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식의보감] ‘무’를 감히 무시한다고? 예나 지금이나 귀한 채소!
[한동하의 식의보감] ‘무’를 감히 무시한다고? 예나 지금이나 귀한 채소!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1.09.2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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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무는 흔히 먹는 뿌리채소 중 하나다. 하지만 너무 흔해서 그냥 요리에 사용되는 채소로만 알고 있다면 무가 무척 서운해할 것이다. 무는 요리 외에도 건강에 대한 활용도가 아주 많은 채소다.

‘무’는 한글 이름이다. 과거에는 ‘무우’라고 했다. 조선 중기에 저술된 동의보감에도 한글표기로 무우로 돼 있다. 내용을 보면 무청(蕪菁)은 쉰무우, 내복(萊菔)은 댄무우라고 했다. 무청은 순무를 말하고 내복은 요즘의 흔한 무를 의미한다.

무청(蕪菁)의 ‘무(蕪)’ 자나 ‘청(菁)’ 자는 그 자체로 순무를 의미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보통 무의 줄기와 잎을 말린 것만을 무청이라고 부르거나 혹은 무청시래기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정확하게 구분한다면 무청의 줄기나 잎을 말린 것은 순무시래기, 일반 무는 무시래기로 불러야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무라는 한글 이름은 무(蕪)라는 한자어와 관련성이 높아 보인다. 일반 무는 내복(萊菔)이란 이름 외에도 나복(萊菔), 노복(蘆蔔) 등 다른 이름도 있다. 보통 무김치를 나박김치라고 하는 것을 보면 무라는 한글이름도 무(蕪)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반 무는 순무의 효능을 모두 포괄한다. <본초강목>에도 ‘내복(萊菔)의 공은 무청(蕪菁)과 같으나 힘이 강한 것은 그 이상이다‘라고 했다. 따라서 자세한 효능은 일반 무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무는 <본초강목>에 ‘맛이 맵고 달고 기운은 냉하거나 평하다’고 했다. <동의보감>에는 무가 ‘기운이 따뜻하다(혹 냉하다 혹 평하다)’고 했다. 하지만 (생)무는 기운이 서늘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반면 익힐 경우 매운맛은 줄어들면서 단맛은 늘어나고 기운은 따뜻해진다.

무는 기운을 아래로 내려주는 하기(下氣) 작용이 강하다. 그런데 이 효과를 내려면 익혀서 먹어야 한다. 만일 생무를 먹는다면 기운이 위로 오른다. 아마도 생무의 매운맛이 기운을 위로 올리는 작용을 하지만 익히면 매운맛이 사라져 하기 작용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는 갈증 제거효능도 있는데 이때도 생식해야 한다.

하기(下氣) 작용과 함께 소식(消食) 작용도 무의 대표적인 효능이다. 소식 작용은 한마디로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효능이다. 따라서 무를 섭취하면 속이 편안해지고 오장의 악기를 이겨내고 위장관에 쌓인 음식물을 내려준다.

무는 밀가루 독을 억제한다. 과거 인도의 한 승려가 중국 사람이 밀로 만든 면을 먹는 것을 보고 “이렇게 열한 음식을 어떻게 먹는 것일까?‘ 하면서 놀랐으나 반찬 중에 무가 있는 것을 보고는 ”과연 이것이라면 그 성을 없앴을 수 있겠다’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 이후로 밀가루를 먹을 때는 항상 무를 먹게 됐다는 전언이다. 

이것은 단지 무의 냉성이 밀가루의 열성을 억누른 측면 외에도 밀(밀가루)이나 쌀(밥, 떡 등) 등에 풍부한 탄수화물을 무에 풍부한 아밀라아제 효소가 잘 소화시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참고로 아밀라아제는 열에 약해서 익혀 먹으면 탄수화물을 소화시키는 효능이 약해진다. 따라서 이때도 역시 생무로 섭취해야 한다.

무는 쉽게 먹을 수 있는 채소 중 하나지만 다방면으로 건강에 도움이 된다. 상황에 맞게 먹는 방법까지 잘 알아두면 무의 효능을 오롯이 경험할 수 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무는 기침, 가래를 제거하는 데도 탁월하다. 다만 이때는 익혀서 먹는 것이 좋다. ‘가래를 삭히고 기침을 그치게 하고 폐위(肺痿)에 의한 객혈을 치료하고 특히 양고기나 은어와 함께 익혀 먹으면 몸이 마르고 기침을 하는 것을 치료한다’고 했다. 폐위는 만성소모성폐질환으로 결핵이나 만성폐색성폐질환(COPD; 만성기관지염, 폐기종) 등의 질환을 의미하는 용어다. 무 자체가 기침, 가래에도 좋지만 다양한 재료와 함께 요리해서 먹으면 영양보충으로 인해 몸을 보하는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무를 생으로 먹으면 갈증을 제거하면서 코피를 멎게 하는 효과도 있다. 이때는 즙을 내서 먹는다. 코피가 자주 나면서 멈추지 않을 때는 생무의 즙을 내서 마셔도 좋고 일부분을 코 안에 넣어줘도 좋다. 즙을 마시는 경우 기관지확장증 등에 의한 객혈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비염으로 인해 코안이 가렵고 콧물, 재채기가 심할 때도 무즙을 면봉이나 스프레이를 이용해서 코안에 넣어줘도 좋다.

무는 소변을 잘 나가게 하면서 요로결석에도 좋다. 특히 ‘사석제림(沙石諸淋)’을 치료한다고 했는데 사석이 바로 요로결석을 말한다. 아랫배에 견딜 수 없는 통증에는 무를 잘라서 꿀에 담갔다가 잠시 후 꺼낸 다음 타지 않을 만큼 수차례 구워 말린 뒤 하루 3회 소금물로 씹어 먹는다고 했다. 이것을 명현고(瞑眩膏)라고 했다. 그냥 말려서 가루를 내거나 이것을 환으로 만들어 먹어도 소변에 이롭고 소변이 뿌옇게 보이는 백탁(白濁)을 치료한다고 했다.

무씨도 무와 비슷한 효과가 있다. ‘기를 내리고 숨참을 안정시키면서 가래를 제거하고 소화를 촉진한다’고 했다. 무씨는 내복자(萊菔子) 혹은 나복자(蘿葍子)라고 하는데 한약 처방에는 무가 아닌 무씨가 들어간다. 한 번에 구슬 정도의 양을 씹어 먹어도 좋고 약간 거칠게 가루내서 약한 불로 30분 정도 끓여서 그 물을 마신다.

항간에 한약을 먹을 때 무를 먹으면 머리카락이 하얘진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문헌상에는 ‘지황이나 하수오를 복용한 사람이 무를 먹으면 머리카락이 백색이 된다’라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과거 문헌에서는 숙지황 등과 무씨(나복자)는 함께 사용하면 부작용이 생긴다고 해서 상반(相反)된 궁합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현재 임상에서는 숙지황과 무씨(나복자)가 함께 들어가는 처방들이 있다. 흰머리의 부작용은 없다. 역시 숙지황이 들어간 처방을 복용하면서 무를 섭취한다고 해서 백발이 된 사례도 없다. 더더군다나 한약을 복용할 때 무를 먹으면 흰머리가 된다는 것 또한 낭설에 불과하다.

명나라 때의 <본초강목> 내용을 끝으로 마무리하겠다. ‘무는 채소 중에서 가장 이익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옛사람들은 이것을 깊이 고찰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너무 흔하기 때문에 소홀히 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무의 특별한 장점들을 몰랐던 것일까?’

이 말은 요즘 해도 어색하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무는 우리가 감히 무시할 만한 채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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