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식의보감] 속쓰림엔 해표초? 갑오징어뼈는 최고의 제산제다
[한동하의 식의보감] 속쓰림엔 해표초? 갑오징어뼈는 최고의 제산제다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1.07.19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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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오징어는 여름철 해산물로 많이 먹는다. 단백질이 풍부하고 타우린도 많아서 여름철 피로해소에도 좋다. 살이 도톰한 갑오징어도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별미다. 그런데 주부들은 대부분 갑오징어뼈를 버린다. 하지만 갑오징어뼈는 가장 훌륭한 약재이기 때문에 버려선 안 된다.

갑오징어는 갑(甲)옷처럼 생긴 뼈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갑오징어는 연체동물로 엄밀하게 말하면 뼈가 아니다. 그냥 단단한 고체 구조물이다.

갑오징어뼈는 공기방울이 가득한 작은 미세한 방들로 채워진 구조물로 돼 있다. 이들의 역할은 수압을 견디면서 동시에 부력을 조절하는 것. 따라서 갑오징어뼈는 물에 뜰 수 있다. 필자는 어릴 적 어머니께서 갑오징어를 손질할 때 옆에서 갑오징어뼈를 얻어 돛을 달아 장난감 배를 만들어 놀았던 기억이 있다.

갑오징어뼈의 주성분은 아라고나이트(aragonite)다. 90% 이상이 탄산칼슘이며 이밖에 인산칼슘, 인산나트륨, 마그네슘, 철분, 소량의 미네랄 솔트로 구성돼 있다.

갑오징어뼈는 쉽게 가루낼 수 있어서 과거부터 금속 세공용 연마제로도 사용됐다. 최근에는 치약의 원료, 제산제, 동물들의 칼슘 식이보충제로 이용되고 있다. 인터넷에 갑오징어뼈를 검색해 보면 앵무새나 거북이에게 칼슘을 보충할 목적으로 많이 유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의서에는 갑오징어가 오적어(烏賊魚)로 나온다. 갑오징어는 일반적으로 수압을 잘 견디지 못해서 얕은 해수의 표면에 자주 떠 있는데 이때 까마귀가 다가와서 낚아채려고 하면 갑오징어가 반대로 까마귀를 끌고 바닷속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까마귀[烏]의 적[賊]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정말 오징어가 까마귀를 잡아먹을지는 의문이다.

갑오징어는 오적어라는 이름 외에도 오즉(烏鰂)이라는 이름도 있다. <본초강목>에는 ‘즉(鰂)은 뱃속에 검은 묵이 있어서 오즉(烏鰂)이라고 한 것이다’라고 했고 <자산어보>에서는 ‘즉(鰂)은 흑어(黑魚)를 의미한다’라고 했다. 어찌됐든 우리가 부르는 ‘오징어’라는 한글 이름은 오적어(烏賊魚) 혹은 오즉어(烏鰂魚)를 음차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갑오징어의 뼈는 오적어골(烏賊魚骨) 혹은 오적골(烏賊骨)이라고도 하고 해표초(海螵蛸)라는 이름도 따로 있다. <식료본초>를 보면 ‘해표초는 소아와 어른의 설사에 사용한다. 노랗게 구워서 껍질을 벗기고 가루 낸 후에 물에 넣어서 조복하면 좋다’라고 했다.

<본초강목>에는 ‘오랫동안 복용하면 남자의 정을 더해줘서 자식을 낳게 한다’고 했다. 이것은 남성 난임에 도움이 된다는 것으로 갑오징어뼈는 보음(補陰)효과가 있다는 것을 명시한 것이다.

<동의보감>에는 ‘부인이 하혈을 조금씩 하는 것이나 혈붕(血崩)을 치료하고 충심통(蟲心痛)을 멎게 한다’고 했다. 이 내용은 갑오징어뼈에 지혈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혈붕은 갑자기 자궁에서 피가 쏟아지는 자궁출혈을 말한다. 민간에서도 출혈부위에 갑오징어뼈 가루를 뿌려서 지혈시키기도 했다.

또 충심통은 명치에서부터 치받아 오르는 심장부위의 통증을 의미하는데 아마도 소화성궤양이나 식도염에 의한 명치나 가슴의 통증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갑오징어뼈는 위장질환에도 다용했다.

갑오징어뼈 안쪽 부분만을 곱게 가루내어 패모가루와 함께 처방된 오패산(烏貝散)이라는 유명한 처방이 있는데 예로부터 소화성궤양에 의한 속쓰림 등에 특효로 사용됐다. 해표초는 위산을 중화시키는 효능이 있어서 위산과다증, 역류성식도염에도 효과가 좋다. 오패산 자체는 궤양부위를 빨리 아물게 하고 출혈을 막아주는 효과도 있다.

갑오징어뼈는 민간에서 사람의 상처뿐 아니라 동물의 피부질환에 외용제로도 활용했다. <자산어보>에는 ‘해표초는 곧잘 상처를 아물게 하면서 새살을 만들어 내는 데 효과가 있다. 뼈는 또한 말이나 당나귀 등의 등창을 고치는 데도 효과가 있다’고 했다.

갑오징어뼈는 <식료본초>에선 ‘구워서 가루낸 후 복용하라’고 했고 <동의보감>에는 ‘물에 2시간 동안 삶아서 누렇게 된 다음에 껍질을 버리고 보드랍게 가루내어 햇볕에 말려 쓴다’고 했다. 한마디로 갑오징어뼈는 굽거나 삶아서 가루내면 된다.

이제부터라도 갑오징어뼈는 버리지 말자. 잘 말려 뒀다 후라이팬에 약간 노랗게 구운 후에 안쪽의 하얀 부분만을 잘게 부순다. 막자사발에 넣어서 갈거나 지퍼백에 넣어 부셔도 좋다. 분필처럼 잘 부서진다. 만일 소화성 궤양이나 역류성식도염으로 속이 쓰리거나 가슴이 답답하다면 1회에 갑오징어뼈 가루 4g 정도를 물과 함께 섭취하면 탁월한 효과가 있을 것이다.

요즘 마트에서는 갑오징어를 대부분 손질한 상태로 판매하는 것 같다. 아마 요리하는 주부들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런데 뼈가 들어 있는 갑오징어를 구했다면 손질하는 번거로움은 있어도 그 보상으로 좋은 제산제를 얻은 셈이다. 속쓰림엔 겔○○? 아니다. 속쓰림엔 해표초! 갑오징어뼈는 훌륭한 위궤양 치료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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