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 약사가 알려주는 중독성 약물 A to Z] 이제는 알코올의 늪에서 벗어나야 할 때
[배현 약사가 알려주는 중독성 약물 A to Z] 이제는 알코올의 늪에서 벗어나야 할 때
  • 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ㅣ정리·안훈영 기자 (h0ahn@k-health.com)
  • 승인 2023.11.14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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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
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

독자께서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한다고 해보자. 심각한 고민거리가 생긴 등장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도구를 사용할 것인가? 분명 타임머신을 타고 2000년에 간다면 고뇌에 찬 모습의 주인공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담배 연기를 연신 내뿜는 모습을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불가능한 일이다. 2002년 KBS를 시작으로 2004년 MBC, SBS 모두 흡연 장면 노출을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그럼 대신 어떤 장면을 넣을 것인가? 아마도 분위기 있는 바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고독을 씹거나 지인과 포장마차 등에서 만나 소주 한 잔을 마시며 고민을 토로하는 장면을 넣지 않았을까? 그렇다. 최근 방송이나 영화 등 미디어를 보면 과거에 담배가 아이템이었던 장면을 대부분 술이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보다 관대한 술에 대한 노출

우리나라는 술에 매우 관대하다. 즐거운 날이면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는 ‘음주가무(飮酒歌舞)’가 빠질 수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한국 갤럽이 2015년 11월 10~12일 3일간 전국남녀 1012명을 대상으로 음주문화에 대해 조사한 결과 성인 3명 중 1명은 주 1회 이상 술을 마셨다. 특히 이 중 2%는 매일, 11%는 주 3~5회 마신다고 응답했다.

보다 재밌는 사실은 술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었다. 이 세상에 술이 있어 좋다고 응답한 사람이 65%에 달했다. 평소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도 45%가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이러한 결과를 보면 많은 사람들의 술에 대한 태도를 알 수 있다. 같은 시기 담배에 대한 이미지 평가에서는 건강을 위협하는 존재라며 부정적으로 대답한 사람이 비흡연자 95%, 흡연자 82.5%인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술에 대한 긍정적 분위기는 결국 사회적 인식 때문일 것이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져서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고 마음에 있는 말들을 잘 할 수 있어 친목 도모에 도움이 된다거나 고민, 걱정, 스트레스를 푸는 데 좋은 아이템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술에 대한 긍정적인 것으로 돌아선 데는 직접적 경험 등도 있겠지만 미디어의 노출도 무시할 수 없다.

일례로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지난해 7월 성인 1033명(음주자 60%, 비 음주자 40%)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결과 ‘음주 장면을 보고 실제로 음주를 한 경험이 있는가’에 대해 ‘경험이 있다’고 대답한 비율이 55.1%였으며 이 중 음주자는 72.2%, 비음주자는 30.3%였다. 그야말로 음주 장면은 음주를 불러오는 것이다. 또 ‘미디어 속 음주 장면에 대한 평가’도 물었는데 ‘음주 장면이 나오면 술을 먹고 싶어진다’고 응답한 사람이 23%, ‘음주가 긍정적으로 보인다’는 응답이 19.5%였다. 결국 미디어 속 음주 장면이 음주 인식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뿐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음주를 피할 수 없는 분위기가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회식이나 모임 등에서 술이 빠지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과잉음주를 불러오는 경우가 많다. 바로 술잔을 돌리거나 술을 권하는 문화 때문이다.

성인들의 이런 문화 때문에 청소년이나 청년들도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특히 청소년 음주경험율이 아직도 약 30%에 육박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알코올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얼마나 될까 

“술? 취하면 어때. 기분 좋게 먹으면 되지! 원래 술자리에서 일어난 일은 다 잊는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음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크다. 특히 음주로 인한 사망률은 2020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10명을 넘어섰다.

이는 2022년 고혈압성질환으로 인한 사망률과 같은 수치다. 특히 사회적 손실 비용은 2013년 9조4524억원으로(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 추산) 흡연과 비만 등 다른 사회적 이슈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사실 간접흡연을 제외하면 흡연과 비만은 모두 개인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회 안에서의 손실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음주는 다르다. 만성적인 알코올 남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개인의 건강과 가족, 지인의 폐해는 말할 것도 없고 음주운전이나 폭력 등으로 인해 불특정 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에게도 큰 해악을 일으킨다.

술에 의한 사회적 손실을 유발하는 사람은 일반인과 유명인을 가리지 않는다. 촉망받던 유명 연예인들이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일으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례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지만 어째서 이렇게 절제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건 술이 가지고 있는 특성 때문이다.

처음 알코올을 섭취하면 진정작용을 가져주는데 이는 다시 말해 불안을 줄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불안할 때 술을 먹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뿐 아니라 술은 약간 들뜨거나 흥분된 상태를 만든다. 즐거운 자리나 어색한 자리에서 술을 먹게 되는 이유다. 이런 상태를 ‘취기가 돈다’고 한다.

이 정도의 적당한 알코올 복용을 넘어서면 그때부터는 대뇌기능억제가 강해진다. 만취상태로 보통 혈중알코올농도 0.1%(100mg/dl) 수치가 측정될 정도라면 운동기능장애, 반사신경억제, 정상판단실조 등이 나타난다.

법적으로 음주운전 기준은 취기가 도는 0.03%(30mg/dl, 소주 한 잔 정도 수준) 이상으로 매우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 이때 대부분 음주자는 자기가 아무 이상이 없다고 생각하며 너무 과한 것 아니냐고 한다. 하지만 이 정도 수준에서도 신경반응 시간이 현저하게 지연되기 때문에 사고가 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음주운전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한두 잔 술을 먹다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분위기 등에 휩싸여 술을 많이 먹기 시작한다. 이때부터는 대뇌가 판단을 내리지 못하기 때문에 술이 술을 먹는 상황이 된다. 결국 아무리 유명인이라도 과음으로 인해 합리적 판단을 내리지 못하면 인생을 망치는 최악의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술 앞에 장사는 없다.

특히 청소년은 위험하다

성인의 고위험음주율(1회 평균 음주량이 남성은 7잔, 여성은 5잔 이상, 주 1회 이상 음주)은 2018년 14.7%이었으며 코로나 기간 동안에는 더욱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전 세계의 추세와 다르게 우리나라는 아직도 술 먹는 문화는 증가 추세인 것이다.

청소년과 청년음주율도 문제인데 특히 청소년 음주경험률은 30%에 육박했으며 14.4%는 한 달 이내에 만취 경험이 있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청소년 음주 경험 이유를 조사했더니 ‘부모, 친척들의 권유’가 가장 컸다. 처음 음주를 경험하는 나이도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이 가장 높았는데 이 역시 음주에 관용적인 가정에서 일정 나이에 이르면 술을 권하는 것과 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저자가 초등학교 약물 오남용 교육을 나갈 때 술 마신 경험을 물어보면 많은 아이들이 경험이 있다고 이야기 하는 것과 같은 결과다. 경험이 있는 아이들 역시 대부분 부모가 장난삼아 권한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경험은 차후에 술에 대한 음주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알코올은 담배와 함께 매우 위험한 ‘게이트 약물’이라는 것이다. 알코올을 섭취하면 중독을 유발하는 도파민 분비를 강하게 촉진함으로써 보상계를 자극한다. 또 진정효과로 인해 정신적 긴장감을 완화한다. 이런 효과로 육체적·정신적 중독을 유발하는 것이다. 브리스톨대학의 ‘흡연 시작과 알코올 소비가 약물 사용결과에 미칠 수 있는 인과효과(2021)’ 연구논문에 의하면 알코올중독이 대마중독, 마약중독으로 연결됐다고 한다.

특히 이른 나이에 중독성약물에 노출이 된다면 성인보다 더욱 쉽게 약물중독에 이를 수 있게 된다. 당장 술을 먹었다고 해서 신체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반복적인 음주는 결국 약물중독의 시작으로 이어질 수 있고 사회생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자

이번 칼럼을 쓰면서 필자도 많은 고민을 했다. 필자 또한 애주가까지는 아니지만 음주자이기 때문이다. 음주자이면서 술을 먹지 말자는 글을 주제로 쓰겠다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이 필자를 괴롭게 만들었고 타이핑 속도를 더디게 만들었다. 하지만 자료를 조사하고 글을 수없이 고쳐가면서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 점점 명확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인류가 태고부터 마시던 술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이는 누군가가 주장한다고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단 술에 의한 피해가 명확하고 청소년에게는 매우 위험한 만큼 이를 막기 위한 몇 가지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가자고 말하고 싶다.

첫째, 안전한 술 문화를 정착시키고 적정 음주량을 만들어가는 노력을 하자. 누군가에서 술을 권하는 문화나 술잔을 돌리는 것 등은 과음을 유도하는 행위가 될 테니 절대 피하는 것이 좋겠다. 다른 사람에게 술을 따라주는 것이 아닌 자신의 잔에 주량껏 따라 먹는 음주문화를 정착시키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내 잔에 내가 따라 먹는 것만으로도 확실히 과음을 줄일 수 있다. 당연히 음주 후에는 운전 등 그 어떤 기계 조작도 하지 않아야 한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뿐 아니라 자전거나 이륜차, 킥보드 등 다른 이동수단도 음주 후에는 무기가 될 수 있다. 또 살인무기와 같은 음주운전에는 지금보다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둘째, 불특정 다수에게 음주 장면이 노출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특히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특정 상황에 음주를 하는 장면은 되도록 송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유명 연예인이 광고를 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 미디어에서 선망하는 연예인이 술을 멋지고 즐겁게 마신다면 따라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또 청소년에게 노출은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이다. 공원 등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하는 것은 법적으로 제한을 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금연구역을 정하듯 음주제한구역을 정함으로써 다수에게 무분별하게 음주상태를 노출하는 것을 막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결국 술에 의한 사회적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술에 포함된 알코올 역시 담배 속 니코틴과 같은 중독성약물임을 각자 인지하고 되도록 복용량을 줄여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뿐 아니라 음주 경험 연령을 최대한 늦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나갈 때 보다 건강한 술 문화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021년 보건복지부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알코올중독 평생 유병률이 11.6%나 된다고 한다. 10명 중 한 명은 알코올로 인한 문제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삶을 보다 즐겁게 살기 위해 마시는 술이 자칫 나와 가족, 그리고 타인의 삶을 송두리 채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도 알코올의 늪에서 벗어나는 진정한 노력을 해야만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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