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식의보감] 약 되는 가을 도라지, 특유의 쓴맛 이유 있었네
[한동하의 식의보감] 약 되는 가을 도라지, 특유의 쓴맛 이유 있었네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1.10.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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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쓰고 쌉싸름하면서 독특한 맛을 내는 도라지는 나물로도 많이 먹는다. 하지만 맛이 쓰고 약간 독한 느낌이 있어 호불호가 갈린다. 사실 도라지는 약과 식품의 중간에 위치한다. 약으로 쓰기에는 맛이 좋고 식품으로 먹기에는 쓴맛이 강하기 때문이다.

도라지는 초롱꽃과로 다년생 식물이다. 뿌리는 식품으로 먹기도 하고 약으로도 사용한다. 보통 3~4년 정도 자라면 뿌리가 썩어 자라지 않는데 토양 등 생육환경이 적합하면 그 이상 자라기도 하고 자연상태에서는 수십 년 자라는 도라지도 있다.

비슷한 뿌리식물으로는 사삼(잔대), 양유근(더덕), 제니(모시대) 등이 있다. 꽃모양이 초롱처럼 생겨서 같은 초롱꽃과이지만 기원식물은 달라 서로 구분해야 한다. 이들은 서로 모양이 비슷해 과거 문헌에는 이들 약초를 다른 이름으로 속여 팔기도 한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도라지는 일반 한의서에 ‘길경(桔梗)’이라고 기록돼 있다. 길(桔) 자는 나무 목(木)에 길할 길(吉) 자다. 즉 몸에 이로운[桔] 뿌리 줄기[梗]라는 의미다. <명의별록>에는 도라지를 ‘백약(白藥)’이라고 했다. 역시 흰색을 띠는 약이라는 의미다. 도라지가 얼마나 몸에 도움이 되면 이런 이름이 만들어졌을까.

안타깝게도 도라지는 독특한 아린 맛 때문에 생으로 바로 먹기 힘들다. 예로부터 이 아린 맛을 험독(㿌毒)이라고 표현했다. 험(㿌) 자는 목구멍을 아리게 한다는 의미다. <본초강목>에는 도라지는 ‘맵고 쓰고 기운은 평하거나 따뜻하면서 약간 독이 있다’라고 했다. 독이 없다고 한 본초서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한의서는 소독(小毒)이 있다고 했고 그 독은 바로 도라지의 맛 때문이다.

도라지의 아린 맛은 소량의 알칼로이드, 탄닌, 무기염류나 유기염류, 테르펜, 사포닌 등 배당체 등에 의한 맛이다. 사실 이 성분들은 과량에서는 독성분이 될 수 있지만 적당량에서는 생리활성물질로 작용한다. 이 점을 보면 도라지의 아린 맛은 마치 미운오리새끼같다. 버리자니 아깝고 먹자니 불편해진다.

일단 도라지의 쓴맛은 아무리 약이 된다고 해도 어느 정도 제거하는 것이 좋다. <본초강목>에는 도라지의 수치법(修治法)으로 ‘하루 동안 물에 담갔다가 아린 맛을 빼낸 후에 약한 불로 볶아서 말린 후에 사용한다’고 했다. 또 ‘거친 껍질을 긁어낸 후 쌀뜨물에 하룻밤 재웠다가 썰어서 약간 볶아서 사용한다’고 했다.

또 ‘백죽(白粥)은 아린 맛을 풀어준다’고 했다. 백죽은 바로 쌀죽이다. 쌀과 함께 죽을 쒀 먹으면 도라지의 아린 맛이 없어진다고 할 정도로 쌀은 도라지의 아린 맛을 제거하는 효과가 크다. 도라지나물 등을 볶을 때 아린 맛을 제거하기 위해 쌀가루를 넣는 것도 좋겠다. 이렇게 했는데도 아린 맛이 남아있다면 쌀가루를 넣고 다시 한번 볶아내보자. 맛이 훨씬 더 부드러워질 것이다.

도라지 특유의 쓴맛은 몸에 약이 되는 다양한 성분들에 의한 것이다. 이 성분들은 과량일 경우 독성분이 될 수 있지만 적정량에서는 생리활성물질로 작용, 건강에 도움이 된다. 따라서 조리 시에는 쓴맛을 일부만 제거하는 것이 좋은데 이때 물에 담가놓거나 쌀을 활용한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도라지는 폐기관지와 호흡기에 주로 작용한다. <본초강목>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도라지는 폐기(肺氣)를 맑게 하고 감초와 더불어서 사용하면 그 공력이 이동함은 실로 배의 노와 같은 역할을 한다. (중략) 만약 도라지 일미가 첨가되면 아래로 내려가려는 어떠한 성질의 약재의 기운도 내려갈 수 없게 된다’고 했다. 약의 기운을 끌고 폐로 올려준다는 것이다.

도라지는 다른 약재의 기운을 끌고 위로 올라가지만 결국은 폐기를 아래로 내려주는 작용을 한다. 쉽게 말하면 폐기관지에 작용해 폐의 기운을 내리고 숨참을 멎게 하고 가래 배출을 용이하게 한다.

도라지를 섭취하면 가래가 늘어나는 느낌이 있다. 이것은 도라지가 폐기관지의 분비물 양을 늘려 이물질을 흡착, 가래로 배출시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청정작용을 높이는 것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과거에는 폐농양(肺膿瘍)에 도라지를 많이 사용했다.

도라지는 인후염, 인후통에도 최고의 재료다. 유명한 처방 중에 감길탕(甘桔湯)이 있다. 바로 감초와 도라지로 구성된 처방으로 인후통을 치료하는 명방이다. 도라지(12그램):감초를 3:1의 비율로 해서 차처럼 끓여서 마신다. 이 구성은 입안이 자주 허는 아프타성구내염을 예방하거나 빨리 아물게 하는 데도 효과가 좋다. 단 구내염에 사용할 때는 비율을 반대로 해서 감초의 용량을 높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여기에 말린 탱자를 넣으면 길경지각탕(桔梗枳殼湯)이 된다. 이 처방은 도라지(8그램):탱자:감초를 2:2:1의 비율로 넣어서 차처럼 끓여서 마시는 것이다. 생강을 약간 넣어도 좋다. 이 처방은 가슴이 답답해서 죽을 것 같을 때 주로 사용한다. 가래가 많아 답답한 만성 호흡기질환이나 심리상태에 의한 화병, 기울증(氣鬱症)에도 도움이 된다.

도라지는 아랫배 복통, 복부팽만, 설사에도 좋다. 많이들 모르는 도라지의 효과 중 하나는 장에도 좋다는 것이다. 대장은 폐의 짝이 되기 때문에 도자리는 대장 관련 증상에도 좋다. 따라서 장염, 설사를 그치게 하고 배에 가스가 차면서 나타나는 아랫배의 복통, 장이 부글거리면서 소리가 나는 장명(腸鳴)에도 좋다.

도라지는 코막힘에도 도움이 된다. 도라지는 가슴 부위와 목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작용을 하면서 폐의 관문(關門)이 되는 코까지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비염이나 축농증에 의한 코막힘에도 도움이 된다. 동시에 머리, 눈도 맑아진다. 도라지에는 이규(利竅)작용이 있어 몸에 난 구멍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작용을 한다.

도라지는 식품보다는 약에 가깝다. 요리연구가들의 방송이나 인터넷에서는 도라지의 쓴맛 제거를 최고의 비법처럼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도라지를 식품의 틀 속에 그냥 가두는 것이나 다름없다.

도라지의 아린 맛은 독이자 약이다. 또 도라지의 껍질에는 몸통에 비해 약리작용을 하는 사포닌이 보다 많이 함유돼 있다. 아린 맛 때문에 맛을 밍밍하게 하고 거칠고 어두운 색깔 때문에 껍질을 모두 제거해 버린다면 도라지의 길경(桔梗)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질 것이다. 도라지는 목경(木梗)이 아니라 길경(桔梗)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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