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 약사의 약 부작용 이야기] 항생제 먹었더니 입맛이 변했다고요?
[배현 약사의 약 부작용 이야기] 항생제 먹었더니 입맛이 변했다고요?
  • 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18.12.21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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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
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

“김은호 님, 지난번과 동일하게 약이 나왔네요. 증상은 많이 좋아지셨어요?”

“몰라요. 이번 기침은 아주 오래가네요. 그래도 이번에 먹은 약이 좀 나은 것 같아요.”

“지난번에 항생제가 바뀌었던데 그걸로 효과를 보신 것 같아요. 약 드시면서 불편한 점은 없으셨어요?”

약사의 질문을 듣는 순간 환자 분의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약을 먹었더니 약사님 말처럼 입이 소태처럼 쓰고 입맛이 뚝 떨어졌어요. 정말 괴로워 혼났어요.”

“네……. 드셨던 클래리시드Ⓡ(클래리스로마이신)는 그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항생제예요. 만일 증상이 너무 심하면 의사와 상의한 후 약을 변경해야합니다.”

클래리시드Ⓡ(클래리스로마이신)는 마크로라이드계 항생제로 세균의 단백질 합성을 억제해 세균증식을 막는 정균제입니다(항생제는 크게 세균을 직접 죽이는 ‘살균제’와 세균 증식을 막는 ‘정균제’로 나뉨).

광범위한 세균에 효과를 보여 일차 선택 항생제에 효과를 보이지 않는 인후염, 편도염, 부비동염, 기관지염, 폐렴, 중이염 등에 사용되며 아목시실린, 프로톤 펌프 저해제(PPI)와 함께 헬리코박터 제균요법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약 복용 후 나타나는 부작용으로는 복통, 설사, 소화불량, 울렁거림, 구토 등이 있습니다. 설사나 변비는 장내 세균총이 손상받아 나타나는 일반적인 항생제 부작용이죠. 복통이나 울렁거림, 구토는 클래리시드Ⓡ(클래리스로마이신), 지스로맥스Ⓡ(아자스로마이신), 루리드Ⓡ(록시스로마이신) 등 마크로라이드계 항생제가 위장관에 작용해 나타나는 특이 부작용입니다.

그런데 보다 주목해야 할 부작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미각장애’입니다. 혹시 약을 복용한 후 입이 쓰고 입맛이 뚝 떨어져 고생한 적 있으셨나요? 물론 입에서 약이 녹아 쓴 맛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거나 평소 먹던 음식이 다른 맛으로 느껴진다면 약물 부작용일 수 있습니다.

혀에 있는 미뢰에는 맛수용기 세포가 있습니다. 맛수용기에 미각자극물질이 결합하면 미각신경을 통해 뇌로 자극이 전달돼 맛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짠맛, 단맛, 신맛, 쓴맛, 감칠맛’ 등 5가지 다양한 맛을 느낍니다.

하지만 감염증, 안면신경마비(벨 마비), 틀니나 치아 교정기 등 구강장치, 치과치료, 노화, 약물복용 등으로 인해 미각 신경이나 입안이 손상되면 미각장애가 발생할 수 있지요.

복용 후 미각장애를 일으키는 약물들은 미뢰를 손상시키는 항암제, 삼환계 항우울제, 구강을 건조시키는 항히스타민제나 교감신경흥분제, 혈압약, 아연 결핍을 유도해 미각 세포를 손상시키는 카프릴정Ⓡ(캅토프릴, 혈압약), 마도파Ⓡ(레보도파, 파킨슨병약), 라식스Ⓡ(푸로세미드, 이뇨제), 약 자체에 쓴맛이 강한 이모반Ⓡ(조피클론, 수면제), 라제팜Ⓡ(플루니트라제팜, 수면제) 등이 있습니다.

페니실린계, 퀴놀론계, 마크로라이드계 항생제들도 미각장애를 유발하지요. 하지만 미각에 영향을 미치는 약물은 종류만 해도 250개가 넘고 기전이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많은 약 중 마크로라이드계 항생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미각장애 발생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일부 환자의 경우 미각이 회복되는 데 한 달 넘게 걸리고 아예 회복되지 않는 사례도 보고됐습니다.

맛을 느끼는 것은 식욕과 깊게 연관돼 있으며 쓴맛을 느끼는 것은 위험물질을 먹지 않기 위한 방어기전입니다. 쓴맛이 나는 약은 위장관 신경에 작용해 메스꺼움을 유발하거나 흡수를 지연시킵니다. 식욕저하도 자연스레 뒤따라오는데 이로 인해 체중감소, 체력저하, 우울증 등을 유발해 회복을 더디게 하고 삶의 질을 뚝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마크로라이드계 항생제가 입맛을 변화시키는 이유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습니다. 단지 마크로라이드계 항생제 자체가 쓴맛이 강하며 미각신경 쪽에 직접 작용해 미각장애를 일으키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마크로라이드계 항생제가 청각·후각손실, 일부 정신장애를 일으키는 신경독성이 있다는 점도 미각신경에 작용해 미각장애 발생위험을 높입니다.

따라서 마크로라이드계 항생제 복용 뒤 나타나는 미각장애는 절대 쉽게 생각해선 안 됩니다. 입맛의 변화는 개인차가 크며 다른 사람은 알 수 없어요. 부작용에 대한 심각성을 환자 스스로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만일 약물 복용 후 입맛의 변화가 심하다면 의사와 상의해주세요. 경우에 따라 약물을 변경하거나 용량을 조절해야 할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Permanent Taste and Smell Disorders Induced by Clarithromycin> 리포트에 실린 내용을 인용하면서 칼럼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약 관련 미각과 냄새장애는 예상할 수 없게 발생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 생길 수 있는 삶의 질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과 영구적인 감각상실을 고려하면 임상의는 잠재적으로 부작용이 있는 약을 처방할 때 주의를 기울여야하며 불필요한 항생제 사용을 삼가야합니다(In conclusion, drug-induced taste and smell disorders may occur unexpectedly. Considering the negative effects on the life quality and the permanent sensory loss that occurs in certain cases, clinicians should exercise caution in prescribing medicine that would potentially have such side effects and they should refrain from unnecessary use of antibiotics).”

모든 약물을 부작용이 있습니다. 약 복용 후 작은 신체변화라도 놓치지 마세요. 사소한 듯 보이는 부작용이 자칫 몸에 큰 손상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문헌

- 이오영, <위장관 운동 조절 약물 Gastrointestinal Motility Modulating Drugs>, J Korean Med Assoc 2009.
- Lauralee Sherwood, 《인체 생리학 제9판》, 강명숙 외 21 옮김, 라이프사이언스, 2016
- Ackerman BH1, Kasbekar N. <Disturbances of taste and smell induced by drugs.> Pharmacotherapy. 1997 May-Jun;17(3):482-96
- STEVEN M. BROMLEY <Smell and Taste Disorders: A Primary Care Approach> Am Fam Physician. 2000 Jan 15;61(2):427-436
-ihat Şengeze, Vedat Ali Yürekli, Hasan Rıfat Koyuncuoğlu, Serkan Kırbaş <Permanent Taste and Smell Disorders Induced by Clarithromycin: A Case Report>
-M. Bandettini di Poggio, Daniela Audenino, Alberto Primavera <Clarithromycin-induced neurotoxicity in adults>, journal of clinical neuroscience, 2011
-오오츠 후미코, 《알기쉬운 약물 부작용 메커니즘》, 정성훈 역, 정다와, 2015
-이상봉, 정세영, 《근거중심의 외래진료 매뉴얼1》, 대한의학서적, 2011
-드럭인포 홈페이지 www.druginf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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