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은 하나, 효능은 여러가지 출시된 약, 다시 보자
약은 하나, 효능은 여러가지 출시된 약, 다시 보자
  • 경향신문 박효순 기자 (anytoc@kyunghyang.com)
  • 승인 2016.02.1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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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멀티플레이어’ 의약품 뭐가 있나

세계적인 신약이 하나 탄생하려면 평균적으로 10~15년의 오랜 시간과 12억~17억달러 정도의 막대한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액수와 장기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공에 도달하는 신약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미 대부분 영역에서 신약 개발이 이뤄져 더 이상의 획기적인 신약이 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신약 개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미 출시된 치료제의 새로운 적응증을 획득하는 전략이 주효하고 있다. 출시된 약으로 치료 효과가 기대되는 질병이나 증상을 더 찾아내는 작업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블록버스터급 의약품인 해열진통제 ‘아스피린’(일반의약품)과 류마티스관절염 치료제 ‘휴미라’(전문의약품)를 소개한다.

■아스피린 ‘일일 저용량 요법’

심근경색이나 뇌경색 예방의 ‘표준요법’으로 정착된 아스피린은 최근 암 예방이나 치매 개선에도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제시돼 관심이 모아진다.

해열·진통·소염제의 대명사인 아스피린은 198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심혈관 질환 예방에 관한 ‘아스피린 프로텍트 복용가이드’ 적응증을 얻었다. 이후 아스피린은 해열진통제 복용뿐 아니라 심혈관·뇌혈관 관련 질환 예방을 위한 ‘일일 저용량 요법’으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국내외 연구논문들을 보면, 심근경색증 환자가 아스피린을 장기간 복용하면 심근경색증 재발률이 29% 감소되고, 급성 심근경색증 발병 후 24시간 이내에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사망률이 23%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급성 관상동맥증후군(불안정 협심증, 심근경색증) 환자에게 저용량의 아스피린 투여 시 심근경색증 발생률은 49%, 뇌졸중 발생률은 46%가 각각 감소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배희준 교수는 “심혈관 질환 예방을 목적으로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경우 뇌졸중 발생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설령 뇌졸중이 발병하더라도 중증도를 낮추고 치료 성과를 높이는 효과가 있음을 시사한다”는 국제논문을 지난 1월 발표했다.

 

심뇌혈관 질환을 예방하는 소염진통제 ‘아스피린’과 류마티스관절염을 비롯한 각종 자가면역 질환 치료제 ‘휴미라’ 등 주요 의약품들이 새로운 적응증을 추가로 획득하는 연구 및 마케팅 전략을 통해 신약 개발에 버금가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바이엘코리아·한국애브비 제공


■대장암 예방·치료 효과 입증



아스피린이 심혈관 질환뿐 아니라 암 예방이나 치매 등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이어지고 있다.

영국 프랜시스크릭 연구소에 따르면, 아스피린은 암세포가 면역체계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염증물질인 ‘프로스타글란딘 E2(prostaglandin E2)’를 억제해 암세포에 대한 면역반응을 활성화시킨다.

구체적으로 대장암에 대한 연구가 국내외적으로 활발하다. 한국원자력의학원은 아스피린이 암세포 성장에 이용되는 필수 에너지원(ATP)을 감소시켜 대장암 세포가 노화 과정으로 진입하는 기전을 밝혔다. 즉 아스피린이 암세포의 노화를 촉진해 항암제·방사선을 이용한 암 치료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영국 정부 산하 영국암연구소는 미국 국립보건연구원 등과 공동으로 ‘대장암·유방암·식도암 등 주요 암의 재발 방지와 생존율 향상에 대한 아스피린 매일 복용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대규모 임상시험을 금년부터 실시할 예정이다. 영국 전역 100여개 의료기관에서 암을 치료한 병력이 있는 1만1000명을 대상으로 최장 12년 동안 진행된다.

일본에서도 국책사업으로 아스피린의 대장암 예방 효과에 대한 임상시험에 착수했다. 대장암 유발 가능성이 높은 용종을 절제한 40~69세 7000여명이 대상이다. 이외에도 아스피린은 치매 등 신경퇴행성 질환 예방, 여성의 임신 성공률 증가에도 효과가 있음이 각종 연구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순환기내과 김병극 교수는 “아스피린은 해열진통 효과에 이어 혈소판 응집 차단 효과가 밝혀지며 심혈관 질환 예방과 재발 방지에 크게 기여한 치료제”라며 “최근 암이나 치매 등 새로운 치료 영역에서 다양한 연구 결과들이 발표됨에 따라 많은 환자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생물학적 제제 적응증 극대화

류마티스관절염 치료제로 유명한 휴미라는 여러 질환을 치료하는 ‘의약품 멀티플레이어’의 강자로 이미 떠올랐다. 휴미라는 류마티스관절염, 강직성 척추염, 건선, 크론병, 궤양성 대장염 등에 사용되는 대표적 TNF-알파 억제제다. 금년 들어 화농성 한선염, 중증 만성 소아판상건선, 소아골부착부위염 관련 관절염 등 3개 질환에 대해 추가로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다.

이로써 휴미라는 면역 관련 염증성 질환 13개 적응증을 보유하면서 화농성 한선염에 사용 가능한 유일한 생물학적 제제가 됐다. 다른 주요 경쟁품목들은 적응증이 5~7개 수준이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류마티스센터장 박성환 교수는 “전신에 작용하는 염증성 면역 질환자들은 다른 동반 질환을 같이 경험하기도 하는 만큼, 여러 만성 염증성 면역 질환들에 폭넓게 사용이 허가되었다는 점은 치료 및 관리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러스나 병원체에 대해 사람의 면역이 정상적인 방어 수준을 넘어 과도하게 반응하거나 부적절한 면역 반응으로 스스로를 공격하면 다양한 자가면역 질환들이 발생하게 된다. 류마티스관절염, 강직성 척추염, 크론병, 궤양성 대장염, 건선, 건선성 관절염, 베체트 장염 등이 그런 경우다. 전문가들은 “휴미라는 끊임없는 적응증 추가로 제품 경쟁력을 높이며 글로벌 전체 처방약 매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서 “다양한 적응증 확보는 꾸준한 연구와 여러 만성 염증성 면역 질환의 발병 기전을 제어하는 휴미라의 기본적인 작용 기전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박효순 기자 anyto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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