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받길 바라는 욕망의 ‘역풍’
인정받길 바라는 욕망의 ‘역풍’
  • 강용혁 마음자리 한의원장
  • 승인 2012.01.05 1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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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선 목숨도 바친다는 말이 있다. 인정받길 바라는 인간의 욕망이 그만큼 뿌리 깊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이런 욕망이 때로는 날카로운 비수로 되돌아온다. 

만성두통과 불면증으로 내원한 50대 여성. 심한 어깨 결림과 위경련으로 오래 고생했다. 큰 병원에서 여러 검사도 받았고, 좋다는 한약도 먹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환자는 “내 병은 고질병인데 고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는다.

병이 잘 낫지 않았던 원인은 해묵은 가족 간 갈등이었다. 친정 엄마에서부터 남편과 친정 형제들, 그리고 두 딸까지 모두 다 못마땅하다. 집안살림에 가게까지 운영하는 바쁜 와중에도 1시간 거리에 홀로 사는 노모와 다른 지방에서 자취 중인 딸까지 챙긴다.

환자는 “지금껏 가족에게 희생했는데 가족들은 왜 나를 홀대하나 싶어 밤을 새운다”면서 눈물을 글썽인다. 심지어 팔순이 넘은 노모에게까지도 섭섭한 마음이 든다. 노모가 자기 생각만 할 뿐 딸의 정성을 몰라준다는 것이다. 또 형제들은 형편이 좋은데도 자신만큼 효도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화가 치민다.

이렇게 애썼는데 그는 왜 정작 가족들에게 상처 받을까. 바로 효와 배려 이면에 가려진 ‘교심(驕心)’ 때문이다. 태음인은 처음엔 묵묵히 배려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애썼다 싶으면 배려한 만큼 돌려받고 목소리도 크게 내고 싶어진다. 이때 자기 확신이 강해지면서 ‘내가 윗사람이니 내 말대로 따라오라’며 주변을 가르치려 드는 마음이 바로 교심이다. 가족들이 상처 줬다 여기지만, 상처의 출발은 자신의 마음이다.

자식이 봉양하면 팔순 노모는 감사해야 하고 모든 걸 자식 말대로 따라야 할까. 다른 형제들에게도 ‘나만큼은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요하니 마찰만 생긴다. 남편에게는 제대로 표현하지도 않으면서 고생한 나를 다 알아달라는 식이고, 장성한 딸도 여전히 부족하고 가르쳐야 할 대상일 뿐이다.

팔순 중반이면 마음은 대여섯 살 아이로 돌아간다. 앞으로 더 어려질 것이다. 어린아이에게 화내고 섭섭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찌 보면 부모의 은혜 중에 만 분의 일쯤 빚 갚는 일이고, 자신이 좋아서 한 일에 인정받고 인사까지 받기를 원하는 건 욕심이다.

자식 양육이든 부모 봉양이든 알고 보면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고 기뻐지고자 한 일이다. 그런데 종종 ‘희생’과 같은 거창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다 자식이 뜻대로 안되면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며 언성을 높인다. 연로한 부모에게 내가 챙겨주니 “제발, 내 말 좀 들으세요”라는 건 교심이다. 언제나 중심은 ‘나’고 내 생각이다.

환자에게 이처럼 다른 시각에서 그간의 갈등을 재정리해 주었다. 다행히 모든 갈등이 자신의 교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해했다.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할 도리만 묵묵히 해 나가기로 다짐했다. 태음인의 울증을 풀어주는 한약을 복용한 뒤 환자는 “잠도 잘 자고 머리가 맑아 살 것 같다”며 “도대체 어떤 한약이기에 진통제보다 빠르냐”며 반색한다. 마음이 움직이면 몸은 더 수월하게 변하기 마련이다.

인간은 자신이 좋아서 시작한 일에 늘 ‘옳음’을 채색한다. 또 싫어 피하고 싶은 것은 ‘틀렸다’고 덧칠한다. ‘나를 알아달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포장을 벗겨내야 갈등이 온전히 해소된다.

<강용혁 마음자리 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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