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아베베·졸라버드가 아닙니다”
“당신은 아베베·졸라버드가 아닙니다”
  •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05.03 11: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60년 로마 올림픽 마라톤 경기를 본 사람들은 크게 놀랐을 것 같다. 1등으로 골인한 아베베 비킬라란 선수가 2시간 15분으로 세계신기록을 세워서가 아니라, 그가 신발도 안 신은 채 우승 테이프를 끊었으니까. 그 모습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그는 ‘맨발의 아베베’란 이름으로 불렸다.
 
바짝 마른 체구에 그리 잘 사는 나라가 아닌 에티오피아 출신이란 것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운동화를 살 돈이 없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는 대체 선수로 올림픽에 참가해 후원사가 지급한 신발 중 맞는 게 없었을 뿐이었다.
 
우승을 하긴 했지만 로마의 마라톤 코스에는 돌 조각과 콘크리트가 깔려 있어 그가 두 시간 여를 달리는 동안 발을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다. 도쿄에서 열린 차기 올림픽에서 아베베는 마라톤화를 신고 다시 금메달을 땄는데 운이라는 게 연속으로 찾아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가 별명을 의식해 맨발로 뛰지 않은 건 현명한 선택이었다.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1980년대 장거리 스타로 유명했던 졸라 버드란 선수가 있었다. 지금 같으면 이름이 욕 같다고 할 수 있지만 그땐 딴지일보가 ‘졸라’를 유행시키기 전이라 사람들은 이름에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이 선수가 관심을 모은 건 인종차별로 인해 올림픽 참가가 금지됐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선수이고 그녀가 장거리를 뛸 때 맨발로 뛰었기 때문이다.
 
17세에 세계기록을 세울 만큼 재능이 있었던 버드는 국적을 바꿔 어렵사리 올림픽에 참가했지만 라이벌 선수와 부딪히는 바람에 메달획득에 실패했다. 버드가 왜 맨발로 뛰었는지 알 수 없지만 버드가 아베베와 다른 점은 버드는 트랙만 뛰는 장거리 선수라 부상위험은 없었다. 일설에 의하면 맨발로 뛰는 게 달리기 선수에게 부상의 위험을 줄여 준단다. 그래서 맨발로 뛰는 사람들을 보면 뭔가 철학이 있어 보이고 달리기도 더 잘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아베베 때문인지 버드 때문인지 아니면 건강에 좋다고 생각해서인지 맨발은 점점 일반인에게 확산되고 있다. 급기야는 올레길에도 맨발로 걷는 코스가 마련됐다. 사람들은 맨발로 그 길을 걸으며 자연과 하나 되는 느낌을 받는 모양이다. 그게 정말 건강에 좋은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기생충학적으로 봤을 때 맨발로 걷는 건 기생충에 감염될 확률을 높인다.
 
예를 들어보자. 개에만 감염되는 개구충이란 기생충이 있다. 그 구충에 걸린 개는 변을 볼 때 구충알을 밖으로 내보내 거기서 개구충의 유충이 껍질을 깨고 나와 흙속에 도사리면서 다른 숙주에게 들어갈 기회를 엿본다. 개구충이니 개한테 가면 제일 좋겠지만 개구충은 개가 없으면 아쉬운 대로 사람에게 침투한다. 사람은 개가 아니므로 개구충은 사람 몸 안에서 성충으로 자라지 못하고 유충으로 머문다.

 유충의 특징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것, 개구충의 유충은 사람의 피부 여기저기를 떠돌며 붉은 자국을 남긴다. 자신의 발등에 붉은 자국을 남기며 돌아다니는 벌레가 있다면 끔찍하지 않나.
 
중남미로 하이킹을 갔던 28세되는 한 남자는 그곳 해변에서 맨발로 다니다 개구충에 걸려 끔찍한 경험을 했다. 닷새간 치료를 받아 치유됐지만 피부에 난 상처는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으리라.
 
없으면 모를까, 신발이 있는데 구태여 맨발로 다니는 건 좋은 선택은 아니다. 흙 속에는 개구충 이외에도 분선충을 비롯한 몇몇 기생충이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도 다음 올림픽 땐 신발을 신고 뛰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