 및 총액 제한형 등을 제시했지만 제약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 ▲경제성 평가결과 타파미드스가 비용효과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약가협상에 관한 한국화이자제약의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약제위의 결정요인에는 문제점이 많다. 현재 ATTR-CM의 치료제는 타파미드스외에는 전무(全無)하다는 점. 또 희귀질환은 경제성입증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파브리병 역시 마찬가지다. 파브리병은 효소결핍으로 인해 생기는 리소좀축적질환 중 하나다.
파브리병은 알파 갈락토시다제 A라는 효소가 부족해지면서 당지질(GL-3)이 분해되지 못하고 여러 세포에 축적되면서 발생하는 유전질환이다. 몸 곳곳에 쌓이기 때문에 피부부터 신경계, 심장, 전신까지 다양한 증상을 유발한다. 무엇보다 진행성질환으로 조기에 진단받고 치료하지 않으면 심장, 신장 등 주요 장기가 손상돼 결국 생명을 위협하는 다양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파브리명의 정확한 통계는 어렵지만 국내 200~250여명 정도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파브리병 치료에는 다케다제약의 ‘아갈시다제 알파(레프라갈)’와 사노피의 ‘아갈시다제베타(파브라자임)’ 등 효소대체요법이 사용된다. 하지만 효소대체요법은 2주에 한 번 정맥주사로 진행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다행히 최근에는 환자의 복용편의성을 높인 경구치료제가 출시된 상태다. 한독의 ‘미갈라스타트(갈라폴드)’다. 이틀에 한 번씩만 복용하면 된다. 2021년에는 급여기간이 60일까지 확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미갈라스타트는 약물효과가 있는 변이형에 해당하면서 효소대체요법을 1년 이상 받은 환자만 급여로 처방받을 수 있다. 효소대체요법을 우선 시도하고 일부 환자에 한해 미갈라스타트를 2차치료제로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세상 어느 누가 아프고 싶을까. 희귀질환자들이 일상에서 겪는 통증을 단 하루라도 겪어본다면 정부는 차별화된 전략을 세웠을 것이다. 희귀질환자들은 본인의 통증을 이해달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다. 사람답게 남들처럼 일상을 영위하고 싶어할 뿐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에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