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학의 진실
기생충학의 진실
  •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03.22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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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투가 진행하는 ‘베란다쇼’에 나가게 됐다. 그런데 몇몇 언론사에서 베란다쇼를 다룬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은 문구가 눈에 띈다. 
 
“국내 유일의 기생충학 박사 서민 교수가 패널로 합류한다.”
 
우리나라에 기생충학과가 생긴 건 1964년, 지금은 돌아가신 서병설 교수님이 서울의대에 만드신 게 최초다. 그 후 연세의대를 비롯해 다른 의대에 기생충학과가 생기기 시작, 지금은 30개 의과대학에서 50명의 교수가 활동 중이다.
 
가장 역사가 오래됐으니 국내 1호 기생충학 박사도 서울의대에서 나온 것도 당연한 이치, 간디스토마치료제 개발에 공이 큰 임한종 교수님이 국내박사 1호로, 지도교수는 서병설 교수님이다. 정확한 연도는 모르겠지만 1960년대 말이나 70년대 초로 추정된다.
 
지금 의대에 재직 중인 기생충학교수가 모두 박사이니 필자는 빠른 순서로 따졌을 때 40등 정도는 될까 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것도 사실이 아니다. 꼭 기생충학을 전공해야 기생충학 박사를 딸 수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기생충이 창궐했던 과거에는 내과나 소아과 선생님들 중 기생충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해당 과 대신 기생충학과에서 박사를 받았다. 또 개업하신 분들 중에도 박사학위가 필요한 분들도 기생충학과를 찾아오기도 했다. 서울의대 한 곳만 따져도 기생충학으로 박사를 받은 분들이 150명을 넘을 테니 ‘국내 유일’이란 수사는 틀려도 한참 틀렸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필자를 국내 유일의 기생충학 박사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지금은 다 없어져 버린 기생충을 연구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는 편견에서다. 언젠가 ‘사랑의 스튜디오’라는 짝짓기 프로그램에 나갔을 때
시청자들은 “그런 과가 진짜로 있느냐?”며 놀라워했다.
 
심지어 의대를 나온 분들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데 우리 학교 교수님들도 “전체 41개 의대 중 30곳에 기생충학과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놀라서 까무러친다. “그래? 난 우리 학교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심지어 의사들 상당수는 “기생충도 없는데 기생충학과가 왜 있어야 하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어 모 대학에 근무하는 선배 의사 한분은 “우리 대학에 기생충학 교수가 두 명이나 있다니 말도 안 된다”며 열변을 토했다. 그 말을 내 앞에서 하는 걸 보면 기생충학에 대한 의사들의 인식이 이렇구나 싶어 씁쓸했다.
 
늘 하는 소리지만 기생충학과는 기생충으로 인류 건강증진을 위한 연구를 하는 곳이다. 꼭 기생충 박멸만이 목적이 아니라 기생충을 이용해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지에 관해 연구하는 곳이고 철새를 조사함으로써 철새가 디스토마를 세계 곳곳에 전파하는 주범이라는 것도 알릴 수 있다.
 
또 회충을 비롯해 우리 장 속에 있던 기생충은 거의 대부분 없어졌지만 사람의 뇌를 조종하는지 논란이 있는 톡소포자충을 비롯해 개회충, 스파르가눔, 광절열두조충 등 대변검사로 진단되지 않는 많은 기생충이 현재 우리 몸속에 들어 있고 인류 최대의 난적인 말라리아도 엄연히 기생충이다. 네이처를 포함한 세계 유수저널에 기생충에 관한 연구가 논문으로 실리고 기생충만을 다루는 국제학술지가 수십 개가 되는 것도 그만큼 기생충이 연구할 값어치가 있어서인 것이다.
 
물론 기생충학과가 모든 의과대학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전남대를 비롯한 11개 대학은 기생충학과가 없어도 훌륭한 의사들을 많이 길러냈으니까. 그래도 필자는 지금만큼의 교수 숫자는 계속 유지됐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기생충학 학술지를 SCIE로 키워낸 데서 보듯 기생충학 교수들은 대부분 일당백을 하는 사람들, 50명 정도만 있다면 앞으로도 쭉 훌륭한 연구로 우리나라를 빛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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