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 인체조직기증 활성화 필요하다]공적관리 전환 vs 기존체제 유지 ‘힘 겨루기’
[특별기획 - 인체조직기증 활성화 필요하다]공적관리 전환 vs 기존체제 유지 ‘힘 겨루기’
  • 김치중 기자
  • 승인 2013.08.2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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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선 ‘인체유래물처럼 공공재 관리’ 개정안 발의
◆ 의료계선 “기존 조직은행 배제 안될 말” 거센 반발
◆ 밥그릇 싸움속 기증 활성화 대의명분 상실 우려도

과거 은어(隱語) 중 ‘쪼록꾼’이란 말이 있었다. 매혈을 일삼는 사람을 가리킨 말로 유리병 속에 피가 빨려 들어갈 때 나는 소리를 빗댄 것이다. 매혈이 성행할 때 한 달에 2~3번씩 상습적으로 매혈하는 사람은 ‘귀신’으로 통했다. 30년 전만해도 종합병원에서도 매혈이 버젓이 이뤄졌다. 매혈은 1981년 혈액관리법 개정과 함께 정부가 대한적십자사에 혈액관리사업을 위탁하면서 자취를 감췄다. 매혈을 불법행위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 인체조직, 부가가치세 붙는 진료재료

2004년 ‘인체조직 안전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인체조직법)이 제정됐는데도 혈액, 장기, 조혈모세포 등 인체유래물과 달리 상품으로 여겨지고 있는 인체조직. 이에 대한 인식을 전환해 공공재로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현행 인체조직법에 따르면 피부와 뼈, 힘줄 등 인체조직은 부가가치세가 붙는 상품으로 규정돼 있다. 이에 건강심사평가원은 인체조직의 건강보험급여 상한가격을 정할 때 처리·가공·보존비용 등 원가에 부가가치세 10%를 더해 가격을 결정한다. 수입의 경우 원가에 통관비, 운송비, 관세 등을 추가해 책정된다.

국내 수입업체 관계자는 “미국에서 인체조직을 수입할 경우 통관비, 운송비, 관세 등과 함께 미국 내 인건비, 시설비, 금융비 등이 반영돼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에 따르면 올 4월까지 인체조직수입액은 약 253억원. 수입이식재가 시장의 74%를 점유하고 있어 품질은 물론 안정적인 수급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국회, 공적관리기구 설립 개정안 발의

이에 일각에서는 인체조직도 헌혈 등과 같이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 상업성을 배제하고 공공재로 운영하는 이른바 ‘공적관리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 민주당 오제세 의원은 올 5월 ‘인체조직안전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현재 상품으로 규정돼 있는 인체조직을 정부감독과 예산지원을 통한 공공재 전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개정안에는 조직기증·관리를 위해 국립조직관리기관을 신설하고 인체조직 전문구득기관 지정도 추가했다. 또 국가가 조직기증관리와 이식 등에 대한 정보를 관리할 수 있는 전산망시스템을 구축하도록 했다.

오 의원은 “2004년 제정된 인체조직법 미비로 인해 무상으로 기증된 인체조직(피부, 뼈, 힘줄 등)이 혈액, 장기, 조혈모세포 등 다른 인체유래물과 달리 상품으로 방치돼 있어 공적관리체계 확립이 필요하다”며 법률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인체조직기증 활성화와 안전성 강화를 위해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통과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의료계의 반발이 예상보다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 의료계 일각 “기존 조직은행 배제” 불만 팽배

의료계 일각에서는 국립기관 신설과 전문구득기관 지정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국립기관업무를 담당할 가능성이 높은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에 대한 불신임과 기존 조직은행을 제쳐두면서까지 별도의 인체조직 전문구득기관을 지정할 필요가 있느냐는 불만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한국조직은행연합회 간사 전욱 교수(한림대한강성심병원)는 “우리는 국립기관 신설·전문구득기관 지정 등이 필요 없다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며 “인체조직기증 활성화와 관련 의료분야 발전을 위해 헌신한 기존 민간조직은행들을 배제한 채 진행되고 있는 법률안 개정안은 제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인체조직 관련 사업예산을 적정하게 분배해 조직은행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인체조직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는 한국인체조직기증재단은 “인간의 몸에서 나온 유래물은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라며 “민간조직은행의 위축을 우려해 공적 기관 설립을 반대하는 것은 공공재적 지위 획득이 필요한 인체조직을 상품으로 방치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또 “인체조직과 유사한 기증·분배과정을 지닌 혈액은 이미 홍보, 채혈, 보관(저장), 가공, 분배 등 최종수혜자에게 공급되는 모든 과정에서 정부예산지원과 적십자혈액원을 통해 업무가 수행되고 있다”며 “장기도 홍보, 적출, 이식 등 모든 과정이 정부예산지원과 한국장기기증원을 통해 수행되고 있는 만큼 인체조직도 공적기관에 의해 모든 과정이 관리돼야한다”고 주장했다. 기존체제 유지와 공적기관 신설을 통한 발전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서울대병원 조직은행장 한규섭 교수는 “인체조직 관리와 운영을 국가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며 “하지만 민간조직은행이 할 수 있는 영역까지 차단하거나 통제하면 안 된다”며 상생을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관련기관의 관계자는 “인체조직기증 활성화를 통해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인체조직 관련 사업을 개선해야 한다는 큰 틀에는 의료계나 관련기관, 정치권도 이의가 없을 것”이라며 “‘백가쟁명(百家爭鳴)’식 해법만을 쏟아내기만 하면 자칫 밥그릇싸움으로 비쳐져 인체조직기증 활성화라는 대의명분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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