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 약사가 알려주는 중독성 약물 A to Z]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환각약물’의 위험성
[배현 약사가 알려주는 중독성 약물 A to Z]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환각약물’의 위험성
  • 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ㅣ정리 ·안훈영 기자 (h0ahn@k-health.com)
  • 승인 2023.10.13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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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

클럽과 같은 유흥가에서 초점을 잃은 채 정신없이 춤추는 누군가를 본다면 마약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때 사용되는 약물은 대부분 ‘환각제’다. 환각제와 마약은 모두 유흥을 위해 사용되지만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사전적 의미로 살펴보면 쾌락은 ‘유쾌하고 즐거움 또는 그런 느낌. 감성의 만족, 욕망의 충족에서 오는 유쾌하고 즐거운 감정’을 말한다. 환각은 ‘감각기관을 자극하는 외부 자극이 없는데도 마치 어떤 사물이 있는 것처럼 지각함. 또는 그런 지각’이다(출처 네이버 사전). 이렇게 환각과 쾌락은 비슷할 것 같지만 다른 느낌이다.

약물을 사용할 때도 환각은 느끼지만 쾌락은 못 느낄 수도 있다. 실제로 환각제를 사용한 많은 사람이 약물 사용 후 불쾌감이 든 경우도 많다고 한다. 원하지 않는 이상감각은 오히려 기분을 망칠 수 있다. 환각제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효과를 보이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중독의 기전은 쾌락이다

앞선 칼럼에서도 언급했지만 중독을 일으키는 대부분의 약물은 쾌락을 극대화하는 데 그 효능이 있다. 약물에 의해 강하게 유발되는 기쁨은 일상생활에서 얻을 수 없는 느낌이기 때문에 한 번 사용하면 약물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상태가 돼 버린다. 약물을 사용한 이유가 개인적·사회적·집단적 등 어떤 환경에서 시작됐든 한 번의 즐거움으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지는 것이다.

그 강도가 얼마나 되기에 약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까? 쾌락의 정도는 복측피개지역(ventral tegmental area, VTA, 뇌 보상경로)에서 분비되는 도파민 양으로 측정할 수 있다. 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평소보다 재미있는 게임을 할 때 1.75배, 성행위를 할 때 2배의 도파민이 분비된다고 한다.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을 사용하면 무려 130배에 달하는 도파민이 분비된다. 이러니 약물 사용 후 다른 것에는 흥미를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약물이 그 무엇보다 의존성 강한 이유이다.

환각은 어디서 느끼게 되나

도파민은 대뇌를 강하게 흥분시키는 약물이다. 대뇌 흥분제들은 도파민뿐 아니라 노르에피네프린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며 감각을 느끼고 판단하는 대뇌 피질에도 작용한다. 대뇌 피질에 작용하는 흥분제들은 지나친 감각을 유발한다. 즉 마약은 쾌락뿐 아니라 환각작용도 있다는 것이다.

이전 칼럼에서 펜타닐을 언급하면서 필자의 아버지가 저승사자를 봤다고 하셨다는 내용(2023.04.22 칼럼 참조)을 쓴 적이 있는데 바로 이런 것이 마약에 의한 환각작용이다. 뇌 신경의 과다 자극은 뇌 기능의 손상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뇌를 자극해 환각을 일으키는 약물들은 모르핀, 펜타닐 등 아편계 약물이나 케타민, 메스암페타민, 펜터민 등 중추신경자극 약물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마약이 아닌 향정신성약물 중 환각을 유발하는 것들도 있다. 바로 지난주 칼럼에서 언급한 본드나 시너 등 뇌 신경 전도에 이상을 일으키는 유해화학물질과 세로토닌수용체에 작용하는 약물들이다.

세로토닌에 작용하면 좋은 것 아닌가?

세로토닌은 인체에서 수면, 꿈을 조절할 뿐 아니라 우울감 등 감정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 우울증치료제는 뇌에서 세로토닌이 잘 작동하게 만들어주는 약이기도 하다.

뇌에서 세로토닌이 작동하려면 수용체에 결합해야 한다. 뇌에 존재하는 세로토닌수용체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아홉 종류이다. 이 중 어떤 것은 메스꺼움이나 구토를 유발하는 작용을 하며 어떤 것은 환각을 유발한다. 환각제로 유명한 LDS(리세르그산 디에틸아미드, 맥각균에서 유래한 물질로 합성)나 디메틸트립타민(DMT, 미모사 등 열대 식물), 필로시빈(환각버섯), 엑스터시(MDMA, MethyleneDioxyMethAmphetamine) 등이 환각을 유발하는 수용체에 작용하는 대표적인 약물이다.

특히 LSD나 엑스터시의 경우 도파민 수용체에 작용하거나 흥분성 신경전달물질 작용에 관여하기 때문에 쾌락과 환각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LSD나 엑스터시가 유흥을 즐기는 클럽 등에서 많이 사용되는 것은 이러한 복합효과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보다 강렬한 자극을 원하는 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흥분제와 환각제를 섞어 사용하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심각해진다.

환각약물, 왜 위험한가

환각을 느끼는 약물이 왜 위험할까? 필자는 그 이유로 세 가지를 꼽고 싶다.

첫째, 사고위험성이 매우 높아진다.

환각제는 기본적으로 흥분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공격적인 성향을 띠게 된다. 실제로 있지 않은 것을 보거나 듣게 되면서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도 많다. 주변에 있는 물건들이 자신을 공격한다며 파손시키는 경우도 있다. 자신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하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자신이 천사나 악마 또는 초능력자가 됐다고 생각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거나 도로나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문제는 LSD같은 약물은 사용한 당시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 동안에도 환각, 환청이 생기는 플래시백(Flashback)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당연히 사고위험성 또한 높아진다.

둘째, 약물에 의존해 일상생활이 망가진다.

환각제는 의존성 발생 경향이 높지는 않다. 하지만 이것은 육체적 의존성에 대한 이야기다. 정신적으로 의존성이 유발되면 중단하기 매우 어렵다. 담배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환각제를 사용하고 난 뒤 현실을 벗어나거나 환각으로 인해 성행위 등의 쾌감이 극대화되면 결국 약을 끊지 못하고 계속 사용하는 중독자가 되기 쉽다. 환각제도 내성이 발생하는데 결국 남용으로 인해 뇌 세포와 신체 손상으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다른 중독성약물 사용에 대한 허들이 낮아진다. 환각 약물을 사용하면 약물에 의존해 일상을 탈피하려는 행동이 쉬워진다. 더불어 이런 약물을 사용하는 무리는 다른 약물들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약물 사용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 수 있다. 또 환각효과를 증대하기 위해 다른 흥분제나 억제제 등을 섞어 사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술(알코올)을 먹으면서 엑스터시와 케타민을 혼합해 투여하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결국 환각제를 사용한 후 신체·정신적 의존성이 강한 마약까지 손대 일상이 완전히 파괴돼 버리는 것이다.

어릴수록 위험하다

환각제 남용은 주로 청소년과 20~30대 청년층에서 두드러진다. 청소년은 본드 등 유해물질을, 20~30대는 일반 약물을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약물중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지만 환각제 등을 사용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스트레스가 완화될 것이라는 긍정적 인식도 있어 약물에 대한 양가적 의식을 갖고 있다. 특히 약물을 사용해 본 사람은 약물 남용에 관대한 태도를 보이며 지인에게 사용을 권하거나 투여한 적도 있다고 한다. 더군다나 청소년과 젊은층은 사회적 관계를 중시하고 집단에 소속하고 싶은 욕망이 강하기 때문에 약물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

환각제 같은 약물은 뇌 신경에 작용해 손상을 유발하는데 청소년기에는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나이가 어릴수록 환각제 및 남용가능약물에 대한 보다 정확한 지식 함양과 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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