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 기생충에 감염된 것만 밝혀냈다면…
세종대왕이 기생충에 감염된 것만 밝혀냈다면…
  •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08.16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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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말한 적 있지만, 우리나라는 기생충에 대한 편견이 유난히 심한 나라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달리 기생충은 눈에 잘 보여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실제로 과학강연을 할 때 아이들에게 기생충을 보여주면 ‘징그럽다’는 반응보다 ‘귀엽다’고 하는 아이들이 훨씬 더 많다. 하지만 대학생과 어른들은 기생충 중 가장 예쁜 편충을 보여줘도 ‘징그럽다’는 반응을 보인다.


기생충을 통해 과학에 흥미를 가진 아이들이 장차 한국을 이끌어갈 과학자로 자랄 수 있다는 걸 감안한다면 이럴 적부터 기생충에 대한 편견에 노출되는 작금의 현실은 과학입국의 걸림돌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이웃 일본만 해도 멋들어진 기생충박물관이 있어 아이들이 기생충에 대한 관심을 유지할 수 있고 미국에선 기생충이 상품화 돼 인형이나 티셔츠 등으로 판매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 과학 분야 노벨상을 석권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기생충에 대한 편견이 해로운 두 번째 이유는 기생충 염려증 환자의 존재다. 인지도가 올라감에 따라 그런 분들이 연락을 많이 하는데 그분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 몸에 기생충이 있다는 생각으로 괴로워하고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초래되고 있으니 말이다.

기생충은 대장균이 그런 것처럼 우리 몸에 쭉 있어온 존재들이고 그들이 있다 해서 크게 해로울 건 없다. 설사 기생충이 있다고 해도 피터팬에게 팅거벨이 나타난 것처럼 “어머나 내 몸에도 기생충이 와줬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건만 기생충이 있을까봐 피부를 잡아 뜯고 몸 곳곳을 현미경처럼 살펴보는 사람이 많다는 건 기생충에 대한 편견이 쉽지 않음을 말해준다.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런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강의 때 한 학생의 질문을 받고 당황했다. 몇 명 들어오지 않는 강의를 하고 몇 명 읽지도 않는 책을 낸다고 해서 그런 편견이 사라질 리는 만무해 그냥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편견극복을 위해 보다 획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집에 가는 내내 했다. 

 

그래서 생각한 한 가지 방법은 왕릉을 뒤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종대왕이 묻혀 있는 무덤의 흙에서 기생충 알이 나온다면 세종대왕이 기생충에 감염됐다는 걸 입증할 수 있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드시는 등 뛰어난 업적을 남겼고 그러면서도 6명의 부인으로부터 아들 18명, 딸 4명을 얻었을 만큼 육체적으로도 걸출하셨다.
 

그런 분이 다수의 기생충에 걸렸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매스컴에 알려진다면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함직하다.


“기생충에 걸렸는데도 저런 일을 하신 걸 보면 기생충이라는 게 있어도 괜찮은가봐?” 좀 더 나아가서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다. “세종대왕이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게 기생충 때문이라며? 나도 기생충에 걸리고 싶다.” 
 

미라로 발견된 조선시대 양반들이 죄다 기생충에 걸려 있었던 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왕이라 해도 기생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을 터. 이 일이 성사된다면 기생충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이고 기생충에 대한 편견도 어느 정도 없앨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런 일이 쉬운 건 아니다. 왕이 묻혔던 곳의 흙이 지금까지도 잘 보존돼 있는지도 모르겠고 돌아가신 왕의 기생충검사를 하겠다면 뜻밖의 저항에 직면할 수도 있으니까.


특히 수목장을 반대하는 등 우리나라 전통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유림들의 존재도 부담이 된다. 하지만 백성을 유난히 사랑하셨던 세종대왕이라면 우리나라의 과학입국과 환자들의 고통해소를 위해 기꺼이 기생충검사를 허락하시지 않았을까? 편견을 해소할 다른 방법도 생각해 봐야겠지만 조선왕들의 기생충검사 프로젝트도 한번 추진해 보고 싶다.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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