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무중 ‘C형간염 국가검진’…도입 검토에만 약 13억원 투입
오리무중 ‘C형간염 국가검진’…도입 검토에만 약 13억원 투입
  • 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1.10.0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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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타당성 확인하고도 올해 추가 예산 들여 3차 연구 돌입
미국, 프랑스, 일본 등 해외 여러 나라 국가가 선제검사 나서
WHO 2030년 퇴치 목표 발맞추려면 정부의 조속한 결단 필요

세계보건기구(WHO)의 ‘2030년 C형간염 퇴치’ 선포에 발맞춰 해외 여러 나라가 바짝 속도를 내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몇 년간 막대한 예산만 쏟아부을 뿐 뾰족한 대책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형간염은 B형간염과 더불어 무증상이 대부분인 데다 만성화돼 간경변, 간암 등 심각한 간질환을 일으킨다. B형간염처럼 예방백신은 없지만 치료제 개발에 있어선 발전을 거듭, 현재 먹는 약으로 8~12주 정도 치료하면 100% 가까이 완치할 수 있다.

하지만 C형간염은 B형간염과 달리 국가검진항목에 포함돼 있지 않다. 질환 특성상 스스로 증상을 자각하기 어려운데 간단한 혈액검사로 조기발견할 수 있는 기회마저 없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상황에 놓인 국내 무증상 C형간염환자는 약 30만명 정도로 추정되며 문제는 이들이 일상 속에서 바이러스를 전파, 또 다른 C형간염환자를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가장 큰 문제는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가 몇 년째 예산만 쏟아부으며 C형간염 국가검진 도입을 검토만 하고 있다는 것.

실제로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전봉민 의원(무소속)이 보건당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질병관리청은 2015~2016년도 다나의원 C형간염 집단감염 사태 이후 수차례 C형간염 국가검진 항목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했고 2016년부터 현재까지 약 11억9500만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집단감염 사태 직전에 발주된 C형간염 연구용역까지 포함하면 2014년도 이후 7년간 12억7000만원이 투입된 것으로 정책 결정을 위한 연구에 이례적으로 과다한 예산이 지출됐다는 지적이다.

<C형간염 국가검진 도입 검토를 위한 연구용역 내용> 

■1차 연구(2016) : 다나의원 집단감염 후 국가검진 검토 착수

2015~2016년 C형간염 집단감염 사태 이후 정진엽 당시 보건복지부장관은 C형간염 국가건강검진 항목 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후 질병청 주도로 <국가건강검진 내 C형 간염 검진항목 도입에 대한 타당성 분석 연구(2016~2017)>가 이뤄졌다. 해당 연구에서는 경제성평가 및 임상현실을 고려한 추가연구를 권고했다.

■2차 연구(2020) : 임상형 보완연구, 국가검진 가장 효과적 결론

1차 연구결론에 따라 국가검진이 비용효과적인 방식인지, 국내 임상현실에 부합하는 정책인지 검증하기 위해 8억55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한 <C형간염 환자 조기발견 시범사업(2020~2021)>를 실시했다. 동 연구에서는 Screen All 전략이 모든 경우에서 가장 비용-효과적인 대안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사실상 전 국민 대상의 국가검진이 타당하다고 결론 낸 것이다.

■3차 연구(2021.9~), 국가검진 타당성연구 반복, 정책결정 회피 지적

이처럼 2차 연구에서 C형 간염 국가검진에 대한 타당성이 검증됐는데도 2억5000만원의 예산을 추가 투입해 <국가건강검진 항목 중 C형간염 검진의 타당성 분석 연구 및 선별검진의 사후관리방안(2021~2022)> 연구용역을 추가 발주했다.

더욱이 정부는 이미 1차 연구결과를 토대로 지난해 2차 연구를 통해 국가검진 도입의 효과와 타당성을 확인했음에도 올해 또 추가예산을 투입해 연구를 시작, 정책 결정을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보건당국은 “국가건강검진위원회(검진항목평가분과)에서 정한 평가내용에 맞춘 근거자료 도출”을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학계 전문가들은 “이미 1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 충분한 근거를 확보한 상황에서 또 다시 예산을 중복투입해 유사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전봉민 의원은 “WHO를 중심으로 전 세계가 C형간염 퇴치를 위해 글로벌 공조를 강조하는 시점에 국가검진이 가장 효율적인 정책수단이라는 결론을 이미 내리고도 결단하지 못하는 보건당국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며 “국가건강검진을 총괄하는 보건복지부와 질병정책을 총괄하는 질병관리청 간 정책 엇박자가 아닌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오는 10월 20일은 ‘간의 날’로 보건복지부 종합감사에 대한간학회 임원진을 참고인으로 참석시켜 정책결정이 지연됨에 따른 임상현장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정책대안을 모색하겠다”며 C형간염 국가검진 채택을 위한 정부의 조속한 결단을 촉구했다.

한편 우리나라가 C형간염 정책 마련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사이 미국은 올해 초 바이러스성간염 퇴치를 위한 5개년 종합계획을 선포하고 ‘국가간염의 날’을 지정했다.

우리나라와 유사한 건강보험체계를 갖춘 프랑스와 대만도 C형간염을 국가건강검진 대상으로 지정하고 있으며 일본은 지난 2002년부터 전 국민을 대상으로 C형간염검사를 지원하고 있다. 이밖에 독일, 이탈리아, 이스라엘, 불가리아 등 수많은 국가가 자국의 C형간염 퇴치를 위해 선제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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