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肝)보는 의사 한광협의 청진기] 의사로서 바라본 솔로몬의 지혜
[간(肝)보는 의사 한광협의 청진기] 의사로서 바라본 솔로몬의 지혜
  • 한광협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ㅣ정리·한정선 기자 (fk0824@k-health.com)
  • 승인 2021.08.12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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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협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
한광협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태평성대를 이끌었던 지혜로운 왕이다. 특히 한 아기를 두고 다툰 두 엄마에 대해 모성애를 바탕으로 친엄마를 가려낸 명쾌한 판결은 성경에 그의 지혜로움을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로 기록돼 있다.   

요즘은 유전자검사를 하면 쉽게 판별할 수 있지만 당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의 친엄마를 밝혀내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솔로몬의 재판’이 지금까지 회자되는 것은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실에 입각한 공정한 판결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법원에 세워져 있는 눈 가리고 검과 저울을 들고 있는 여신의 상은 ‘정의의 여신’상이다. 검은 사법의 권위를, 천칭은 법의 공정함을, 눈가리개는 법 앞에서 선입견이 없음을 상징하고 있다. 제한된 증거를 갖고 현명한 판단을 하는 것은 지혜로운 법관이라도 어렵다. 더욱이 증거가 믿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도 판단해야 한다. 잘못된 판결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경우가 뉴스로 전해지는 이유는 잘못된 증거를 기초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중요한 순간에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고 싶어한다. 의사들도 진료현장에서 지혜로운 판단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필자도 솔로몬처럼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던 환자가 있었다. 산부인과에서 산전 진찰을 받던 초산의 산모가 암 수치가 높게 나와 의뢰됐다. 초음파검사상 간에 큰 혹이 있어 간암이 의심됐다.

출산까지 치료를 미루면 간암이 진행돼 산모의 건강을 책임지기 어렵고 태아를 희생하고 당장 수술한다고 해도 산모의 건강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산모와 태아 중 택일을 해야 했다. 산부인과 및 외과 의료진과 논의 후 산모의 건강이 우선돼야 한다고 판단, 배우자와 양가 부모에게 임신을 중단하고 수술해야 하는 상황을 설명했다.

다행히 모두 의료진의 판단에 동의해 수술로 간암을 성공적으로 제거했다. 이후 재발 없이 경과 관찰 후 애기를 갖게 돼 지금은 한 가정의 아내와 엄마로 잘 지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솔로몬은 지혜로운 판결만 소개돼 늘 명쾌하고 지혜롭게 결단을 했을 것 같지만 성경에 나이 들어 실정을 한 기록을 보면 사람은 항상 지혜로울 수는 없다. 과거의 의사들은 문진(問診; 환자의 증상, 병력 등을 물어보아서 병을 진단하는 방식)과 진찰(청진 포함)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진단했지만 지금은 의과학의 발전으로 진료를 위한 많은 검사(영상촬영, 혈액 및 체액 검사 등) 결과를 바탕으로 판단한다. 마치 범죄과학수사관(CSI)이나 범죄심리분석수사관(프로파일러)의 도움으로 범인을 찾는 것과 같다.

과거에 비해 많아진 검사방법은 병을 진단하는 데 도움을 줘 오진을 줄일 수 있게 됐다. 또 의학의 발전으로 과거에 몰랐던 많은 새로운 병을 알게 되고 병의 분류와 이에 따른 처치도 점차 세분화돼 진단기준도 높아졌다.

하지만 검사방법이 많아진 만큼 검사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하는 지혜가 더욱 요구되는 때다. 한때 왓슨이라는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장치가 의사를 대신해 지혜로운 판단을 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정작 의료현장에선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인공지능과 로봇이 의사를 대신해 오진을 줄이고 지혜로운 판단을 해줄 것으로 기대가 크지만 아직 인간을 보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정도다.

‘지식은 밖에서 들어오나 지혜는 안에서 나온다’고 했다. 지혜로운 판단을 하려면 의학적 지식만 많아선 안 된다.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주어진 의학정보를 바탕으로 관련 전문가들과 소통하면서 진료현장에서 쌓여진 경험이 축적돼야 비로소 지혜로운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서울대 공대 교수들이 쓴 ‘축적의 시간’에서 축적된 경험은 실패를 용인하는 분위기와 시스템이 있어야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실패를 두려워해 도전하지 않는 것이 더 나쁘다고 강조했다. 최근 의료현장에선 의료사고에 따른 법적 조치 법안이 추진 중에 있고 의료사고로 법정구속을 당한 의료인도 보도되고 있다. 처벌로 나쁜 의사를 줄이려는 것이 좋은 의사가 되려는 용기와 열정을 막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깨달음이 깨달음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살면서 계속해서 그 깨달음을 기억하고 되돌아보고 실천해야 한다’라고 했다. 필자 역시 ‘만일 그때 그 산모가 수술을 받다가 잘못됐으면 나는 그 이후에도 용기를 갖고 지혜로운 권면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지금도 후학들에게 적극적으로 수술을 권하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모성애를 시험하고자 아기를 칼로 자르라는 ‘솔로몬의 재판’도 요즘 같으면 지혜로운 판결이 아니라 잔혹하고 비인간적 재판으로 회자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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