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박사의 간에 생긴 혹
간 박사의 간에 생긴 혹
  • 안상훈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AHNSH@yuhs.ac)
  • 승인 2014.10.15 17: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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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수년 만에 복부초음파검사를 받고 있던 필자는 깜짝 놀랐다. 약 5cm 크기의 간낭종뿐 아니라 여러 개의 혈관종이 관찰됐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몸에 혹이 생겼다는 것은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혹은 정상적으로는 몸에 존재하지 않는 체내 덩어리를 말한다. 신체 어디든 생길 수 있으며 비교적 경과가 양호한 양성(良性)종양과 암을 뜻하는 악성(惡性)종양으로 나뉜다. 일부에서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양성종양이 악성화되기도 한다.

 

신체 내부에 생기는 혹은 너무 커져 주위 장기를 누르거나 통증이 생기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간은 신경세포가 없어 통증을 못 느끼는 ‘침묵의 장기’로 간에 혹이 생기면 10cm 이상 커져도 모르고 지내다가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게 된다.

간암, 간내담도암, 간혈관육종, 간내낭선암, 악성림프종, 다른 장기에서 암이 전이돼 오는 전이성간암은 간에 생길 수 있는 치명적인 악성종양들이다. 양성종양으로는 간낭종, 간혈관종 외에 간선종, 국소성결절성과증식, 간세포이형성, 간혈관내피종, 담관확장, 담관낭포, 담관과오종, 담관선종, 담관낭포선종, 간펠리오시스, 간염증성종양, 이소성간, 기생충 감염에 의한 종괴 등 매우 다양하다. 간 조직검사를 하지 않으면 감별 진단이 어려운 경우도 종종 있다.

간에 있는 혹은 아프거나 만져지지 않아 정기적인 복부초음 검사를 통해 진단이 가능하다. 혈액검사로는 간 종양을 확인할 수 없다. 복부초음파검사는 그림자를 보는 것과 같아 종양의 존재는 알 수 있지만 어떤 종양인지 정밀하게 진단하기 위해서는 CT나 MRI가 필요하다. 그림자로 보인 머리가 긴 사람이 여자가 맞는지는 직접 다가가 눈으로 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가끔 유니섹스한 옷을 입거나 성전환수술을 한 사람이 있어 직접 눈으로 봐도 성별이 구분 안 되는 경우가 생기는데 간종양도 감별 진단이 어려운 경우가 있어 불가피하게 바늘로 찔러 간조직검사를 시행하기도 한다.

필자가 갖게 된 간낭종과 간혈관종은 양성종양 중 가장 흔한 두 가지다. 간낭종은 간 실질 내에 얇은 막으로 이뤄진 공간에 액체가 고인 일종의 물혹이고 간혈관종은 간내 혈관이 뭉쳐져 생긴 혈관덩어리다.

둘 다 원인도 모르고 암으로 진행되지도 않는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암으로 진행될 수 있는 다른 종양이 아닌지 감별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치료 없이 경과 관찰만 하지만 크기가 너무 커져 파열되거나 혈관, 담도 등에 압박이나 통증을 수반하면 수술해야 한다.

건강검진 중 간에 혹이 발견되면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바쁘거나 돈이 없다고 추가검사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들부터 본인이 암이라고 확신하면서 불면증에 시달리고 암보험약관을 다시 확인하는 사람도 있다. 요즘에는 간낭종이나 간혈관종으로 확진돼도 걱정이 태산인 환자들에게 필자가 건네는 한마디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위안을 안겨 주고 있는 듯 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간낭종, 간혈관종 있어요. 간낭종은 5cm나 됩니다.”
환자들 대다수는 간 박사님도 “간에 혹이 생기나요?”라고 되묻곤 한다. 의사들은 의사이기 전에 사람이고 환자들과 똑같이 질병에 시달린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듯이 ‘의사도 제 병 못 고친다’는 말이 있다.

어느 간절제수술의 명의가 전신마취된 자신의 간을 잘라낼 수 있겠는가. 의사도 병이 생기면 또 다른 환자가 돼 두려운 마음으로 다른 의사 앞에 선다. 이제는 ‘나도 환자다.’ 그들을 이해하고 같이 손잡고 동행해야겠다.

※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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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남 2023-06-05 13:14:18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