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 불일치가 키운 ‘귀한 자식’
훈육 불일치가 키운 ‘귀한 자식’
  • 강용혁 | 분당 마음자리한의원장
  • 승인 2012.02.24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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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 키워야 시집가도 귀하게 산다. 딸 가진 부모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손에 물 한 번 안 묻히면 결혼해서 호강하며 남을 부리면서 잘 살리라는 바람이다.

피부트러블과 우울증으로 내원한 20대 여성. 스트레스를 받으면 불면증에 시달리고 다음날 몸이 피곤해지면 마치 술 마신 것처럼 알록달록 피부가 붉게 올라온다. 또 담배는 피우지 않는데도 목에 마치 가래가 걸린 것처럼 늘 갑갑하다.

명문대를 졸업한 영어강사로 빼어난 미모를 지녔다. 그런데 모든 대화에 짜증이 배어 있다. 또 직장 상사가 부하를 대하듯, 상체를 뒤로 젖히고 다리를 꼰 채 상담에 응한다. 엄마가 민망해하자 “이게 뭘 어떻다고…”라며 짜증을 낸다.

분명,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그런데, 들어봐도 딱히 큰 사건은 없다. 환자는 “그냥 모든 게 다 짜증나요. 남자 친구나 학원 동료들도 그렇고, 엄마 잔소리도 그렇고…”라며 얼굴을 찌푸린다. 그러자 엄마는 “너 뒷바라지에 내가 더 힘들다”며 모녀가 옥신각신했다.

환자는 소양기가 강한 ‘의존형 소음인’이다. ‘파티 걸’처럼 주목받고 화려함을 추구한다. 이것이 충족되면 기분은 한껏 고조되고 상냥해진다. 그렇지 못하면 쉽게 좌절하고 짜증이 많다. 상대에 대한 감정적 배려는 적다.

또 매사를 ‘당여(黨與)’에 의존한다. 소음인이 ‘내’가 아닌 ‘내 편’의 힘에 의지하려는 경향이다. 부모의 재산은 당연히 내 재산이니, 취직 후에도 당당히 손을 벌린다. 또 친구의 재능 역시 내 것이니 부탁하는 것도 당당하다.

남자 친구에겐 자신의 과제준비를 빨리 도와주지 않는다며 짜증이 나있다.

자신이 ‘독립하겠다’면서 집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에 오피스텔을 얻었지만, 방청소나 장보는 것 모두 엄마에게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한다.

의존형은 7세 미만 인격형성기에 부모의 훈육이 불일치할 경우 형성된다.

어려서부터 아빠는 외동딸에게 ‘OK맨’이다. 엄마가 야단치면 아빠는 “시집가면 어차피 고생할 텐데, 아빠가 도와주는데 뭐가 문제냐”며 매번 말렸다. 물론, 적절한 칭찬은 안정적인 정서를 형성한다. 그러나 야단쳐야 할 때조차 칭찬하는 것은 결코 귀하게 키우는 것이 아니다. 자아가 팽창해 모든 걸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대신, 자긍심만 높아진다. 감당할 여력은 고려하지 않고 명품이나 화장, 의상 등 외양을 꾸미는 것에 몰두한다. 또 아이처럼 의존적이며 모든 욕구의 즉각적 충족을 원한다. 부모의 품을 떠나 녹록지 않은 현실과 부딪힐 즈음 파열음이 더 커진다. 결국, 스트레스 민감도는 높아지고, 행복지수는 낮아진다.

한껏 높아진 자긍심과 현실과의 간극이 스트레스다. 쉽게 불안을 느끼고 짜증을 내며 대인갈등의 원인이 된다. 좋은 학벌과 직장, 외모까지 다 갖추어도 결코 행복하지 못하다. 피부염과 우울증도 여기서 출발한다.

엄마는 “두 집 살림을 하느라 내가 죽을 지경이다”라며 “요즘은 왜 이렇게 키웠나 정말 후회되고 남편이 원망스럽다”고 울컥했다.

환자는 “인삼이 든 한약을 먹고는 오히려 더 악화됐다”면서 손사래를 친다. 환자를 안심시킨 뒤 인삼을 정량의 3배를 썼다. 대신, 소음인의 긍심을 돌아보게 하는 상담으로 스트레스를 누그러뜨렸다. 얼마 뒤 엄마는 “좀처럼 한약은 안 먹으려 하는데, 한 번 더 먹고 싶어한다”며 대신 내원했다.

인간은 누구나 ‘인의예지’라는 사단(四端) 중 잘나고 못난 부분을 타고난다. 부족한 부분을 돌아보고 보완하는 것이 ‘귀하게’ 키우는 것이다.

그런데 귀한 자식이라며 부모들이 오히려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강용혁|분당 마음자리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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