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 교수의 흉부외과 바로알기] 한국 최초이자 최고의 ‘폐이식 드림팀’ 탄생
[이성수 교수의 흉부외과 바로알기] 한국 최초이자 최고의 ‘폐이식 드림팀’ 탄생
  • 이성수 강남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교수ㅣ정리·한정선 기자 (fk0824@k-health.com)
  • 승인 2023.03.07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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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수 강남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교수

필자는 의과대학 4학년 때까지 외과가 메이저 수술과(Major Surgery)라고 믿고 외과를 지망했다. 정규 4학년 과정을 마치고 선택실습이 주어졌을 때 혼자 강남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를 지원해 2주간 의국에서 숙식한 결과 흉부외과야말로 바이탈을 다루는 메이저 외과임을 알게 됐다.

당시 임상과장이셨던 이두연 교수님은 한국 최초로 폐이식을 준비 중이셨다. 연구비가 충분하지 않던 시절, 사비를 털어 꾸준히 실험동물 폐이식을 해오실 정도였다. 하루는 부천세종병원에 폐이식 특강을 가는데 당시 학생이었던 필자에게 함께 가자고 하셨다. 얼떨결에 동행했지만 흉부외과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과 비전을 가까이서 들을 수 있었다.

필자는 의과대학 졸업 후 자연스럽게 신촌이 아닌 이두연 교수님이 계셨던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인턴을 하고 전공의를 시작했다. 마침내 필자가 전공의 1년 차이던 1996년 7월, 폐섬유증으로 호흡곤란이 심했던 환자에게 아시아 최초로 폐이식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환자는 수술 후 순조롭게 회복했으나 바이러스 및 진균감염으로 수술 후 77일째 소천하셨다. 앰뷸런스로 댁까지 모셔다드린 후 병원에 돌아온 뒤 환자를 살리지 못한 무기력함에 통곡하면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식은 다른 치료제가 없는 환자들이 선택하는 마지막 수단이다. 누군가로부터 장기를 기증받아야 하기에 기다리는 사람은 많고 수술건수는 적을 수밖에 없다. 특히 대부분의 폐이식환자는 이식을 받기 전 혹시 자다가 숨이 막혀 죽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 잠 못 이룰 만큼 엄청난 불안감과 절박한 심정으로 살아간다.

다른 장기보다도 폐는 이식이 매우 까다로운 장기이다. 뇌사자 가족이 폐를 기증하려고 해도 수술 시 폐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설사 폐 이식수술이 이뤄지더라도 이식 직후부터 외부 공기에 노출되면서 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균 등 감염 요소와 직접 접촉하는 데다 거부반응을 줄이기 위해 면역억제제를 투여받아 일반인들에게는 별문제 되지 않는 감염위험도 크다.

이 어렵고도 까다로운 폐 이식수술의 문을 연 이가 이두연 교수님이라면 이 영역을 넓히고 안정화시킨 이는 바로 백효채 교수님이다. 백효채 교수님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폐 이식수술을 시행했으며 생존자 또한 가장 많은, 이 분야 국내 최정상 전문의다.

옆에서 전 과정을 지켜본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초창기 환자들이 왜 나빠지는지 잘 몰라 앞이 깜깜했던 시절을 견뎌내고 주말이나 휴일에 연락 오는 모든 수술도 마다않고 정년 때까지 우직하게 수술하신 교수님의 뚝심이 그를 폐이식의 최정상으로 이끈 것 같다.

국내 폐이식수술은 1996년 세브란스병원에서 처음 시행한 후 2009년까지 국내에서 이뤄진 수술건수를 모두 합해도 연간 10건을 넘지 못했다. 그러다 2010년 EBS 명의 프로그램에서 폐 이식이 방영됐고 2011년 가습기살균제에 의한 폐손상환자가 증가하면서 2011년에만 35건이 시행됐다. 이후 수술건수는 빠르게 증가해 2020년 한 해 동안만 150건이 이뤄졌다. 이 중 세브란스병원이 45건을 시행했다. 2010~2020년을 합하면 국내 폐이식 878건 중 세브란스병원은 348건(40%)을 시행했다.

폐이식수술은 다양한 측면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아 의료진의 풍부한 경험과 팀워크가 중요하다. 폐이식팀은 다학제진료를 기반으로 직접 수술을 집도하는 흉부외과 의료진뿐 아니라 장기이식지원센터, 호흡기내과, 감염내과, 순환기내과, 영상의학과, 재활의학과, 중환자실, 마취통증의학과, 간호국, 물리치료실, 사회사업팀, 정신건강의학과 등 폐이식팀에 소속된 이들이 매주 콘퍼런스를 열고 의견을 교환하며 수술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이 폐이식분야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러한 다학제진료에 있다.

사실 흉부외과 전문의 중에서도 폐이식을 전공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주 많은 수술이 아닐뿐더러 응급수술이 많아 밤늦게는 물론 주말, 휴일에 주로 수술하기 때문에 외과의사의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진다. 때문에 미국에서도 폐이식수술을 하는 의사는 미국인이 아닌 외국에서 건너와 정착한 외국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세브란스병원, 아주대병원, 양산부산대병원에서는 이두연·백효채 교수님의 뒤를 이을 제자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폐이식수술을 활발히 하고 있다. 향후 이들이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 폐이식분야를 어떻게 발전시킬지 무척이나 기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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