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무기력해졌을까…“이 답 찾았다면 이미 문제의 반은 해결한 것”
왜 무기력해졌을까…“이 답 찾았다면 이미 문제의 반은 해결한 것”
  • 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1.08.30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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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창수 고대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교수(고대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 신간 ‘무기력이 무기력해지도록’ 출간 
· 무기력의 다양한 원인부터 해결방법까지 총망라
· “국민 모두 쉽게 좌절하거나 지치지 않았으면” 

한창수 교수는 “무기력해졌다고 쉽게 좌절하거나 주변 상황을 탓하지 말고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무기력해진 원인을 먼저 찾아볼 것”을 당부했다.
무기력해졌다고 쉽게 좌절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볼 것을 당부한 한창수 교수. 이렇게 하면 내가 무기력해진 원인이 무엇인지 보인다고 했다. 그 다음은 원인에 맞는 해결방법을 하나씩 실천하는 것이다.   

“무기력은 누구나 겪을 수 있지만 무기력해진 이유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단순히 ‘쉬세요’가 아니라 당신은 ‘이렇게 쉬어야 합니다’라고 구체적인 해법을 알려줘야 하는 이유죠. 한 번 전략을 잘 짜놓으면 무기력의 늪에 쉽게 빠지지도 않거니와 설령 빠져도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모두가 지쳐 있는 이 시기, 더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 또 한 번 펜을 들었습니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중과 활발하게 소통해온 한창수 고대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교수가 이번에는 무기력을 주제로 책을 출간했다. 책 제목은 ‘무기력이 무기력해지도록’. 그야말로 무기력을 제대로 무기력하게 만드는 방법이 원인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근래 무기력이 밥 먹듯 찾아왔던 터라 책을 완독한 후 한창수 교수를 만났다. 

- 무기력을 주제로 삼아 책을 출간한 계기는. 

안 그래도 코로나 이전부터 유난히 기운 없고 지친다면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많았다. 코로나 이후엔 부쩍 많아져 안 되겠다 싶었다. 각종 논문을 찾아가면서 이러한 환자들의 공통점을 진지하게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들은 우울증이라는 병에 걸린 게 아니라 저마다의 이유로 무기력해진 상태임을 알게 됐다. 무기력은 일종의 증상으로 원인을 한 가지로 단정할 수 없다. 당연히 원인에 따른 해결방법도 다르며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이를 널리 알려 많은 사람이 무기력에 쉽게 굴복하지 않게 하고 싶었다. 

- 무기력해지면 자책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책을 보니 꼭 자기 탓만은 아닌 것 같다. 

맞다. 단순히 내가 게으르고 나태해져서 무기력해지는 것은 아니다. 무기력의 원인은 ▲신체 ▲정신 ▲감정 등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 대부분의 직장인은 신체적인 원인에 의한 무기력이 많지 않나. 

직장인들이 흔히 겪는 ‘번아웃’이 바로 신체적 원인에 의한 무기력에 해당한다. 몸이 계속 늘어지고 의욕이 샘솟지 않는데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면 현재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건강검진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내 몸이 걱정될 때 그것을 걱정으로만 남겨두면 자칫 큰 병을 놓쳐 더 나쁜 상황을 부를 수 있다. 

쉼이 필요하다고 진단받았다면 일단 하루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정해야 한다. 회사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업무 재분배와 인력 충원을 논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 쉴 때는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정반대의 방법으로 쉬어야 한다. 즉 온종일 전자기기 앞에서 일하는데 쉴 때마저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앞에 있는다면 도로 내 몸을 혹사시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가볍게 걷거나 등산을 하는 등 최대한 전자기기 앞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쉬어야 한다. 

- ‘난 원래 게을러’라면서 무기력을 인정하는 동료들도 많이 봤다. 

이러한 사람들은 정신적인 원인에 의해 무기력에 빠진 경우다. 게으른 기질은 타고날 수도 있지만 사회 속에서 다양한 사람과 부대끼고 보면 그 기질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또 적당히 일하고 나서 피우는 게으름은 다음 해야 할 일을 위한 배터리 충전 같은 역할을 한다. 만일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자꾸 무기력해진다면 일을 쪼개 중간 목표를 설정해보자. 처음부터 목표를 크게 잡고 달려가다 보면 당연히 지치기 마련이다. 작은 성공부터 차례차례 경험하다 보면 의욕이 샘솟아 하기 싫은 일도 금세 다시 시작하고 싶어질 것이다.   

또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나는 지금 이런 상황에 놓여 있으니 당연히 쉬어도 돼. 힘든 게 당연해’라면서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이다. 무기력함에 대한 일종의 자기 핑계다. 우리 사회는 자신을 낮추는 게 미덕처럼 여겨지지만 소위 말하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자기연민에 의해 무기력에 빠진 사람들은 자존감을 높여 본인 자신을 칭찬하고 지지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 기자는 아무래도 감정적문제에 의한 무기력인 것 같다. 

감정적문제에 의해 무기력에 빠진 사람들은 공감피로, 즉 다른 사람의 힘듦에 공감해주다 자기 자신이 지치는 경우가 많다. 인간관계에서 공감은 꼭 필요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지치고 힘들게 해선 안 된다.

공감피로에 의해 무기력해지지 않으려면 상대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또 상대방의 힘든 감정을 내 일상에까지 끌고 들어와선 안 된다. 즉 상대방과 함께 있는 상황에선 도움을 주되 나만의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는 오롯이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쉴 때도 상대방의 힘든 부분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집중해 내 기분을 전환시켜야 한다. 만일 이렇게 했는데도 상대방에게 뭘 못 해주고 있다고 죄책감이 들면 전문가에게 진지하게 상담받아볼 것을 권한다. 

- 무기력해지면 우울증인가 겁도 난다. 우울증과 무기력을 쉽게 구분해볼 수 있는 방법은 없나. 

앞서도 말했듯이 우울증은 병이고 무기력은 증상, 즉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울증의 증상 중 하나가 무기력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그렇다고 덜컥 우울증이라고 결론 내리지 말고 일단 현재 우울증 측정도구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환자우울설문을 해보자. 총점이 5점을 넘으면 우울증을 의심하고 10점이 넘으면 꼭 병원을 방문해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  

- 활기차게 사는 어르신도 많지만 사실 나이 들면 무기력에 빠지기 쉽다. 노년기에 찾아온 무기력은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어르신들에겐 마음보다도 몸부터 먼저 관리하라고 강조한다. 나이 들면 식사도, 몸을 움직이는 것도 귀찮아진다. 이런 상태에선 절대 무기력을 극복할 수 없다. 많은 양은 아니더라도 영양가 있는 음식으로 세 끼 규칙적으로 먹고 걷기 운동이라도 꾸준히 해주는 것이 좋다. 야외활동이 조심스럽다면 TV에 나오는 쉬운 스트레칭 동작이라도 천천히 따라해보자. 

또래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기회를 일부러 많이 만드는 것이 좋다. 코로나 상황이 조금 나아지면 노인정에도 나가고 복지관 프로그램에도 적극 참여했으면 좋겠다. 동창회도 웬만하면 거절하지 말고 참석할 것을 권장한다.  

- 무기력의 원인은 제각각이어도 환자들에게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건 있을 것 같다.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몫은 70%, 나머지 30%는 환자 몫이라는 점이다. 무기력의 원인을 찾고 그에 맞는 솔루션을 안내하고 나면 이를 실천하는 건 환자 본인이다. 어느 정도 급한 불을 끄고 나면 의료진은 한 발짝 떨어져 환자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 봐주고 끝까지 힘을 낼 수 있도록 독려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 기자는 최근 공감피로 솔루션을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또 죄책감이 고개를 들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이것 때문에 또 힘들어한다. 이때는 명상, 즉 한 걸음 뒤에서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라고 조언한다. 이때 중요한 건 자신의 감정과 행동에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 상황에서는 그럴 수 있지’라고 가볍게 넘기는 연습을 해야 한다. 계속 마음에 걸린다면 ‘다음엔 이렇게 행동하면 되지’라고 또 가볍게 생각하면 된다. 그때의 감정과 행동을 후회하면서 애써 자기 마음을 무겁게 만들 필요는 없다.     

- 이 책이 대중,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끼쳤으면 하는지. 

무기력으론 절대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누구나 무기력을 느낄 수 있으니 자책하거나 주변 상황을 탓하지 말고 일단 자신이 무기력해진 원인을 찾아보자. 막막하다면 책 속에 실은 사례들과 자신의 상황을 하나씩 비교해보는 것도 좋다. 원인을 찾았다면 이미 무기력의 반쯤은 해결한 것이다. 이제 원인에 맞는 솔루션들을 하나씩 실천해보면 된다.   

또 최소한 이 책을 읽고 난 뒤엔 ‘삶의 의미가 없다’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일이 의미를 찾으려고 하면 오히려 더 피곤하고 무기력해진다. 자신의 루틴을 유지하면서 그날 주어진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면 된다.  

모두가 힘든 시기지만 이럴 때일수록 쉽게 쓰러지지 않아야 한다. 더욱이 무기력은 우리 힘으로 충분히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다. 이미 무기력이 무기력해지도록 힘쓰기 시작한 분들에겐 무한한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 한창수 교수는? 

한창수 고대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교수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나 건강한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20여년간 마음과 정신의 문제를 치열하게 연구하고 환자들을 치료해왔다. 국제 영문 저널에 260편 이상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으며 2018년에는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을 역임하는 등 대외활동에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진료실을 넘어 책으로도 대중과 소통해온 그는 오랫동안 무기력의 다양한 원인과 양상을 연구하며 그 해법을 찾는 데 골몰, 마침내 올해 8월 저서 ‘무기력이 무기력해지도록’을 출간했다. 지난해에는 트라우마 이후의 정신적 성장을 일컫는 ‘외상 후 성장’에 관한 심리서 ‘무조건 당신 편’을 출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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