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잡이 수혈, 이대로 안된다
마구잡이 수혈, 이대로 안된다
  • 박종훈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08.21 1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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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미국 NBCUS(National Blood Collection and Utilization Survey)자료에 의하면 미국의 경우 수혈이 2008년 대비 2011년에는 8.2%나 줄었다고 한다. 미국인들의 건강상태가 그새 엄청 좋아진 걸까? 8.2%는 실로 엄청난 수치인데 불과 3년 사이에 그렇게 수혈이 줄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의료인들이 중심이 돼 수혈을 줄이기 위한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일반국민들은 종종 수혈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대개는 해롭지 않고 의사들이 필요할 때 권하는 것 정도로 알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몸이 피곤하다면서 원기회복을 위해 피주사 좀 맞으면 안 되겠느냐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수혈에 무척 관대한 편이다.

그런데 헌혈을 받아 가공하고 수혈로 이어지기까지의 과정이 잘 관리되고 수혈할 때 혈액형과 환자만 잘 확인하면 문제가 없는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수혈은 그 자체가 일종의 장기이식과 같은 것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혈액세포알갱이가 있고 이들이 인체에 들어가면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수술 후 면역상태가 저하된 환자나 감염우려환자들에게 수혈은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이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됐는데도 우리 사회는 수혈에 대해 너무도 관대하다. 관심 있는 일부 의사들이나 알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누가 해결해야 하나? 정부와 관련 학회 차원에서 수혈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으로 정부나 학회는 책임을 다 한 것인가? 현장에서 가이드라인과 전혀 무관하게 마구 수혈이 이뤄지고 있는데 가이드라인만 주면 되나?

수혈을 받을 때 환자가 지불하는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다. 하지만 이면에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실은 매우 비싸게 만들어지는 것이 피다. 피가 싸다보니 의료현장에서 위험성을 인지하고 수혈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구에서는 수술 전 검사에서 빈혈이 발견되면 가능한 한 빈혈을 치료하고 수술하지만 우리는 그저 피 좀 주고 혈색소수치를 강제로 맞춘 후 수술실로 들어가게 하는 구조다. 성격들도 급하고 빈혈을 교정하는 비용보다 피 값이 워낙 싸기 때문인데 여기에 함정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아무런 생각이 없으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국민보건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망치는 정책인데도 아무런 문제없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차원에서 수혈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헌혈을 늘려서 늘어나는 수혈량을 맞추는 식의 혈액관리정책은 던져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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