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물회의 비극
민물회의 비극
  •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 승인 2013.07.17 17: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1년 미얀마에 살고 있던 한국인들이 민물회를 먹으러 현지에 있는 한국식당에 갔다. 식사에 동참한 이는 모두 60명이었으니 수십 마리의 물고기가 그날 운명을 달리했겠다.


회를 잘 먹고 나면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기분이 좋은데, 아니 그래야 하는데, 그 중 일부는 그렇지 못했다. 38명이 그랬으니 ‘일부’보다는 ‘절반 이상’이 맞는 표현이다. 피부에는 발진이 생겼고 발진의 위치가 시시때때로 변해 마치 움직이는 듯했다.


피부질환이 당장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지만 뻔히 눈에 보이는 위치에 있으니 묘하게 공포감을 주기 마련이라 그들은 부리나케 병원을 찾았다. 그들을 불러 어떤 생선을 먹었느냐고 물어봤다. 메기와 가물치가 포함된 모듬회란다. 감염자들은 대개 호산구수치가 올라가 있었는데 백혈구의 한 요소인 호산구는 기생충 감염 때 증가한다. 즉 이들은 물고기를 통해 전파되는 기생충에 걸린 것이었다.





이 기생충의 이름은 유극악구충이다. 이 기생충은 개나 고양이, 여우 등이 종숙주이며 사람은 중간숙주다. 즉 사람에게 감염되면 유충상태로 여기저기 떠돌게 되며 가장 흔히 가는 부위가 바로 피부다. 환자들에게 생긴 발진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 것도 실제로 이 유충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원인을 알았으니 치료는 쉬운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기생충은 약에 아주 잘 듣지 않는가?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약에 잘 듣는 건 성충일 뿐 유충은 아니다. 사람에게 들어온 회충은 회충약 한 알로 말끔히 치료되는 반면 이 환자들은 5일간 치료를 받았지만 일부 환자에서는 이 기생충이 죽지 않고 다시 활동을 개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한바탕 소동을 겪었던 이 60명은 당분간 회를 먹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미얀마의 사례이고 우리나라와는 무관한 일이라는 것이 기생충학계의 생각이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2011년 8월 국내 근교 식당에서 카운터를 보던 32세 여성이 코와 입술 사이에 뭔가 있는 느낌이 들어 병원을 찾았다. 1cm쯤 돼 보이는 그 뭔가는 가려움증을 유발했고 심지어 움직이는 느낌까지 받았다. 그녀는 1년 넘게 수술을 미루다 결국 그 종괴를 떼어냈는데 병리검사에서는 그 종괴 안에 기생충이 들어 있었다고 했다.


진단결과 그 기생충은 유극악구충의 유충으로 밝혀졌다. 당연히 민물고기가 원인일 것으로 추정됐지만 그녀는 회를 좋아하는 여성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 종괴가 생기기 전까지 그녀는 외국에 나가 본 적도 없었다.


이는 두 가지를 시사해 준다. 첫째, 우리나라도 더 이상 유극악구충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 둘째, 민물회 말고도 다른 감염원이 있을 수 있다는 것. 두 번째는 기생충학자들이 차차 밝혀내야 할 과제일 테니 첫 번째에 대해서만 언급한다.


사실 우리나라 물고기에서 유극악구충의 유충이 발견된 적은 딱 한 번 있다. 1973년 김해의 가물치에서 두 마리의 유충이 나온 것. 게다가 2011년에는 유극악구충의 종숙주인 족제비에서 성충이 발견된 적도 있으니 빈도는 드물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 기생충이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유극악구충은 대개 피부를 침범하는 데 그치지만 수틀리면 뇌를 침범해 뇌막염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회를 먹어서는 안 되는 걸까? 각자의 선택에 달렸지만 필자는 앞으로도 민물회를 즐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민물회를 먹는 사람은 하루 수십만명에 달하지만 유극악구충에 걸린 환자는 지금까지 딱 한명 나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