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 약사가 알려주는 중독성약물 A to Z] 감기약도 다량 복용하면 ‘마약’이 될 수 있다
[배현 약사가 알려주는 중독성약물 A to Z] 감기약도 다량 복용하면 ‘마약’이 될 수 있다
  • 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ㅣ정리·안훈영 기자 (h0ahn@k-health.com)
  • 승인 2023.08.01 18: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현 약국장
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

얼마 전 감기약을 먹고 이상행동을 보인 두 명이 주민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정신을 못 차리는 행동이 분명 마약으로 의심됐다. 이들 중 한 명은 마약 간이검사결과 희미하게 양성, 한 명은 음성이 떴다. 경찰에게 잡혀가는 순간까지 헛소리와 이상행동을 하는 이들. 모든 모습은 CCTV 안에 고스란히 담겼고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전 국민에게 공개됐다. 많은 사람을 경악하게 한 것은 이들이 중학생이라는 것이다.

조사결과 이들은 마약이 아닌 ‘감기약’을 먹은 것이었다. 물론 감기증상 완화를 위해 감기약을 먹은 것은 아니었다. 감기약을 다량으로 먹으면 환각에 빠질 수 있다는 말에 일본 직구사이트에서 구매해 한꺼번에 20알을 복용했다. 감기약을 다량으로 복용한 이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감기약에는 ‘덱스트로메트로판’이 높은 함량으로 들어 있었다.

얼마 전 마약류 단속을 하고 있던 경찰에게 간이약물 제조공장 같은 사진 한 장을 받았다. 공장에는 화학약품과 알약들이 즐비했다. 경찰은 사진 속 알약의 정체를 필자에게 물었다. 알약의 정체는 ‘액티피드정’이었다. 경찰은 액티피드정으로 추측되는 상황에서 확인 차 필자에게 연락한 것이었다. 그는 약 성분이 트리프롤리딘과 슈도에페드린 두 가지임을 약학정보원에서 찾았고 ‘이 약으로 필로폰을 만들려고 시도한 것 같다’며 바로 다음 수사에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액티피드는 콧물, 코막힘 등의 비염과 코감기에 사용하는 일반의약품이다. 사진에 보니 드럼통 같은 곳에 액티피드가 잔뜩 들어 있었다. 일반적으로 약국에서 10정씩 판매하는 약인데 어디에서 저렇게 많이 구할 수 있었을까? 정상적인 구매방법은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감기약이 마약이 되는 것일까?

그런데 어떻게 감기약이 마약이 될 수 있을까? 이는 감기약들 중 일부 성분이 마약과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슈도에페드린과 필로폰의 실제 모습은 다음과 같다.

아마도 약 성분은 들어봤지만 구조식까지 찾아본 독자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바로 화학구조식이 성분의 실제 모습에 가장 근접한 형태다. 즉 슈도에페드린은 이름일 뿐이고 실제 모습은 ‘메칠아미노페닐프로판올’인 것이다. 필로폰도 실제 모습은 ‘메칠페닐프로판아민’이다.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위의 모습과 같다.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감기약으로 사용되는 슈도에페드린과 필로폰은 ‘수산기(OH)’ 하나만 다르고 똑같이 생겼다. 이 때문에 슈도에페드린에서 수산기만 떼어내면 필로폰이 된다. 이렇게 쉽게 만들 수 있다 보니 매번 불법필로폰을 제조하다 붙잡힌 사례들이 나오는 것이다.

2021년에는 30대가 감기약 1000여통을 구입, 약 1kg의 필로폰을 제조한 혐의로 붙잡혔다. 1통에 500~1000정 분량의 슈도에페드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법제조업자는 이 많은 양의 ‘의약품’을 어떻게 구했을까? 약국에서 정상적으로 구했을 리는 만무하다. 앞서 말했듯이 약국에서 판매되는 코감기약은 보통 10~20정으로 포장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범죄자들은 약국에서 조제용 일반의약품을 구입하거나 제약회사 등 유통직원과 짜고 불법으로 약품을 취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런 이유로 슈도에페드린은 안전성이 뛰어난 일반의약품이지만 120mg 고함량제제는 전문의약품으로 전환됐다.

현재 일반의약품 최고 함량은 60mg이지만 다량으로 구입하면 얼마든지 마약류 제조원료로 사용될 수 있다. 따라서 슈도에페드린 함유 제제의 경우 3일 분량 정도는 일반의약품으로 유지하되 용량이 많이 들어 있는 제품은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하는 정책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단 소포장 일반의약품을 다량구매할 가능성은 쉽지 않아 보인다. 보통 10정 포장 코감기약은 판매가가 2500~3000원 정도이기 때문이다. 1000정 구하려면 100개를 구입해야 하는데 그 금액이 25만~30만원이 될 테니 아마도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기침을 억제하는 성분이 바로 마약류였다니!

지난 칼럼에서 한외마약에 대해 이야기(07.14일자 칼럼 참고)하면서 필자는 한외마약은 마약으로 제조 불가능한 복합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량으로 복용하면 당연히 마약인 코데인처럼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일본에서 판매되는 일반의약품 기침약에 ‘디히드로코데인’이 함유된 제품이 있는데 이를 다량으로 복용해 환각작용을 일으킨 사례가 알려지기도 했다.

정상적인 판단력을 갖고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복용하지 않을 것이다. 기침약 속에 포함된 다른 약물에 의해 나타나는 부작용 때문이다. 하지만 잘못된 호기심이나 약물에 중독된 경우라면 당연히 그런 판단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디히드로코데인은 우리나라에선 전문의약품으로 관리되고 있어 처방에 의해서만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다. 다량으로 먹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반면 온라인으로 구입하면 얘기가 다르다. 최근 일부 의약품들이 일본 직구사이트를 통해 유통되고 있다. 각 나라마다 약품허가기준이 다르다 보니 우리나라에선 전문의약품인 성분들이 일반의약품으로 구입할 수 있기도 하다. 디히드로코데인이 그렇고 앞서 언급한 중학생들이 복용한 감기약이 그렇다.

기침약 중에 중추신경에 작용해 기침을 멎게 하는 가장 대표적인 성분이 바로 코데인이다. 또 지금 이야기할 덱스트로메트로판 역시 중추성 진해제다. 덱스트로메트로판이라고 말하면 마약류와는 전혀 다른 성분인 것 같지만 이것도 역시 화학구조식을 보면 마약류라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된다.

위의 화학구조식을 보면 덱스트로메트로판과 코데인은 거의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유사구조 때문에 기침을 억제하는 효과도 비슷한 기전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코데인이 마약에 속한다면 덱스트로메트로판은 향정신성의약품에 속한다.

물론 덱스트로메트로판은 300mg 이상 고함량에서 정신적 작용이 나타나기 때문에 국내 허가된 일반의약품 용량(1일 함량 30mg 미만)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판매되는 일부 감기약은 이보다 고함량으로 출시돼 다량으로 복용할 경우 정신적 부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앞서 나온 중학생 아이들도 감기약 20정을 한꺼번에 복용해 나타난 증상이었다.

일부 감기약은 대량으로 살 수 없게 하자

이러한 여러 상황을 보면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은 일반 감기약이라고 해도 잘못 복용하면 얼마든지 유해한 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국내 허가제품이 아닌 수입약은 우리나라 식약처에서 인증하지 않은 성분들이 들어 있을 수 있어 더욱 주의해야 한다.

청소년기에는 호기심이 많고 군중심리에 쉽게 휘말려 약물복용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는 점도 보호자가 꼭 기억해둬야 한다. 특히 스마트폰으로 쇼핑이 익숙한 아이들이 절대 의약품 구매를 하지 않게 철저히 단속하는 것도 잊지 말자. 약국 외에 유통되는 의약품의 철저한 관리와 함께 해외 직구사이트에서 구매할 수 있는 의약품을 더욱 철저히 제한해야 한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마약제조 원료로 사용될 수 있는 슈도에페드린 함유 의약품의 경우 포장 단위가 일정 수량 이상이 되면 전문의약품으로 지정해 소비자가 쉽게 구매할 수 없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중추신경에 작용할 수 있는 약물들은 어떻게 오용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보다 보수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