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외면한 한의사, 국민 무서운 줄 알아야
국민 외면한 한의사, 국민 무서운 줄 알아야
  • 조창연 편집국장
  • 승인 2013.09.1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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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용 한방첩약의 건강보험 적용이 사실상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한의사협회는 지난8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전체 회원 2만여명을 대상으로 총회를 개최하고 한방첩약 건강보험적용 시범사업에 참여할 것인지 여부를 물었다. 그 결과 총 94.5%에 해당하는 1만1704명이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했다.

오는 10월로 예정된 시범사업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아 시행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 됐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지금까지의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자. 먼저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연 2000억원을 투입해 3년간 한방첩약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시범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한약사회가 시범사업에 한약사와 한약조제권한을 가진 약사를 포함시켜 달라고 요구했고 이에 복지부는 양 단체가 협의해 시행방안을 가져오라고 했다. 하지만 서로 의견차가 크고 한의계 내부에서조차 의견이 분분한 탓에 양 단체가 협상테이블조차 열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됐다.

 

 

이후 첩약 건보적용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온 김필건 회장이 한의사협회장으로 당선되면서 한의계 내부에 본격적인 갈등이 생겼다. 시범사업이 얼마 안 남았으니 논의라도 해보자는 입장과 무조건 약사 참여는 안 된다는 입장으로 극명하게 나뉜 것이다. 논의해보자는 그룹에서 먼저 250여명의 대표자로 구성된 의결기구인 대의원총회를 열어 TF팀을 구성하자 현 집행부는 거세게 반발했고 그 결과 전 회원을 대상으로 한 총회가 열리게 된 것이다.

결국 한의사들의 압도적인 반대로 시범사업은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된 것이다.한의사협회는 총회 결과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첩약의보, 무조건 반대는 아니다’라는 성명서를 내고 시범사업 반대이유로 비의료인인 약사를 배제할 것, 제도적 장치를 완비한 후 시행할 것, 4대 중증질환에 한의약치료를 포함시킬 것 등을 들었다.

논리야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그렇다 치자. 사실 한의사들이 내홍을 겪든 단합을 하든, 약사들과 타협을 하든 싸우든 국민에게는 중요한 일도 아니고 별 관심도 없는 일이다. 한약분쟁 시절부터 이익단체 간 다툼을 하도 봐와 으레 ‘그러려니’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보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이번 시범사업을 실시하지 못하게 될 경우 이로 인해 일반국민들이 입게 될 손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이번 일을 주도한 한의사협회와 이에 동참한 한의사들에게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3년간 총 6000억원이라는 예산을 들여 시범사업을 실시하겠다고 했다. 이로 인한 혜택은 한의사도, 약사도 받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수혜자는 국민이다. 그런데 한의사들의 반대로 인해 시범사업을 실시하지 못하고 국민이 혜택을 받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또 하나 시점의 문제를 보자. 출판사와 책을 내기로 한 작가가 출간을 며칠 앞두고 모든 준비를 마친 출판사에게 “나, 도저히 글을 못 쓰겠소” 했을 때 결과에 대한 책임이 작가에게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하물며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정책사업이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의사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실시조차하지 못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 설령 한의계 내부 의견이 크게 엇갈렸어도 최소한 대책 마련을 위한 시간을 남겨놓고 이런 일을 결정해야 하는 것 아닐까.

바로 이것이 한의사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제 밥그릇 챙기기’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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