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영 교수의 꿀잠비책] 부부의 고민…같이 자는 게 좋을까, 따로 자는 게 좋을까
[정기영 교수의 꿀잠비책] 부부의 고민…같이 자는 게 좋을까, 따로 자는 게 좋을까
  • 정기영 대한수면연구학회 회장(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ㅣ정리·안훈영 기자 (h0ahn@k-health.com)
  • 승인 2024.02.22 18: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기영 대한수면연구학회 회장(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한 50대 후반 여성이 잠들기 어렵다고 수면클리닉을 방문했다. 결혼 후 줄곧 남편과 같이 잤는데 그동안 특별한 문제가 없었지만 남편이 나이 들어가면서 점차 자는 시간이 빨라져 최근에는 9시경이면 잠든다고 했다. 본인은 10시가 넘어야 잠이 오는데 9시에 같이 누우면 잠이 안 와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다. 남편이 나이 들면서 수면시간이 빨라진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남편에게 자기는 거실에서 있다가 잠이 오면 들어가겠다고 하니 화를 내면서 안 된다고 해 급기야는 수면제를 먹고 자기도 했다고. 따로 자면 느끼지 않아도 될 불면증을 불필요하게 겪고 있는 것이다.

부부라면 한 침대에서 같은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이 이상적이다. 잠들기 전 일상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친밀감을 확인한 후 자는 것은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는 부부로서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 간 수면자세 선호도, 침실 온도, 수면시간이 다르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자는 것이 쉽지 않다. 심지어 어느 한 쪽이 코골이, 불면증, 하지불안증후군이나 사건수면 같은 수면장애가 있다면 같이 자기 더욱 힘들어진다.

또 다른 사례를 소개하면 40대 중반의 한 남성은 20대부터 심한 하지불안증후군을 겪었다. 자려고 누우면 다리를 가만히 두지 못하고 새벽까지 뒤척이다가 겨우 잠드는 경우가 허다했다. 여자친구를 사귀고 친밀해지려고 해도 같이 잘 수가 없고 이로 인해 관계에 두려움을 갖게 됐다. 그는 결국 결혼까지 포기했다. 필자에게 치료 받으면서 증상은 많이 완화되고 조절되고 있지만 결혼 생각은 아예 접었다고 한다.

미국이나 유럽 교수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서양문화권에서는 부부가 각 방을 쓰는 것은 관계가 아주 나빠진 경우에나 있을 법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때문에 한쪽이 심한 수면문제가 있더라도 참고 견디며 같은 침대를 쓰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수면재단의 2017년도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부부 네 쌍 중 한 쌍이 따로 잔다고 응답했는데 이는 국내 57%에 비해 훨씬 적다. 물론 수면 중 꿈 꾸면서 과격한 행동을 보이는 렘수면행동장애가 있는 남편과 같이 자다 심하게 맞은 한 여성은 침대를 따로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수면건강 측면에서 보면 따로 자는 것은 같이 잘 때보다 수면을 덜 방해받고 자신의 수면 스케줄에 맞게 잘 수 있어 수면의 질이 더 높을 수 있다. 하지만 부부 사이의 애정관계가 멀어질 수 있어 서로 긴밀하게 상의한 후에 결정하는 것이 좋다. 특히 자녀가 아직 어리다면 부부 사이에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아이들이 불안감을 느낄 수 있어 상황을 잘 설명해주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좋다.

커플의 잠자는 자세와 그들의 애정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일부 연구들은 밀접한 신체접촉이나 서로 마주보는 자세 등이 높은 애정수준을 나타낼 수 있다고 한다. 반면 독립성을 중시하는 커플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잘 수도 있으며 이것이 반드시 관계의 부족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각 커플이 서로에게 가장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수면자세를 찾는 것이다.

반려동물과 같이 자는 것이 수면에 도움 될까?

한편 요즘은 많은 집에서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어 이들과 같이 자는 경우도 많다. 10년 전에 비하면 눈에 띄게 많은 반려동물을 이웃들에게서 보게 된다. 2020년 농림축산식품부 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28%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고 한다.

이와 함께 반려동물과 같이 자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이다. 아마도 반려동물이 주인과 함께 있으려고 하는 속성에 기인하는 측면도 있지만 주인이 반려동물에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기 때문에 같이 자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반려견과 같이 자면 안정감을 얻고 불안과 스트레스가 감소하며 이것이 곧 수면에 도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수면에 방해받을 수 있고 알레르기나 감염위험이 있을 수 있다. 일례로 50대 여성분이 반려견과 같이 자는데 자주 깨서 깊이 자기 힘들다고 호소했다. 반려견을 떼어 놓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이 녀석이 절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한다.

필자의 강아지도 절대 혼자 자지 않는다. 다행히 우리 집 마나님은 너무 잘 자서 아무 문제가 없지만 말이다. 이 분의 해결책은 결국은 혼자 자는 것인데 애들이 막무가내이기 때문에 딱히 좋은 해결책이 없어 보인다.

수면에 대한 영향을 살펴보자. 2012년에 호주에서 시행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10%가 반려견과 같이 잔다고 대답했다. 반려견과 같이 자는 경우 홀로 자는 경우보다 침대에서 자는 시간 내지는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같이 자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잠들기까지 더 오래 걸렸고 아침에 좀 더 피곤함을 느꼈다고 대답했다.

미국에서 진행한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사람과 같이 자는 반려견에게 웨어러블 장치를 부착해 3개월간 수면 중 몸의 움직임을 모두 기록해 분석했다. 분석결과 사람의 움직임이 반려견에 영향을 주기도 했지만 반려견이 사람보다 3배나 더 많이 움직이는 것으로 나타났고 실제로 영향을 더 많이 줬다. 다행인 것은 같이 자는 주인의 대부분은 개의 움직임을 느끼지 못했고 잠에 방해를 받는다고 느끼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반려견과 같이 자야 할지 여부는 절대적인 좋고 나쁨의 기준은 없고 개인의 상황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려견과 같이 잘 경우 자신의 수면의 양과 질에 방해를 받지 않는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불면증, 수면무호흡증, 하지불안증후군 및 렘수면행동장애 등과 같은 수면장애가 있다면 같이 자는 것이 자신의 수면장애를 더 악화시키거나 때로는 반려견에게 위협을 가할 수도 있어 피하는 것이 좋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