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 약사가 알려주는 중독성약물 A to Z] 프로포폴 맞으려고 미용시술 받는다고?
[배현 약사가 알려주는 중독성약물 A to Z] 프로포폴 맞으려고 미용시술 받는다고?
  • 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ㅣ정리·안훈영 기자 (h0ahn@k-health.com)
  • 승인 2023.08.1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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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
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

내시경 받으면 잠 푹 잔 것 같다고? 난 잘 모르겠던데…

가장 유명한 수면진정제 약물을 말하라고 하면 ‘졸피뎀’과 ‘프로포폴’일 것이다. 졸피뎀은 지난 칼럼에서 알아봤으니 이번에는 프로포폴에 대해 알아보겠다. 프로포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수면내시경으로 일반인들은 평소 접할 일이 없다. 프로포폴은 수면내시경 등을 받을 때 초단기마취제로 사용한다.

필자도 내시경을 받을 때면 ‘이번엔 절대로 잠들지 말아야지’라고 매번 다짐하지만 의사가 “약이 들어갑니다”라고 말하자마자 순식간에 잠들어버린다. 자고 눈을 떠보면 벌써 내시경이 끝나 있다. 그런데 필자는 수면내시경 후 특별히 개운한 느낌을 받아본 적은 없다. 일부 지인들은 잠깐이지만 푹 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프로포폴도 모두 똑같은 반응이 나타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김 빠지는 이야기 하나 하자면 수면내시경에 사용되는 모든 수면마취제가 프로포폴은 아니다. 단시간 수면진정제로 ‘미다졸람’ 역시 많이 사용된다. 독자들이 프로포폴이라고 생각한 수면제는 사실 미다졸람일 가능성이 더 높다. 두 약물 모두 효과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프로포폴이 유명해진 이유는?

프로포폴은 우유색을 띠어 우유주사로도 불리며 물에 잘 녹지 않아 대두유에 녹여 정맥에 주사한다. 사실 프로포폴은 주사제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기 어려운 약물이었다. 주사제는 처방전에 따로 표시되지 않고 병원에서만 사용되기 때문이다.

프로포폴은 2009년 마이클잭슨 사망원인으로 알려지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프로포폴 같은 수면진정제는 내성이 생긴다. 갈수록 용량을 올려 사용해야 처음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부작용이 덜하다고 해도 프로포폴을 남용하면 무호흡증을 일으킬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 일정 연령이 넘으면 수면내시경이 불가능한데 무호흡증으로 인해 자칫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클잭슨의 사망원인 역시 프로포폴 과다투여로 인한 심정지였다.

국내에서도 유명 탤런트들이 상습적으로 투약해 처벌받았다는 소식이 가끔 보도되고 있다. 최근 한 영화배우는 프로포폴 상습투약 혐의로 처벌을 받기도 했다. 마약류 상습투약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영화배우도 프로포폴 상습투약이 가장 먼저 밝혀졌다. 과연 프로포폴의 어떤 점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삶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게 된 것일까?

프로포폴 맞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프로포폴은 졸피뎀처럼 뇌에 진정효과를 주는 GABA수용체에 작용한다. 이로 인해 깊이 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뿐 아니라 작용시간이 짧아 자고 일어난 뒤 어지럼증 등이 덜하고 구토 등의 부작용이 적어 편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마취가 깬 뒤 흔히 나타나는 두통도 거의 없다. 도파민에 의한 쾌락효과는 높지 않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다고 말할 순 없다.

프로포폴도 다른 벤조디아제핀류와 같이 GABA수용체 일부에 작용해 수면·진정효과를 가져다주는데 상대적으로 복측분절영역(VTA) 도파민 신경에 작용해 도파민 분비를 촉진한다. 프로포폴을 사용하고 난 뒤 피로가 개선된 느낌, 개운한 느낌, 기운이 생긴 느낌 등을 받는 것은 진정효과와 함께 도파민 분비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나타난다. 프로포폴을 맞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트레스나 불안, 생활 리듬이 불규칙한 경우가 많은데 프로포폴로 안정감과 개운함을 느끼면 계속 사용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프로포폴은 육체적 의존성은 그리 높지 않은 대신 정신적 의존성이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

프로포폴, 한 번 빠지면 집안 기둥 다 뽑힌다

프로포폴의 정신적 의존성은 매우 강한 편이여서 일부 연예인이나 유흥업소 종사자의 경우 프로포폴에 중독돼 하루 몇 차례 맞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특히 필요 없는 피부미용시술이나 내시경을 반복적으로 행하기도 한다. 통증이 심한 미용시술은 마취제로 프로포폴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워질 목적으로 피부미용을 받는 것이 아니라 프로포폴을 맞기 위해 미용시술을 받는다는 것인데 주객이 전도돼도 한참 전도된 것이다. 나쁜 상술은 사람들의 약점을 파고든다고 했던가? 이런 점을 악용해 영업하고 있는 일부 양심 없는 병원들도 있다고 한다.

올해 3월 19일 서울경제에 보도된 “유아인 중독 알면서도 처방…병원들 ‘베드 비어요’ 프로포폴 영업” 내용을 같이 살펴보자. 보도내용은 인천다르크 마약류중독재활센터 최진묵 센터장이 3월 17일 CBS라디오에 인터뷰 한 내용을 요약해 실었다.

최진묵 센터장은 “피부과나 성형외과 상담실장들이 아침에 중독된 친구들에게 ‘우리 오늘 베드 비어요’라는 문자메시지를 쫙 보낸다”며 “베드를 차지하기 위해서 실장에게 음료수와 명품백을 사다 주기도 한다”고 밝혔다.

베드를 차지하면 병원을 열 때부터 닫을 때까지 프로포폴을 투여 받는다고 한다. ‘500만원짜리 시술하세요’ ‘1000만원짜리 시술하세요’와 같은 식으로 장사를 한다고 한다. 병원에서 합법을 가장한 불법으로 사람들에게 약물장사를 하고 있었다니 정말 무서운 이야기다.

어떤 사람들은 프로포폴에 중독되면 집안 기둥뿌리까지 다 뽑힌다고 말한다. 이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약물중독의 무서움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병원에서 의사의 처방에 따라 맞는 것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묻는다면 의술이 상술로 바뀌는 순간 환자는 하나의 돈벌이 수단 그 이상, 이하도 아니게 된다. 그만큼 합법을 가장한 불법은 환자를 생각하지 않는다. 약물중독은 환자 스스로 주의하는 수밖에 없다.

마약류는 편리함보단 안전이 최우선

프로포폴은 현재 마약류 중에서도 중점관리대상 향정신성의약품이다. 중점관리대상 향정신성의약품은 ‘마약류 과다처방, 불법유출 등 국내 마약류 오남용이 지속 발생함에 따라 국민보건상 위해발생 우려가 있어 집중적인 관리가 필요한’ 품목에 한해 식약처장이 공고한 것이다. 프로포폴을 주성분으로 하는 향정신성의약품(23품목)과 의료용 마약이 해당된다.

프로포폴이 개발 초기부터 마약류로 지정·관리된 것은 아니다. 식약처는 2011년 프로포폴을 마약류로 지정했는데 이전까지는 중독성이 강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전문의약품으로만 분류됐다.

하지만 2000년대부터 프로포폴의 의존성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식약처에서는 의사들을 포함한 공청회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자체 실험을 통해 유해성을 판단했다. 2008년부터 동물시험을 실시한 국립독성과학원에서 의존성 평가연구를 벌인 결과 신체적 의존성은 없지만 정신적 의존성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오남용 실태를 고려해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관리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수없이 많은 의사들의 반대에 직면했지만 현재 모습을 보면 그 판단은 매우 적절했다고 생각된다. 물론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하면 사용과 관리 면에서 매우 불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은 약물중독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손실에 비하면 작은 것이다.

중추신경에 작용해 중독, 남용을 일으킬 수 있는 약물들은 편리함보다는 더 까다로운 절차를 통해 사용에 제한을 둬야 한다. 즉 프로포폴은 치료목적을 제외하고는 철저하게 투약을 제한해야 한다. 보다 강한 넛지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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