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해요! 희귀질환] 세계 희귀질환의 날, 어쩔 수 없는 아픔이 빠른 ‘어른’을 만든다
[극복해요! 희귀질환] 세계 희귀질환의 날, 어쩔 수 없는 아픔이 빠른 ‘어른’을 만든다
  • 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24.02.2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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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범희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희귀질환자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사회적인 관심이 부족하다 보니 희귀질환자들은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제대로 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희귀질환자들의 고통분담을 위해 ‘희귀난치성질환자 산정특례제도’를 발표했지만 아직도 실질적인 지원이 많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이에 헬스경향은 희귀질환자들의 진단과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극복해요! 희귀질환’이라는 기획기사를 마련했습니다. <편집자 주>

이범희 교수는 “보호자 중 한 명이 상시 아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경제활동이 제한된다”며 “산정특례로 인정되는 질환들도 많지만 비보험 항목들에 대한 부담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토로했다.
이범희 교수는 “보호자 중 한 명이 상시 아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경제활동이 제한된다”며 “산정특례로 인정되는 질환들도 많지만 비보험 항목들에 대한 부담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토로했다.

“아직 어리디 어린 열일곱 소년은 너무 빨리 늙어가는 자신의 겉모습처럼 그렇게 원치 않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에 수록된 문구다. 이 책은 조로증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17살의 아름이의 이야기다. 빨리 노화가 일어나는 조로증 때문에 아름이는 17세의 신체가 아닌 심하게 늙은 모습으로 삶을 살아간다.

책은 ‘내가 원하고 꿈꾼 대로 삶이 흘러가지 않아도 그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독자에게 던진다.

희망과 절망, 노력과 실패, 기대와 실망…인과관계처럼 나열된 이 단어들은 멀리서 보면 인생을 대변한다. 하지만 ‘희귀질환자’들은 이 애환을 매 순간 겪는다.

헛된 희망을 너무 많이 겪어서일까. 어렸을 때부터 희귀질환을 앓아온 환아들은 그렇게 너무 빨리 어른이 돼버린다.

“신경형고셔병환아가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선물을 줬다. 미국 연수기간 동안 아이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그 종이비행기를 아직도 연구실에 보관하고 있다.”

차분한 목소리에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이 질환을 겪는 것은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는 그의 말.

2월 29일은 ‘세계 희귀질환의 날’이다.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희귀성에 착안해 제정됐지만 길고 혹독했던 겨울을 넘어 희귀질환자들에게도 청춘(靑春)이 오길 바라는 맘이 담겨 있을 거라 믿는다. 이범희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와 ‘희귀질환 치료환경’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 국내 희귀질환 종류와 환자수는.

2021년 기준으로 등록된 국내 전체 희귀질환자는 5만5874명이다. 국립보건원(NIH)에 따르면 지금까지 알려진 희귀질환 종류는 대략 7000가지 정도다. 이중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하거나 증상 조절이 가능한 질환은 5% 정도다.

- 희귀질환자가 늘고 있다. 진단기술의 발달 때문인지 실제로 환자가 증가한 것인지.

진단기술의 발달로 진단율이 크게 상승했다. 과거에는 알려지지 않았거나 진단되지 않았던 질환들이 진단기술의 발전으로 새롭게 밝혀지고 있다. 또 치료법이 존재하는 질환의 경우 환자들의 잔단방랑을 방지하기 위해 조기진단 프로그램이 강조되고 있다. 즉 진단기술의 발달뿐 아니라 조기진단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진단율이 증가했다.

- 진단방랑 기간은 다소 단축됐는가.

과거에 비해 진단방랑 기간이 줄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부 환자는 여전히 병이 상당히 진행된 후에 진단을 받는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신생아가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할 정도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으면 광범위한 유전자검사를 시행한다.

- 신생아선별검사를 말하는 건지.

유전자검사와 선별검사는 다르다. 선별검사는 신생아나 소아기에 진단 후 빠르게 치료가 필요한 질환들을 중심으로 한다. 당시 증상이 뚜렷하지 않더라도 빠른 진단과 치료를 바탕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 이 과정에서 발견되는 일부 유전질환들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출생 당시 건강하고 증상이 없는 신생아에게 발달지연 같은 유전질환이 발견돼 가족들에게 알려준다면 정신적 충격을 안겨준다. 이러한 질환들을 선별검사로 가려내는 것이 옳은 행동인지에 대해 논란이다.

반면 유전자검사는 과거 신생아에서 선천적기형, 호흡곤란, 경련, 의식저하 등 임상적으로 의심되는 질환들을 순차적으로 검사하던 것과 달리 한 번의 검사로 여러 유전질환을 신속하게 진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현재 희귀질환에 주로 사용되는 진단법은.

현재 국내에서 많이 활용되는 유전질환진단법에는 ▲염색체 마이크로어레이검사(CMA) ▲NGS 유전자 패널검사 ▲전장엑솜분석 ▲전장유전체분석(WGS) 등이 있다.

선천적기형이나 발달지연이 있을 경우 염색체 마이크로어레이검사가 일차적으로 고려된다. 발달지연, 심장질환, 운동장애 등은 NGS 유전자 패널검사가 활용되며 두 검사법은 현재 모두 급여가 적용되고 있다.

- 희귀질환을 진단받으면 충격이 클 텐데.

유전질환진단을 받은 환자는 암진단과 유사한 충격을 받는다. 암환자에서 거부, 우울감, 투시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유전질환환자도 유사하다.

전반적인 원칙은 ‘사실’을 기반으로 전달한다는 것이다. 환자와 보호자의 성향과 심리상태를 살펴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호자마다 다르지만 최대한 객관적인 내용을 원하거나 희망적인 메시지를 기대하는 경우가 있다. 보호자의 성향을 고려하되 희망고문을 하는 것이 아닌 사실에 기반해 전달하고자 노력한다.

- 최근 유전질환 분야의 전문인력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에는 의사, 외래 간호사, 유전질환에 대해 전문지식을 갖춘 유전질환 특화 전문간호사, 기초연구 담당 연구원, 임상연구를 조정하는 코디네이터 등 다양한 직종의 유전질환 전문가들이 있다.

특히 서울아산병원은 유전상담사를 통해 유전질환 의심 환자 및 가족에게 전문 상담을 제공한다. 진료 전 가족력을 바탕으로 유전질환을 파악하고 검사와 진단 전·후에도 전문 상담을 받을 수 있다.

- 유전상담사는 생소한 직종이다.

희귀질환을 진단받은 환자와 보호자는 진단 직후 정신적 충격을 받은 상태다. 따라서 진료를 통해 충분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전문 상담사를 통해 환자에게 필요한 정서적 지지와 필요한 의료정보와 국가지원제도 등을 제공한다. 다만 상담에 긴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많은 환자에게 제공하기 어렵다는 점이 아쉽다.

- 유전상담사에 관한 국내 규정이 있는가.

유전상담사는 아직 공식적인 의료서비스 직종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유전상담사를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국내에는 공식적인 인증제도가 없어 대한의학유전학회에서 대학원 졸업자를 대상으로 시험을 주관해 자격증을 발급하고 있다.

또 공식적인 제도가 없어 관련된 부작용들도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면 병원에서도 공식적으로 의료인력으로 채용이 어렵다. 또 약식 교육으로 자격을 배포하거나 임의로 서비스를 유료화하는 등의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 희귀질환자 중 아동이 많은 만큼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

보호자 중 한 명이 상시 아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경제활동이 제한된다. 이로 인해 가정소득이 감소한다. 환아의 의료비는 고정지출이기 때문에 가정 경제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산정특례로 인정되는 질환들도 보험항목은 본인부담금이 10%로 감액되지만 비보험 항목들에 대한 부담이 여전히 남아있다.

- 희귀질환자들을 위해 정부가 산정특례제도를 제정했는데.

산정특례제도는 정부가 소수의 희귀질환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했다. 하지만 점차 대상 질환이 점차 확대되면서 정부에서 부담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산정특례 기준 설정에 있어 형평성과 공정성은 경제적인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현재의 산정특례제도는 건강보험이라는 한정된 예산 안에서 운영되고 있다. 특히 고가의 치료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공적 기금 조성과 사회적 기여 등으로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조성해야 한다.

- 아직까지 많은 환자들이 산정특례에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

희귀질환자들을 위한 대표적인 제도가 산정특례라고 볼 수 있는데 해당 제도에 포함되지 못한 희귀질환 환자들을 위한 해결책과 전략수립이 필요하다. 진단 검사의 보편화는 다행이지만 아직까지 많은 환자들이 산정특례에 포함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안타깝다.

또 희귀질환이 아닌 신생아에 대해 무분별한 유전자 및 염색체검사를 지양해야 한다. 최근 임신·출산 바우처가 신생아 유전자검사에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중요 질환에 대해 국가에서 진행하는 선별검사 외에 건강한 신생아에서 무분별한 유전자검사는 불필요하다.

- 희귀질환에 대한 편견은 여전한지.

희귀질환에 대한 인식은 과거에 비해 개선됐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 편견과 같은 부정적 인식이 남아있어 질환을 숨기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언제 아이에게 질환을 알려야 할지 고민한다. 일부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노출시킨다. 반면 비밀로 유지하는 경우도 많다. 또 외모에 민감한 국내 특성상 유전질환으로 인한 외모변화나 작은 키 등은 주변의 놀림과 우울감 등 부정적인 상황을 불러와 정서적으로 더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

- 치료제가 없는 환자들은 어떤 치료를 받는지.

대증요법으로 증세완화만 지속한다. 대표적으로 발달지연 아동이다. 아직 질환에 대한 치료제가 없고 재활치료가 최선이다. 하지만 재활치료의 상당 부분이 비보험 항목이기 때문에 국가의 지원이 더 필요하다.

- 기억에 남는 환아가 있는지.

다운증후군환아에게 받은 편지가 기억에 남는다. 다운증후군은 특별한 치료법이 없어 아이가 태어난 이후 연령대별로 건강상태를 확인해왔다. 아이가 10살쯤 됐을 때 감사의 편지를 전해줘 기억이 남는다.

또 다른 환자는 다소 치명적인 희귀질환이었다. 긴 진단 과정 이후 특별한 치료법이 없어 지역 병원으로 이송하게 되는 과정에서 서운함을 많이 토로했다. 하지만 현재 건강한 아이를 순산한 후 병원에 대한 서운함이 사라졌다고 한다.

- 희귀질환 진단과 치료에도 인공지능(AI)이 활용되는가.

물론이다. 저 역시 AI를 활용한 진단기술 개발에 참여한 경험을 갖고 있다.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환자의 증상에 따라 진단가능성이 높은 유전자변이를 매칭하는 단계가 매우 짧아져 신속진단에 큰 도움이 된다. 또 최근에는 신약개발 분야에서도 타깃 물질의 기능을 억제 혹은 활성화하는 시뮬레이션에 AI가 많이 활용되고 있다. 하루빨리 상용화가 돼 희귀질환자들에게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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