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하나가 ‘폐암’ 오진 부를 수도
기생충 하나가 ‘폐암’ 오진 부를 수도
  •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02.0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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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 사는 66세 여성이 반복되는 기침과 객담으로 병원에 왔다. 환자는 원래 건강했지만 석 달 전부터 갑자기 이러한 증상이 생겼다고 했다. 이 경우 통상 의심되는 질환은 결핵이지만 백혈구나 염증수치가 전부 정상이었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진단은 나이가 나이니만큼 폐암일 가능성이다.

요즘은 종양표지자라고 혈액에서 특정 암의 항원농도를 측정하는 종양표지자검사가 일반화돼 있다. 그런데 이 환자의 경우 폐암에 대한 종양표지자검사가 정상치의 두 배 이상 상승해 있었다. CT를 찍어보니 2.5cm 직경의 물체가 관찰됐는데 한 달 뒤에는 좀 더 단단해진 느낌이었다. 여기서 잠깐 1월10일자 세계일보 기사를 보자.

“천안시는... 만 44세 이상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홀·짝수해로 나누어 PET-CT 검진을 할 수 있도록 1인당 70만원을 지원하기로 하고 올해 2억5000만원의 예산을 세웠다. PET-CT는 1회 비용이 100만원대가 넘어 몸에 큰 이상이 없는 일반시민들은 엄두조차 못내는 고가의 건강검진이다.”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여기 등장하는 PET-CT의 원리는 이렇다. 암 조직은 다른 조직보다 훨씬 빨리 증식하고 그만큼 포도당도 더 많이 섭취한다. 그렇다면 포도당에다 동위원소를 붙여 몸에다 넣어주면 보통 세포가 포도당 1개를 먹을 때 암세포는 10개쯤 섭취하니 동위원소도 훨씬 더 많이 분포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PET-CT는 몸에 있는 덩어리가 암이 맞는지를 알아본다든지, 몸 다른 부위에도 암이 있는지를 알기 위해 시행되는 검사이며 44세가 넘었다고 해서 무조건 찍을 필요는 없다. 내가 낸 세금도 일부 들어갔을 2억5천만원이 아깝게 느껴진다.

하지만 천안시 공무원과 달리 앞서 말한 환자는 당연히 PET-CT의 대상이다. 실제 검사해봤더니 역시 포도당 섭취가 증가돼 있었다. 기관지내시경에선 특별한 소견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의사들의 진단은 명확했다. ‘폐암’이었다.

나이가 많기는 하지만 일본 같은 장수국에서 66세는 소녀에 가깝기에 폐암의 기준에 맞춘 수술이 행해졌다. 오른쪽 폐 세 덩어리 중 아래쪽과 중간 덩어리를 모두 제거하는 그런 심각한 수술이 시행된 것이다.

하지만 수술 중 시행한 조직검사 결과를 받은 의사는 화들짝 놀랐다. 기대했던 ‘폐의 선암’ 대신 ‘폐디스토마로 인한 결절’이라는 소견이 전달됐으니까. 수술이 끝난 뒤 암이라고 생각했던 조직을 다시 검사해본 결과 폐디스토마의 알이 잔뜩 발견됐고 심지어 폐디스토마의 성충까지 조직에 들어 있었다. 명백한 오진이었고 디스토마 약만 먹어도 될 환자가 오른쪽 폐의 반 이상을 잘리는 참극이 빚어진 거였다.

우선 진단 전 몇 가지 실수가 눈에 띈다. 일단 환자의 혈액검사에서 기생충감염 때 증가하는 호산구가 7.4%로 증가됐다. 물론 암에서도 증가할 수 있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기생충감염에 대한 검사가 있어야 했다.

폐디스토마는 대변으로 충란을 내보내지 않지만 혈액검사에서 항체가 있는지 검사하는 ELISA라는 방법이 있다. 수술이 끝나고 난 뒤 시행한 ELISA는 폐디스토마에 양성이었으니 뒤늦은 탄식이 나온다. 암표지자도 그렇지만 PET-CT도 위양성이 많아 기생충이 있어도 포도당이 많이 흡수되는 만큼 절대적인 진단법은 아니었다.

결정적인 실수는 조직검사를 안한 것. 수술 전 조직검사로 정말 암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수술에 임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환자는 6개월 전 중국에 다녀온 적이 있다고 했다. 한국도 그렇지만 중국도 폐디스토마가 유행되는 곳. 환자는 아마 거기서 폐디스토마에 걸렸으리라. 그리고 그 폐디스토마는 환자를 석 달간 괴롭힌 것도 모자라 폐의 상당부분을 떼어내게 만들었다. 기생충이 무서운 이유다.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Pulmonary Paragonimus westermani with false-positive fluorodeoxyglucose positron emission tomography mimicking primary lung cancer (사진 출처: Gen Thorac Cardiovasc Surg (2007) 55:470–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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