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식품수명 늘지만 안전성엔 물음표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식품수명 늘지만 안전성엔 물음표
  • 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1.07.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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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부터 시행…우유는 2031년까지 유예
버려지는 식품 줄겠지만 소비자혼란 불가피
제도 시작 전 충분한 교육·홍보 선행돼야
소비기한표시제가 2023년 1월 1일부터 본격 시행되는 것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소비자의 혼란과 안전사고에 따른 피해를 막으려면 제도 시행 전 충분한 교육과 홍보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소비기한표시제가 2023년 1월 1일부터 본격 시행되는 것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소비자의 혼란과 안전사고에 따른 피해를 막으려면 제도 시행 전 충분한 교육과 홍보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유통기한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표시하는 내용의 식품표시광고법 개정안이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 2023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제도의 근본취지는 유통기한 경과로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를 줄이자는 것. 소비자가 유통기한을 식품폐기시점으로 오인해 애꿎게 버려지는 음식물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1985년 도입 이후 무려 30여년간 유지된 유통기한이 갑자기 사라지면 소비자 혼란이 매우 클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소비기한 적용 시 식품수명↑

사실 소비기한표시제는 단시간에 추진된 제도는 아니다. 2013년 소비기한 도입효과가 연구(보건산업진흥원 연구결과 소비기한 도입 시 소비자 3000억원, 기업체 176억원 식품폐기비용 절감)되기 시작했으며 2018년부터 소비자단체, 학계, 산업계 등에서 토론회와 세미나를 꾸준히 개최했다. 이를 통해 식약처는 ▲식품폐기물 감소 ▲소비자 혼란방지 ▲국제추세에 걸맞은 식품표시제 도입 등을 근거로 소비기한표시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단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이 표시되면 식품수명은 늘어난다. 유통기한은 식품의 유통·판매허용기간, 소비기한은 소비자가 식품을 먹어도 안전한 기한을 의미한다. 이는 과학적 실험(관능검사, 미생물검사 등)을 통해 정해지는데 유통기한은 품질변화시점을 기준으로 60~70% 정도, 소비기한은 80~90% 정도 앞선 기간으로 설정된다.

즉 소비기한이 유통기한보다 훨씬 길어진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 식품미생물팀 연구결과 ▲우유(냉장 0~10도)는 유통기한이 10일에 불과하지만 소비기한은 50일 ▲식빵(냉장 0~10도)은 20일까지 늘어났으며 그때까지는 안전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식약처는 지난해 열린 제2회 식의약 안전열린포럼에서 소비기한표시제 도입방침을 밝혔다. 당시 식약처 식품표시광고정책TF 최종동 과장은 “유통기한 도입 당시에는 식품제조·포장기술과 유통시스템이 미약해 과학적 허용치보다 훨씬 짧게 유통기한을 설정했지만 지금은 유통환경이 개선됐다”며 “날짜표시를 판매자중심에서 소비자중심으로 개선, 명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소비자의 식품선택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소비기한표시제가 세계적 추세라는 점도 제도도입에 한몫했다. 현재 EU(유럽연합), 미국, 중국, 일본, 호주 등이 채택하고 있으며 CODEX(국제식품규격위원회)에서도 유통기한을 식품폐기시점으로 오인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 2018년부터 유통기한을 아예 삭제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분석결과 유통기한에 따른 식품폐기손실비용이 산업체 5900억원, 가정(소비자) 9500억원으로 한 해 평균 1조5400억원에 달했다.  

■가이드라인 마련, 교육·홍보 선행돼야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보면 소비기한표시제는 분명 성급하게 추진된 제도는 아니다. 일단 소비자도 제도취지에 공감을 표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최근 소비자 69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소비기한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8.7%가 ‘소비기한이 유통기한보다 식품섭취가능기한을 명확하게 알려줘 편리하다’고 생각했으며 ‘소비기한 도입을 통해 음식물쓰레기도 줄일 수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소비자인식이 단시간에 바뀌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녹색소비자연대 은지현 상임위원은 “소비자들이 고정관념을 버리고 소비기한을 안전지표로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게 하려면 식약처가 식품별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마련해 제도시행 전 충분히 교육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식품보관기간 확대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식품수명이 늘어나도 보관온도와 장소를 지키지 않으면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 다행히 우유는 2031년까지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지만 상하기 쉬운 냉장식품은 따로 분류해 유통기한·소비기한 병행표시, 별도주의사항 추가 등 세부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식품위생법률연구소 김태민 소장(식품안전정책위원회 전문위원)은 “가정 내 보관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안전사고 발생 시 소비자에게 책임이 전가될 우려도 크다”며 “식품안전은 환경보다 국민건강을 우선해야 하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 및 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단 식약처는 최대한 소비자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소비기한표시제를 시행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제도에는 환경단체, 식품업체 간 이해관계 등 다양한 문제가 얽혀 있어 소비자가 배제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소비기한은 소비자가 안전한 식품섭취를 위해 꼭 알아야 할 정보다. 소비기한표시제 도입이 결정된 이상 이제부터 소비자안전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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