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명탕에 대한 오해와 착각
총명탕에 대한 오해와 착각
  • 경향신문
  • 승인 2012.03.3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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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도가 아니다. 특정지은 이름 또한 영원하지 않다(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노자 <도덕경>의 첫 구절이다. 인간의 머리에서 만들어낸 하나의 상(像)은 본질을 다 담을 수 없고, 겉포장에 집착할수록 진실과 멀어짐을 경계한 말이다. 

총명탕을 짓기 위해 내원한 고1 아들과 엄마. 엄마는 “잠도 4시간만 자고 하루 종일 공부하는데 성적은 제자리”라고 하소연한다. 또 “최근 2~3년간 꾸준히 총명탕을 먹였는데도 성적이 떨어졌다”며 “좀 더 강한 총명탕으로 지어달라”고 요구한다. 아울러 산만한 성격도 차분해지도록 처방해 달라고 말한다.

과연 총명탕으로 엄마의 고민이 한방에 해결될까. <동의보감>에는 ‘총명탕을 오래 먹으면 매일 천 마디의 말을 기억한다’고 돼 있다. 표현 그대로라면 IQ 상승이나 암기 효과도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의보감>은 도교적 색채가 강한 의서다. 서술과정에 특유의 과장된 표현도 많다.

다만, 이면의 의학 원리는 오늘날에도 그 가치가 높다. 온고지신해야 함에도 표현 그 자체에만 얽매이면, 허준 선생은 달을 가리켰는데 후학들은 손가락만 보는 격이 된다.

<동의보감>에 나오는 총명탕은 정신신경계 이상인 건망증을 치료하는 13가지 처방 중 하나다. 이 중에는 ‘공자대성침중방’이라는 처방도 있다. 공자처럼 똑똑해져 대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 제품 광고도 약간의 과장이 더해져 네이밍(Naming)이 이뤄지는 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

총명탕은 백복신·원지·석창포·생강이라는 4가지 약재가 전부다. 백복신은 심장이 허약해서 잘 놀라는 데, 원지와 석창포는 울증을 해소하고 불면 불안에, 생강은 소화기능 개선에 주로 사용된다. 수험생이 먹어서 학습증진 효과가 날 만한 약들이 아니다. 총명탕 역시 총명탕에 ‘귀판·용골’이라는 비슷한 약재가 첨가될 뿐이다. ‘동의보감’ ‘총명’ ‘공자’라는 이름 때문에 후광효과가 커진 셈이다. 한마디로 건망증 치료약이지 정상인에게 학습증진 효과가 있는 약이 아니다.

아이에게 이과·문과 지망을 물었더니 아직 결정 못 했다고 말한다. 희망 학과나 직업도 지금껏 생각해보질 않았다. 한마디로 뭔가 이루고 싶은 강렬한 꿈이 없었다. 그저 엄마가 원하는 대로 끌려온 삶이었다. 아이에게 총명탕보다 더 시급한 것은 성취 동기의 부여다. 고1인데 장래 롤모델조차 없다. 하루 종일 책상물림에 잠만 적게 잔다고 성적이 오를 리 만무하다. 자신의 꿈부터 고민하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총명탕 대신 비만 개선 한약을 처방했다. 운동량도 부족한데 과체중이기 때문이다. 집중이 잘되려면 뇌에 혈액공급이 잘돼야 한다. 그런데 체중이나 식사량이 늘면 혈액이 위장으로 몰려 상대적으로 뇌로 갈 혈액이 줄어든다.

특히 태음인은 많이 먹고 나면 머리가 맑지 않고 졸리고 눕고 싶어진다. 약간 배고픈 상태가 집중력은 가장 좋다. 엄마에게 간식을 일절 주지 말도록 당부했다.

얼마 뒤 엄마는 “집중력이 몰라보게 좋아졌다”면서 “이번 총명탕이 제일 좋다”고 흐뭇해한다. 무슨 각성제가 들어갔느냐고 묻는다. 살을 3㎏ 정도 줄여 혈액순환을 좋게 만든 것뿐이다. 몸에서 무거운 담요 하나 정도 벗겨낸 격이니 컨디션이 좋아지는 건 당연하다. 무엇보다 성취동기와 학습목표가 생긴 것이 결정적이다.

때로는 이름 하나가 사물이나 현상의 전체를 규정한다. 그로 인해 수많은 오해와 착각이 수반된다. 총명탕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노자는 이어 말한다. “언제나 욕심내지 않으면 그 오묘함을 보지만, 항상 욕심내면 드러난 껍데기만 보게 된다(常無欲 以觀其妙, 常有欲 以觀其요).”

<강용혁| 분당 마음자리 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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