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 약사가 알려주는 중독성약물 A to Z] 웃음가스? 뇌에는 치명적인 독가스!
[배현 약사가 알려주는 중독성약물 A to Z] 웃음가스? 뇌에는 치명적인 독가스!
  • 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ㅣ정리·안훈영 기자 (h0ahn@k-health.com)
  • 승인 2023.09.2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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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
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

의도치 않았지만 밀폐된 공간에서 ‘본드’를 사용했을 때 아찔하고 몽롱한 느낌이 들었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한때 비행청소년들이 남용했던 대표적 유해화학물질인 본드 경험담이 친구들 사이에 유행처럼 돌았던 적도 있었다. ‘본드를 불었는데 손에서 레이저가 나갔다’ ‘하늘을 날았다’ 등의 얘기를 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본드의 환각작용 때문이다. 지금은 본드가 유해화학물질로 규정돼 있고 청소년 보호법 시행령에 따라 19세 미만 청소년은 살 수 없어 남용하는 경우가 많이 줄었고 한다. 그런데도 꼭 어딘가에서 몰래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유해물질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

환각은 왜 발생할까

먼저 환각작용에 대해 정확히 알아보자. 환각은 ‘개인의 감각기관을 통해 진짜 있는 것처럼 느끼지만 실제는 어떠한 외부자극도 없는 상태’이다. 즉 나는 진짜 있다고 느끼고 있지만 실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환각이 발생하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지만 주로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경우 ▲약물 ▲독성노출 등으로 나뉜다. 독성노출은 주로 화학물질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에 환각은 정신병 같은 질환과 약물에 의한 것으로 구분하면 된다.

그중 약물에 의한 것은 대뇌 도파민과 세로토닌A2 수용체가 지나치게 흥분하는 기전, 뇌 기능에 전반적인 문제가 발생해 환각을 일으키는 기전이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마약이나 LSD, 케타민 등은 전자에 속하며 본드, 신나, 웃음가스(아산화질소) 등은 후자에 속한다. 오늘은 먼저 후자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나라에서는 화학물질로 인한 국민건강 및 환경상의 위해(危害)를 예방하고 화학물질을 적절하게 관리하고 있다. 또 화학물질로 인해 발생하는 사고에 신속히 대응함으로써 화학물질로부터 모든 국민의 생명과 재산 또는 환경을 보호하는 목적을 두고 ‘화학물질관리법’을 제정·운용하고 있다.

유해화학물질은 약사법 등 다른 법에서 지정하지 않은 ‘유해성 또는 위해성이 있거나 그러할 우려가 있는 화학물질’을 말한다. 그중에서 흥분·환각 또는 마취작용을 일으키는 화학물질을 ‘환각물질’로 정의하고 있다. 환각물질은 대통령령으로 정해져 있다. 종류는 톨루엔이나 초산에틸 또는 메틸알코올이 포함된 시너, 접착제(본드), 풍선류 또는 도료 등과 부탄가스, 아산화질소(웃음가스)이다.

밀폐된 곳에서 본드를 사용하면 왜 환각작용이 나타날까

본드의 주성분은 합성고무이며 합성고무를 톨루엔과 같은 유기용매에 녹인 것이다. 접착할 부분에 본드를 바른 뒤 유기용매가 휘발되면 합성고무가 굳으며 단단하게 붙는 것이다. 바로 이 휘발된 유기용매인 톨루엔을 흡입하면 환각 등 이상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시너나 풍선류도 그 안에 들어 있는 유기화학물질을 흡입했을 때 정신적 문제를 일으킨다.

환각물질로 규정된 톨루엔과 초산에틸, 메틸알코올 등의 유기용매와 부탄가스는 뇌에 작용하는 기전이 거의 동일하다. 먼저 이들은 뇌 자극을 강하게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즉 흥분을 억제하기 때문에 뇌의 자극이 줄어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없으며 말이나 동작이 어둔해진다.

흥분억제작용은 마취효과와 비슷하기 때문에 유기용매가 가진 불쾌한 냄새나 구역감 등에 대한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 또 뇌 전체 자극전도에 문제를 유발하기 때문에 이상감각현상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바로 환각증상인 것이다.

일부 논문에서 유기용매들은 항콜린작용으로 인한 섬망을 유발한다고 보고하기도 했지만 아직 명확한 기전이 밝혀지진 않았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유기용매는 혈액 뇌 관문을 통과함으로써 뇌 조직에 침투할 수 있으며 해당 부위를 현저하게 망가트린다는 것이다.

본드나 가스를 불면 뇌에 구멍이 생긴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히 공포를 주기 위해서가 아닌 진짜다! 실제로 유기용매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사람의 뇌는 정상인에 비해 현저히 쪼그라들어 있다. 이뿐 아니라 심장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며 금단증상으로 근육경련, 호흡마비 등이 발생할 수 있어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최근 이들보다 문제되는 것은 바로 웃음가스로 알려진 아산화질소다. 아산화질소 역시 유해화학물질로 규정(의료용으로 사용하는 경우 제외)돼 있지만 인터넷 등에서 구입해 파티나 쾌락을 즐기기 위해 남용하고 있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아산화질소는 어떻게 환각을 유발하는 것일까

아산화질소는 어린이치과 등에서 치료 전 코에 흡입하게 하는 마취제다. 아산화질소를 흡입하면 중추억제효과 때문에 흥분이 진정되고 통증이 사라지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아산화질소가 혈중으로 들어가면 산소보다 빠르게 혈액에 녹아들어 산소가 부족해지는 상태가 된다. 아산화질소 사용 후 정신이 몽롱해지는 느낌과 붕 뜨는 듯 한 환각을 느끼는 것은 뇌에 산소가 부족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산화질소의 큰 문제는 지속적으로 사용했을 때 비타민B12 결핍을 유발해 신경병증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산화질소를 사용하고 나서 척수 등 중추신경계 손상뿐 아니라 손발까지 이르는 말초신경손상 등의 신경손상이 임상에서 다수 보고되고 있다. 신경손상은 영구장애를 유발하는 만큼 남용 시 유해성은 매우 크다.

다행히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단속과 처벌이 강화됨에 따라 환각을 위해 이런 물질을 사용하는 경우는 크게 줄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인터넷이나 SNS 등을 통해 비대면으로 구입, 오남용하는 경우가 있어 판매업자나 보호자, 청소년 모두 처벌조항을 잘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먼저 유해화학물질은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에 따라 19세 이상 성인만 구입할 수 있다. 청소년에게 유해화학물질을 판매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청소년이 아니더라도 ‘환각물질을 섭취·흡입하거나 이러한 목적으로 소지한 자 또는 환각물질을 섭취하거나 흡입하려는 자에게 그 사실을 알면서 이를 판매 또는 제공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뿐 아니라 판매를 위반한 경우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유해성이 높은 만큼 생각보다 처벌수위가 높다는 것을 꼭 기억해두자.

청소년에서는 집단심리와 호기심으로 유해화학물질 사용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성인에서는 작업 시 부주의, 유흥을 목적으로 흡입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화학물질은 모두 치명적인 뇌 손상을 가져올 수 있어 매우 주의가 필요하다.

순간의 실수와 환각을 위해 사용한 대가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최근 마약류 사용을 근절하기 위한 예방교육이 많이 이뤄지고 있는데 그만큼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정확한 교육도 병행돼야 한다. 특히 청소년은 유해물질이 가져올 영구적 손상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혹시라도 유혹의 손길이 왔을 때 단호하게 ‘No!’라고 외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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