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肝) 보는 의사 한광협의 청진기] ‘좋은 의사, 나쁜 의사’
[간(肝) 보는 의사 한광협의 청진기] ‘좋은 의사, 나쁜 의사’
  • 한광협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ㅣ정리·한정선 기자 (fk0824@k-health.com)
  • 승인 2021.06.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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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협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
한광협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

나쁜 의사가 되기를 원하는 의사는 없다. 단지 진료결과에 따라 환자나 보호자가 보기에 좋은 의사와 나쁜 의사로 나뉘게 된다.

의사라는 직업은 다른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돌보는 관계로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수반한 책임과 의무가 요구되며 긴급하고도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선의의 결정이라고 해서 결과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며 나쁜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환자나 보호자도 많다. 또 자신의 건강 또는 사랑하는 가족이 생명을 잃는 경우 논리적 이해에 앞서 비통한 감정이 우선돼 의료진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주치의는 나쁜 의사가 되기도 한다.

환자의 고통을 돌보기 위해 의사에게는 의학적 지식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필자는 후배 의사나 의과대학생들에게 ‘좋은 의사가 되는 길’을 주제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의과대학생에게 누가 좋은 의사인가 질문을 던지면 ‘친절한 의사’ ‘도덕성이 높은 의사’를 꼽지만 환자에게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능하고 실력 있는 의사’가 우선이다.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환자를 존중하고 환자가 필요로 할 때 도와주며 단순히 질병 치료를 넘어 건강을 지켜줘야 한다. 이뿐 아니라 환자를 돌보는 데 필요한 정보를 잘 전달할 수 있어야 하며 환자의 의견을 잘 들으며 고통에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좋은 의사가 되기 싫어하는 의사는 없는데 왜 환자나 가족들에게 실망을 줄까? 그 이유는 항상 누구에게나 좋은 진료결과를 낼 수 있는 의사는 되기 어렵고 소통과 공감의 능력도지속적으로 충전하지 않으면 고갈되기 때문이다.

매해 많은 신약과 신의료기술이 개발되고 연구결과가 발표되는 등 의학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 많은 지식과 정보를 지속적으로 파악해 진료에 능숙하게 적용하는 유능한 의사가 되기는 어려워서 인공지능(AI)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청도 있다.

필자는 간(肝) 전문가로 황금시대(golden age)에 대학교수로 근무했다. 의사는 병을 찾아내는 새로운 진단기술(영상진단, 혈액진단검사)의 도움이 필요하며 효과적인 치료제가 없으면 병이 악화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간질환인 B형과 C형간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20세기에 발견되고 치료제는 주로 21세기에 개발됐다. 필자는 신약 개발에 참여도 하고 그 덕분에 환자의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

그중 잊히지 않는 한 환자가 있다. 2000년도 초 B형간염을 앓다가 간경변으로 진행된 환자였다. 항바이러스제를 투약했으나 내성이 생겨 간이식을 받았는데 이식 후 B형간염 재발을 막고자 HBIG(고농도 면역항체)를 주입하고 항바이러스제를 투약했으나 둘 다 내성이 생겨 상태가 악화되고 있었다.

다행히 국내에서는 아직 사용승인이 나지 않은 내성에 잘 듣는 신약 구입방법을 다방면으로 알아보고 환자와 함께 홍콩대학병원에 가서 임상시험 중인 신약을 구한 덕분에 환자는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었다.

21세기 초만 해도 C형간염은 1년 고생해서 치료해도 완치 확률이 1/3 정도도 안 됐다. 하지만 이제는 두 달만 경구약을 복용하면 99%가 완치되는 시대가 됐다. 과학의 발전이 빛나는 황금시대 덕분에 본인은 좋은 의사에서 간질환의 명의로 승격됐다.

이렇게 의학의 발달은 불치의 영역을 줄여 가고 있지만 그만큼 의사 역할에 대한 기대와 책임도 커졌다. 최근 환자 단체가 나쁜 의료인의 진료를 법으로 금지하고 수술실에 CCTV 설치로 감시하는 법안을 올린 기사를 보면서 얼마나 마음의 상처가 컸으면 의료인을 처벌하거나 불신하게 됐나 반성하게 된다.

실제로 최근에는 진료 시 환자가 의사의 말을 휴대전화로 녹취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한다. 의사가 고통받는 환자의 내면의 소리를 신뢰의 청진기로 듣지 않으면 환자는 불신감으로 녹취를 하게 되고 의사를 감시하자고 주장하게 된다.

처벌과 감시가 나쁜 의사를 줄이는 데 다소 도움이 될지는 모르나 좋은 의사는 믿음과 격려 속에서 더 좋은 의사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다행히 아직 의료진은 국민 조사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직업군으로 평가받고 있고 K-방역을 통해 국내 의료진의 우수성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식이 넘치나 지혜가 부족하고 정보는 많으나 진리는 찾기 어려운 시대다. 이 속에서 우리의 교육이 사람의 도리(道理)보다 기술을 가르치는 데 급급하진 않은지, 의술(醫術) 이전에 의도(醫道)를, 즉 인문학을 기초로 한 인성교육을 소홀히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유능한 의사가 되기는 평생 노력해도 쉽지 않으나 친절한 의사, 설명 잘하는 의사, 환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의사가 되는 것은 노력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물론 이러한 의료환경을 위한 제도적 개선도 필요하다. 값싸고 질 낮은 의료에서 의사가 환자의 소리에 경청할 진료환경을 보장하고 지원해야 한다. 

이제부터 싸늘한 이론으로 무장한 의사에서 환자의 소리에 경청하는 가슴 따뜻한 인간미 넘치는 좋은 의사가 돼 사랑받도록 노력하자. 누구나 나쁜 의사가 되기를 원하진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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