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肝) 보는 의사 한광협의 청진기] 똑똑한 바이러스와의 전쟁 속 우리가 해야 할 일
[간(肝) 보는 의사 한광협의 청진기] 똑똑한 바이러스와의 전쟁 속 우리가 해야 할 일
  • 한광협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ㅣ정리·한정선 기자 (fk0824@k-health.com)
  • 승인 2021.08.26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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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협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
한광협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

백신 개발로 예방접종이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면서 코로나문제가 해결되는 듯싶더니 전파력이 강한 델타형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과 함께 확진자가 전 세계적으로 증가일로다. 이에 변이형 바이러스에 대한 관심과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 바이러스 변이형은 전염력이 높고 예방접종을 받아도 예방효과가 감소한다. 접종률을 높여 집단면역을 얻어도 코로나 감염위험에서 완전하게 벗어나기 어렵다는 우려가 큰 이유다. 이미 코로나는 몇 차례 변이형이 출현했던 터라 현재 맹위를 떨치고 있는 델타형 이후에도 또 다른 변이형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좋은 예감은 틀리는 경우가 많은데 나쁜 예감은 왜 이리도 잘 적중할까. 수십억년의 지구 역사에 비하면 생명체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짧지만 여러 생명체는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진화를 거듭해왔다.

그런데 미물인 바이러스는 독자적으로 살아갈 수 없어 숙주에 침입해 살아남는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바로 변신과 은폐기술이다. 바이러스는 숙주에 기생해 증식과정을 거쳐 번식하는 최소형의 생명체로 숙주의 면역반응을 회피하는 변이형을 만들어 변신해 생존하려는 본능을 갖고 있다.

이 침입자는 자신의 개체를 반복적으로 복제하며 증식과정 중 숙주의 면역을 회피하는 변이형을 만든다. 바이러스 관점에서 보면 진화다. 에볼라 바이러스처럼 숙주에 치명적이면 전파되기 전 숙주가 사망해 확산이 어렵다.

하지만 똑똑한 바이러스일수록 감염된 숙주를 통해 다른 숙주에게 전파될 때까지 숙주를 살려두며 더 똑똑한 놈은 감염된 사람이 무증상으로 전파하게 만든다. 앞으로 감염돼도 한동안 무증상으로 돌아다녀 기존의 방역체계를 무력화하는 또 다른 코로나 바이러스 변이형이 나올지도 모른다.

은폐기술이 뛰어난 바이러스는 간염을 일으키는 B형간염바이러스다. 이 바이러스는 감염된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전파되는 수직감염을 통해 지금까지 인류와 함께 생존하며 진화해 왔다. 놀라운 사실은 수직감염을 통해 신생아나 유아기에 감염되면 면역체계가 성숙되지 않아 면역반응이 없는 상태로 만성으로 숙주의 간에 기생하며 산다는 것이다.

B형간염바이러스는 면역기능이 성숙돼도 은폐기술을 발휘해 수십년간 함께 살면서 전파를 하고 수직감염을 통해 다음 세대로 숙주를 갈아타면서 생존해왔다. 현재도 약 3억명의 B형간염환자가 있고 매해 약 150만명의 신규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만성B형간염은 간경변이나 간암 등으로 악화돼 매해 80만명이 이들 질환으로 사망하고 있다.

다행히 B형간염바이러스는 50년 전에 처음 정체가 밝혀져 오래전에 예방백신이 개발됐다. 더불어 WHO 지원하에 수직감염 예방을 위한 국가적 백신접종사업을 1990년대부터 시작한 덕분에 소아에서는 감염자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후 효과적인 항바이러스 치료제의 개발로 성인에서도 병의 진행을 막을 수 있게 됐다.

이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그나마 백신과 치료제를 갖춘 인간의 승리가 예견되나 변신과 은폐기술로 무장된 바이러스의 반격도 무시할 수 없다. 이미 변신술을 발휘해 몇몇 항바이러스제에 대한 내성을 획득해 무력화시킨 바 있고 기존의 예방백신을 피하는 신형을 제작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주인공은 강력한 조직이나 파워는 없으나 ‘비겁해도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는 철학으로 끝까지 살아남는다. ‘강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놈이 강자’라고 하였다.

코로나는 점점 더 똑똑해지는 것 같다. 코로나가 쉽게 잡힐 것 같지 않고 종식돼도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침입자’와의 전쟁이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도 사스, 신종인플루엔자, 메르스 등 각종 감염병을 겪으며 보이지 않는 침입자와의 싸움에 맷집을 키워왔기 때문에 코로나 유행에 대한 대처를 비교적 잘한 것이다. 

여기에는 시민들의 경각심과 협조가 절대적이었고 QR코드 등 IT기술도 기여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가 함께 대처하면서 그때그때마다 대처방안이 마련되고 있다. 백신 개발에 이어 치료제도 곧 개발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침입자들의 세계’의 저자 신의철 면역학 교수는 “바이러스 시대의 한복판에서 우리의 삶이 서로 연결되어 있듯이 당신의 건강이 곧 나의 건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를 지켜 너를 구하는 일, 내가 당신의 백신이 되어주는 일 그것이 면역의 의미이다.”고 하였다.

자국민만을 위해 백신을 독점하는 일부 선진국의 정책은 백신 부족국가를 통해 바이러스가 더 똑똑해져서 찾아오게 하는 어리석은 정책이다. 면역력에 대한 지나친 기대나 미확인 정보로 예방접종 거부나 방역지침을 무시하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이웃까지 침입자를 초대하는 행위다.

우리는 모두 연결돼 나만이 살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백신이 부족한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로 버텨온 방역정책이 한계점에 와 있는 이 시점에 함께 똑똑한 침입자를 이겨내려면 더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또 서로 비난하기에 앞서 방역의 사각지대나 코로나로 더욱 어려워진 소외된 이웃을 생각하며 함께 이겨내야 한다.

다행히 백신 부족이 조만간 해결될 전망이다. 혼자 가면 빨리 가도 함께 가면 더 멀리 간다는 말이 있다. 전 세계인 모두 면역을 획득해 더 멀리 해외로도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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