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뚫린 방역망 방치땐 ‘제2, 제3 메르스’ 부른다
구멍 뚫린 방역망 방치땐 ‘제2, 제3 메르스’ 부른다
  • 황인태 기자 (ithwang@k-health.com)
  • 승인 2015.06.2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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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신종감염병 국가 방역체계 낙후…예산·인력 등 관련인프라 태부족
ㆍ감염 예방 전문가 인근국가 파견…세계보건기구와 공조 ‘발등의 불’

 사스, 신종플루, 에볼라, 메르스까지 2000년 이후 신종감염병 발생이 점차 늘고 있다. 의료전문가들도 신종감염병질환이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말한다. 나라간 교역이 늘고 해외여행객이 증가하면서 국내에선 찾을 수 없던 여러 감염병 발생요인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외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신종감염병이 국내로 전파될 수 있다는 사실은 2003년 사스와 2009년 신종플루, 올해 메르스를 통해 생생하게 목격했다.

 하지만 늘어나는 신종감염병에 비해 국내방역체계는 심각할 정도로 낙후돼있다. 감염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음압격리병상은 물론 역학조사관 등 감염관리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하지만 감염병은 관리실패 시 사회적으로 미치는 파장이 크다는 점에서 투자를 소홀히 할 수 없다. 늘어만 가는 신종감염병.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할까.


 이번 메르스사태가 급속히 확산된 원인은 방역체계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방역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현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정상적 방역체계가 작동하는 경우 출국시점부터 해외여행객에게 해당지역에서 유행 중인 감염병을 알리고 귀국 시 감염증세가 있다면 보건소를 찾게 한다. 보건소는 질병관리본부지침에 따라 증세를 판단하고 의심되면 질병관리본부에 감염여부를 묻는다. 이 때 감염이 확정되면 추적조사 후 귀국 뒤 모든 접촉과정을 관리대상에 포함시켜 격리조치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메르스사태에서는 앞선 상황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당장 해외출국자들에게 감염병정보를 알리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의료전문가들은 감염병 대비가 충분치 못한 것은 감염관련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세계 최대 보건의료관련기구로 손꼽힌다. 1만명 이상 직원에 한해 예산만 약 7조원을 쓴다. 감염병조사를 위한 역학조사관도 매년 의대졸업생이나 역학분야 박사를 80여명 뽑아 2년간 교육시키고 있다. 따라서 전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유행할 때 세계보건기구와 공동대응에 나설 정도로 신뢰를 받는다.

 하지만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와 비교하면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의 상황은 열악하기만 하다. 예산은 1/13 수준이고 인력도 약 300여명에 불과하다. 역학조사관도 미국은 2000명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34명뿐이다. 이마저도 34명 중 32명은 군복무 중인 공보의다. 이렇다보니 감염병이 유행하면 민간의료기관의 힘을 빌리기 일쑤다.

 이런 인프라로는 언제든 제2, 제3의 메르스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는 “현재 질병관리본부 예산과 인력으로는 감염관리활동을 제대로 해내기 어렵다”며 “역학조사관 인력확대, 해외주재원 파견, 세계보건기구와의 공조 등을 위해서라도 조직을 확대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감염병은 한번 발생하면 사회적으로 걷잡을 수 없는 손실을 입힌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메르스사태가 3개월 정도 지속되면 국내총생산(GDP)이 약 20조원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따라서 의료전문가들은 감염병을 사전에 예방해야한다고 강조한다.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응급의료센터 송형곤 센터장은 “메르스로 인한 사회적 손실은 제대로 계산할 수 없을 정도인 데다 국가이미지 손실까지 감안하면 추산이 불가능하다”며 “이제는 감염질환 예방예산을 손실로만 여기지 말고 투자로 생각해야한다”고 말했다.

 감염병 사전예방은 전 세계에서 유행 중인 감염병정보를 보유하는 것이 필수다. 이를 위해서는 감염질환전문가를 해외주재원으로 파견하고 세계보건기구와 함께 공조해야한다. 해외주재원의 경우 선제적으로 해당국가의 감염병정보를 보건당국에 알림으로써 미리 대비하게 만들어야한다. 해당국가에서 감염병 유행소식이 전달됐을 때는 이미 늦기 때문이다. 대한감염학회 김우주 이사장(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은 “최소한 중국 등 우리나라 인근국가만이라도 감염병전문가를 해외주재원으로 파견해야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세계보건기구와의 공조를 통해 전 세계 감염병질환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이 정보는 해외여행객들에게 사전에 알려야한다. 또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와도 감염병정보를 공유해 해외여행 후 감염증세를 보인 환자가 의료기관을 방문하면 즉각 신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의료기관에서 감염병에 대한 증세판별 및 대처방안교육이 이뤄져야 함은 물론이다.

 감염병 사전예방작업만큼이나 확진자 발생 시의 대처도 중요하다. 현재 감염병예방은 대부분 공공영역에서 맡고 있지만 국내공공의료비중은 전체의 10%도 되지 않는다. 즉 감염병이 전파되기 시작하면 의료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민간의료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시설도 인력도 부족하다.

 결국 감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공공의료비중을 높여야한다. 민간의료기관에서는 감염병치료를 할 수 있는 음압격리병상이나 방호복구비 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신속한 대처가 쉽지 않다. 이번 메르스사태만 해도 확진자 격리치료는 대부분 공공병원들이 도맡고 있는 실정이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김동근 정책위원은 “의료산업화를 아무리 외쳐도 감염병이 관리되지 않고 공공의료가 부실하면 국가전체에 막대한 손실을 불러 온다”며 “부실한 감염병관리체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단 공공의료부터 강화해야한다”고 주문했다.

<헬스경향 황인태 기자 ithwang@k-healt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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