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식의보감] 약이 되는 과일 무화과(無花果)…지금이 딱 좋아!
[한동하의 식의보감] 약이 되는 과일 무화과(無花果)…지금이 딱 좋아!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1.09.13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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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요즘 필자의 식탁에는 무화과가 자주 올라온다. 아내가 최근 시장에서 무화과를 사오기 시작하더니 떨어지기 무섭게 채워 놓는다. 덕분에 필자도 하루에도 몇 번씩 무화과로 입안에 향기로운 호사를 누린다.

무화과처럼 역사적으로 오래된 과실도 없을 것이다. 무화과나무의 인류 재배역사도 기원전 3000년 전 이집트 수메르 왕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경>에서 아담과 이브가 산악과를 따 먹고서 창피함을 알게 되면서 자신들의 알몸을 가린 식물도 바로 무화과잎이었다.

무화과는 뽕나무과에 속하는데 서남아시아가 원산지로 당나라 때 중국으로 유입됐으나 우리나라에는 언제 들어왔는지 알 수 없다. 인터넷에는 고려말 이색의 시문집인 <목은집>에 무화과가 처음 기록됐다고 나오지만 이 내용은 대표적인 레퍼런스 오류에 속한다.

<목은집>에 나오는 ‘무화(無花)’라는 단어와 함께 관련된 내용은 우리가 과일로 먹는 무화과가 아니라 우담바라라고 하는 보리수나무의 열매를 지칭한 것이다. 보리수 열매도 무화과와 마찬가지로 꽃이 숨어 있어서 말 그대로 꽃이 없는 과일인 무화과라고 기록된 것들이 많다.

무화과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그리 흔한 과일이 아니었다. 조선 중기의 <동의보감>에는 무화과가 탕액편에 기록돼 있지만 치질에 사용한다는 내용 이외에는 처방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실용 한의서인 <방약합편>에도 무화과는 없다. 너무 귀해서 궁에서만 섭취한 것은 아닐까 했는데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도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여러 가지 문헌을 살펴보니 조선 후기 서편을 엮은 <이참봉집>에는 저자인 이광려가 중국에 사신으로 가는 이에게 무화과 나무를 구해줄 것을 부탁하고 이후 감사를 전하는 시가 나온다. 또 당시 조선의 사신들이 주로 관심을 보인 것은 바로 땅콩과 무화과였는데 실물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둘을 반대로 기록한 경우도 있었다. 이런 기록을 보면 당시 무화과는 무척 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본격적으로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 이후에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심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를 보면 당시에도 제주나 남부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제외하곤 그렇게 흔하게 접하는 나무나 과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무화과(無花果)는 이름처럼 꽃이 없는 것이 아니라 꽃받기가 빠르게 자라면서 꽃술을 감싸고 있는 것이다. 무화과의 껍질은 꽃받기 부분이고 안쪽은 꽃술이다. 따라서 무화과는 씨방에서 유래한 열매가 아니기 때문에 헛열매라고 한다. 꽃이 숨어 있다고 해서 은화과(隱花果)라는 이름도 있고 하늘의 신선이 먹는 과일이라고 해서 천선과(天仙果), 장생과(長生果)라는 이름도 있다.

이시진은 <본초강목>에 무과화를 먹는 방법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무화과는 꽃이 없으면서 가지 사이에서 열매가 나온다. 그 모양은 목만두(木鏝頭)와 같은데 안은 약간 비어 있으면서 부드럽다. 채취해서 소금물에 적신 후에 눌러서 편평하게 만든 다음 햇볕에 말려서 과자로 먹는다’라고 했다. 생으로도 먹지만 말려서도 먹는다는 것이다.

무화과의 맛은 은은하게 달면서 향긋하다. 빈속에 씹어 먹으면 입안이 화사하면서 마치 적은 양의 박하잎을 함께 씹는 것 같다. 문헌에는 이 맛은 시(柹)와 같다고 했는데 바로 감이다. 하지만 아직 무화과를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감 정도로 감히 무화과의 맛을 떠올리긴 어려울 것이다.

무화과는 건강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효능을 지닌 과일이다. 생으로 먹어도 좋고 잼이나 정과, 차 등으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무화과는 맛도 좋지만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먼저 무화과는 위장약이다. 무화과는 단백질 분해효소인 피신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서 육식 후에 후식으로 섭취하면 좋다.식이섬유도 풍부해서 변비에도 좋다. 무엇보다도 속을 편하게 하고 설사를 멎게 하는 것은 무화과의 가장 중요한 효과다.

<본초강목>에는 ‘무화과는 맛이 달고 기운은 평이하면서 독은 없다. 위장의 기운을 열고 설사를 멎게 한다’고 했다. 위장의 기운을 연다[개위(開胃)]는 것은 위장운동이 잘 되지 않으면서 답답하고 체한 느낌이 있을 때 무화과를 먹으면 위장운동을 촉진시키고 체기를 없앤다는 의미다.

무화과는 소염진통제다. <본초강목>에는 무화과가 치질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 나온다. ‘다섯 가지 치질의 종류와 인후통을 치료한다’고 했다. 무화과 잎이 특히 치질에 효과적인데 ’다섯 가지 종류의 치질에 의해 붓고 아픈 통증에는 무화과 잎을 끓여서 자주 훈증하면서 씻어주면 효과를 본다’고 했다. 이 내용은 <동의보감>에도 동일하게 언급된다.

흥미롭게도 <성경>에도 무화과를 종기 치료제로 사용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사야 38장’을 보면 유다 왕 히즈키야가 몹시 앓아서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는데 예언자 이사야는 사람들에게 “무화과로 고약을 만들어 종기에 붙여드리시오, 그러면 임금께서 사실 것이오”라고 말한 구절이 있다.

치질, 인후통, 종기는 병명과 장소는 다르지만 모두 화농성 염증성질환에 속한다. 피부나 점막의 경우 모두 해당될 수 있다. 따라서 밖으로 보이는 피부 염증은 무화과 열매나 잎을 짓찧어 습포하거나 다려서 씻어줘도 좋고 몸 안에 있는 인후부, 식도, 위장관 점막의 염증은 섭취함으로써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다.

무화과는 피로해소 효과도 있다. 무화과의 주요성분으로는 포도당과 과당을 포함하는 당분이 약 20% 정도 포함돼 있고 사과산과 구연산과 같은 유기산도 풍부하다. 따라서 피곤할 때 무화과 한두 개만 섭취해도 바로 기운이 난다. 당분과 유기산이 빠르게 흡수되면서 피로가 풀리는 것이다. 따라서 무화과를 밀과(蜜果)라고도 한다.

무화과는 폐기관지에도 좋다. 평소에 목을 많이 사용해 쉽게 잠기고 쉰 목소리가 난다면 무화과를 즐겨 볼 만하다. 또 폐기관지가 건조하면서 나는 마른기침에도 좋다. 더불어 구강건조에도 좋은데 무화과를 먹고 나면 입안에 침이 고이면서 입마름도 바로 해결된다.

최근 무화과는 생으로도 구할 수 있다. 마침 무화과가 제철이니 신선한 맛을 오롯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아쉽지만 무화과는 통조림, 잼, 정과, 말린 무화과로도 즐길 수 있다. 술로 담가 마셔도 좋고 말린 무화과를 끓여서 차로 마셔도 좋다.

무화과는 과거 지중해 지역에서는 무척 풍부했고 널리 식용돼서 ‘가난한 자의 음식(the poor man’s food)’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아마도 당시 일반 서민들에게는 위장병이나 염증성질환이 별로 없었을 것 같다. 무화과는 이제 ‘현대인의 약식’이라고 불려도 좋겠다. 무화과는 일부러라도 챙겨 먹어야 할 약과(藥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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