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평원 라디오광고 자칫 불신만 키워
심평원 라디오광고 자칫 불신만 키워
  • 박종훈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10.16 1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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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일본에서는 의사들의 허위청구를 잡아내기 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수진자조회를 시행한 적이 있다. 수진자조회라는 것은 환자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언제 어느 병원에 가서 진료한 적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는 진료하지 않았으면서도 마치 진료한 것처럼 허위로 청구하는 경우를 근절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였다. 한 마디로 의사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일본의사 가운데 항의의 표시로 자살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수진자조회로 인해 의사와 환자 간 신뢰가 깨졌으며 의사로서 명예가 실추됐다는 것이었다. 수진자조회를 한다는 것은 환자로 하여금 자신을 치료하는 의사가 허위청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살사건이 계기가 됐는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일본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수진자조회를 하지 않게 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10여년 전 우편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런 조회를 실시한 적이 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환자의 말로 인해 의료기관들이 부당하게 현지실사를 당하기도 하는 등 부작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박종훈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월말에 카드대금 사용내역서를 보면 종종 사용한 기억이 나지 않는데도 청구된 것을 보고 카드사에 문의한 적이 몇 번 있는데 매번 필자의 기억이 문제인 것으로 드러나곤 했다. 그 달 사용한 카드결제도 이런데 하물며 수개월 전에 이용한 진료내역을 정확히 기억 못하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일 것이다.

당시 환자가 그 병원을 이용한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표시해 반송하면 무조건 실사가 나왔던 것 같다. 어떤 경우는 환자가 병원 측의 확인전화에 ‘아, 갔었네요’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수진자조회는 그리 오래하지 않았는데 사실인지 아닌지 몰라도 조회에 들인 비용에 비해 회수금액이 미진하기 때문라는 말이 있었다.

그런데 심사평가원은 요즘 아침 출근시간에 라디오방송을 통해 이런 광고를 하고 있다. 머리가 아파 병원에 다녀온 환자가 치료비용에 대해 의문을 갖는 멘트가 나오고 친절하게도 심평원에 문의하면 진료비 내역을 조회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부당하게 청구된 비용은 돌려받아 좋고 정당하게 지불됐다면 신뢰할 수 있어 좋다고 한다.

국민을 대상으로 병원의 진료비용을 한 번쯤 의심해 보라는 광고인데 이 광고는 결국 병원 진료비는 늘 의심해봐야 한다는 뉘앙스로 들린다. 다시 말해 필자에게는 병원은 믿을 곳이 못 된다는 말로 들린다. 물론 문제가 없이 정당하다고 하면 신뢰가 쌓여 좋다고는 했지만 과연 이런 광고를 듣는 국민들은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까?

대다수 국민들은 이미 진료비 내역서를 확인하고 이상한 부분은 병원에 확인한다. 그래도 부당하다고 판단하면 심사평가원에 문의할 줄도 안다. 그런데도 굳이 라디오광고까지 동원해 진료비를 들여다보라는 내용을 알려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의사와 환자간 서로의 불신만 더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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