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영 교수의 꿀잠비책] ‘생체시계’는 우리 몸의 최고경영자
[정기영 교수의 꿀잠비책] ‘생체시계’는 우리 몸의 최고경영자
  • 정기영 대한수면연구학회 회장(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ㅣ정리·안훈영 기자 (h0ahn@k-health.com)
  • 승인 2024.03.07 18: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기영 대한수면연구학회 회장(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아무 때나 먹거나 자지 않고 일정한 시간대에 활동하고 잔다. 대략 24시간 주기로 활동이 반복되는데 이를 ‘일주기리듬’이라고 한다. 일주기리듬은 지구가 24시간 주기로 자전하면서 생기는 낮과 밤에 생명체들이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겨났을 것이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생물은 하루 중 규칙적인 환경변화를 예상하고 이에 맞게 행동한다. 지구 자전주기에 따른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생명체는 진화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됐을 것이다.

식물의 잎은 낮에 펼쳐지고 밤에 접히는 현상이 있다. 햇빛이 나오는 낮에는 광합성을 활발히 해 에너지를 생산하고 저녁에는 입을 닫아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마치 동물의 일주기 활동과 유사하다. 이렇게 모든 생물이 낮과 밤에 따라 활동이 구분된다. 그렇다면 그 원동력은 햇빛에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의문을 품은 과학자가 있었다. 18세기에 프랑스의 천문학자인 장-자크 드 메랑(Jean Jacques d’Ortous de Mairan)은 미모사를 햇빛이 차단된 어두운 곳에 두고 관찰했다. 미모사는 낮에 빛을 전혀 받지 못해도 잎을 활짝 펼쳤고 저녁이 되면 잎을 닫는 행동을 보였다. 이것은 바로 식물의 일주기리듬이 햇빛과 무관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약 200년 뒤인 1960년대에 사람에서도 비슷한 실험이 진행됐다. 2차대전 때 사용하던 지하 벙커에서 한 달간 햇빛을 차단하고 아주 약한 조명(50 룩스)에서 참여자가 하고 싶은 대로 자고 활동하게 하니 햇빛을 보지 못해도 참여자들의 수면과 각성 시간대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이 관찰됐다. 즉 햇빛이 없더라도 이전의 바깥세상에서 생활하던 패턴이 그대로 유지됐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매일 전날보다 1시간 정도씩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패턴을 보였다는 것이다. 즉 하루주기가 24시간이 아니라 이보다 긴 25시간 정도로 나타났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벙커에서 나와 햇빛을 보면서 정상적으로 생활하니 이들의 하루주기가 다시 24시간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미모사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체내에는 햇빛과 무관하게 하루주기를 조절하는 메커니즘이 존재하는 것이 확인됐다. 이 체내 하루주기 조절 메커니즘을 생체시계(biological clock)라고 한다. 이 생체시계의 주기는 24시간보다 다소 길게 나타났는데 햇빛에 의해 다시 24시간 주기로 맞춰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햇빛에 의해 우리의 생체시계 주기가 24시간 주기로 다시 맞춰지는 것을 ‘동기화’라고 한다. 따라서 햇빛을 보지 못하면 우리의 생체시계 주기는 24시간으로 동기화되기 어렵고 우리는 매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습관을 갖게 될 수 있다. 

생체시계는 단지 수면주기만을 조절하지 않는다. 누구나 경험하듯이 사람의 각성수준은 일정하지 않고 하루 중에도 여러 차례 바뀐다. 각성상태(쉽게 얘기해서 정신이 맑은 정도)는 아침에 깨서 오전에 최고조에 달한 후 오후 1~4시경에 일시적으로 떨어지고 이후 잠들기 전까지 상승했다가 잠드는 시간이 되면 급격히 하강한다. 이러한 과정은 24시간을 주기로 반복된다.

졸린 정도는 각성상태와 정반대이다. 즉 새벽 1~6시경에 가장 졸리고 오후 1~6시 사이에 두 번째로 졸린 증상이 나타난다. 바로 이 두 개의 시간대가 교통사고를 비롯한 다양한 산업사고가 잘 발생하는 시간대와 일치한다. 미국에서 연구한 교통사고 데이터에 의하면 사고 발생률(교통량을 고려한 자동차 1대당 사고건수)은 새벽 3시에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이 오후 3시로 나타났다. 졸음운전에 의한 교통사고는 종종 대형사고와 사망사고로 이어진다. 2022년 도로교통공단의 시간대별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률(사고당 사망건수)을 보면 역시 새벽 2~6시 사이에 가장 높게 나타났다.

각성상태뿐만 아니라 감정상태도 일주기변동을 보이는데 졸린 정도와 거의 일치하는 두 개의 피크 패턴을 보인다. 코넬대학의 골더와 메이시 교수는 세계 각국의 5억여개의 트위터 메시지를 분석해 감정의 일주기 변동을 살펴봤다. 긍정적인 감정이나 부정적인 감정 모두 일주기 변동을 보였는데 이는 각성상태의 일주기 변동과 거의 유사했다. 긍정적인 감정은 오전과 저녁에 높았으며 부정적인 감정은 새벽과 오후에 가장 높게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은 주말에는 주중보다 이런 감정의 변화 곡선이 2시간 정도 늦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는 주말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현대인의 생활패턴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며 주말에 늦어지는 패턴은 바로 감정 변화가 생체시계에 의해 조절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런데 생체시계는 수면-각성주기뿐 아니라 호르몬 분비, 소화기능, 면역기능 및 심혈관기능 등 우리 몸의 모든 기능의 일주기리듬을 조절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생체시계는 우리의 하루 건강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이 가장 알맞은 순간에 이뤄지도록 시간을 맞추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몸은 매일 특정한 리듬을 갖도록 프로그램돼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의 체온은 새벽 3~5시에 가장 낮고 늦은 오후에서 초저녁에 가장 높다. 멜라토닌호르몬은 잠들기 2~4시간 전에 분비되면서 우리가 잘 준비를 하게 하고 체온이 최저일 때 농도가 최고조에 달하면서 가장 깊은 잠을 자게 한다.

코르티솔호르몬은 아침에 깨기 직전에 강하게 분비되고 혈압이 상승하면서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공복을 느끼고 식사 후 장운동이 증가해 배변 욕구를 느끼며 오전 10시경 각성상태가 최고조에 달한다. 운동에 대한 민첩성은 늦은 오후에 가장 크게 올라 이때 운동하면 효율이 높고 다칠 확률이 낮아진다. 오후 6~8시에는 체온이 최고조로 오르고 혈압도 가장 높았다가 이후 서서히 떨어지는 추세로 변한다. 한마디로 생체시계는 우리 신체를 조절하는 최고경영자인 셈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