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식의보감] ‘도토리’는 설사 멎게 하는 최고의 지사제
[한동하의 식의보감] ‘도토리’는 설사 멎게 하는 최고의 지사제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1.10.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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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쌉싸름하면서도 떫은맛의 도토리묵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도토리묵은 나이 들수록 더더욱 향수에 젖게 하는 음식 중 하나다. 어릴 적 어머니가 도토리묵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참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액체를 고체로 변하게 하는 마법사이자 대단한 과학자셨다.

도토리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로는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등이 있다. 이 중 상수리나무의 도토리가 가장 크고 약으로도 많이 사용한다. 따라서 상수리나무의 도토리는 특별히 상수리라는 별칭이 있다.

‘도토리 키재기’라는 속담이 있다. 작은 도토리들이 서로 자기들이 크다고 견주는 것이다. 따라서 도토리는 작은 것을 대변한다. 보통 물체를 세는 단위로는 ‘개’를 사용하지만 아주 작은 물체는 ‘톨’이라고 해서 쌀 한 톨, 두 톨 등으로 셈한다. 도토리라는 이름은 이 톨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된다.

도토리는 모든 종류로 묵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색과 맛에 차이가 있다. 이정록 시인의 <정말>이라는 시집에는 도토리와 상수리를 구별하는 재미있는 시가 있다. 일부를 소개하면 ‘귓구멍에 박아 넣어도 쏙 빠지면 상수리, 큰일났다 싶어지면 도토리 / 묵을 쒔을 때 빛이 나고 찰지면 상수리, 거무튀튀하고 틉틉하면 도토리’라는 내용이다. 상수리는 일반 도토리들에 비해 크고 보다 더 훌륭한 식재료가 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항간에는 임금의 수라상에 자주 올라 상수리로 불리게 됐다는 설명이 있다. 그런데 상실(橡實)이라는 한자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상(橡)은 상수리나무를 의미하고 상수리나무의 열매를 상실(橡實)이라고 했다. “이 열매 이름이 뭐지? 상실이야.” 참고로 조선후기 19세기 서적들의 상(橡)자의 한글표기를 보면 샹슈리 샹 또는 샹수리 샹, 상수리 상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이름은 모두 도토리였다. <동의보감> 상실(橡實) 편을 봐도 한글표기로 ‘굴근도토리’라고 적고 있다. 상실은 도토리 중에서도 ‘보다 크고 굵은 도토리’라는 것이다. 참고로 한의서들의 기록을 보면 도토리 중에서도 상수리인 상실만을 약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도토리는 설사를 멎게 하는 효능이 있다. 이때는 도토리를 말려 가루형태로 먹는 것이 좋다. 반면 도토리에는 탄닌이 많아 변비가 있거나 빈혈과 골다공증이 있는 사람은 섭취하지 않는 것이 좋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동의보감>에는 도토리에 대해 ‘성질은 따뜻하고 맛은 쓰며 떫고 독이 없다’고 했다. 대표적인 효능으로는 ‘설사와 이질을 낫게 하고 장위를 든든하게 하며 몸에 살을 오르게 하고 든든하게 한다. 장을 수렴하여 설사를 멈춘다. 굶주림을 채워주기 위해 흉년에 먹는다’고 했다.

도토리의 가장 대표적인 효능은 바로 설사를 멎게 하는 것이다. 설사가 심하게 날 때 말린 도토리가루를 미음에 타 먹거나 알약을 만들어 먹어도 다 좋다고 했다. 평소 설사가 잦은 사람들은 말린 도토리가루를 상비약으로 준비해두는 것도 좋겠다.

도토리에는 탄닌이 많다. 탄닌은 식물에서 흔히 발견되는 폴리페놀 중 하나로 대장에서 장내 수분흡수를 촉진한다. 도토리가 설사를 멎게 하는 이유다. 덜 익은 감을 많이 먹었을 때 변비가 생기는 이유도 바로 탄닌 때문이다. 따라서 변비가 심한 사람은 도토리를 섭취하지 말아야 한다.

도토리는 장출혈이나 치질에 의한 출혈을 멎게 하는 효과도 있다. <본초강목>에는 도토리가루와 쌀가루를 1:1의 비율로 적당량 섞어 약한 불로 노랗게 볶아 뜨거운 물로 반죽한 후 과자처럼 떡을 만들어 먹거나 밥처럼 쪄서 먹으면 효과가 있다고 했다.

과거에 도토리는 대표적인 구황식품이였다. <동의보감>에는 ‘도토리를 삶아서 먹으면 속을 든든하게 해서 배고픈 줄 모르게 한다. 그러므로 많이 구해서 흉년에 먹을 것을 마련해두어야 한다’고 했다.

<본초강목>에도 도토리를 쪄서 밥처럼 먹는다는 내용이 나온다. ‘도토리를 15회 정도로 물을 바꿔가면서 물에 담가뒀다가 떫은맛을 걸러낸 다음 쪄서 익혀 먹으면 굶주림을 면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도토리는 흉년의 기아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당나라 시성(詩聖)인 두보가 유랑생활을 할 때도 도토리로 연명했다는 얘기가 있다.

다이어트기간 배고픔을 견디기 힘들 때 도토리를 쪄서 간식처럼 먹어도 허기짐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단 심해질 수 있는 변비는 식이섬유 등을 충분히 섭취해 해결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도토리도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

도토리껍질도 약으로 사용한다. 도토리껍질을 상실각(橡實殼) 또는 두각(斗殼)이라고 한다. 도토리껍질을 가루로 만들어 먹거나 끓여 먹어도 역시 설사를 멎게 하는 효과가 있다. 또 자궁출혈과 대하증이 심할 때 껍질을 불에 태워 그 가루를 미음에 타서 마신다고 했다.

도토리를 섭취할 때는 몇 가지 주의할 사항이 있다. 일단 변비가 심한 사람은 섭취하지 말아야 한다. 또 아무리 설사를 멎게 한다지만 세균성 설사인 경우 도토리를 먹으면 안 된다. 세균성 설사는 바로 멈추게 하기보다 충분히 설사를 나게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도토리는 중금속을 배출하는 효과가 있다. 이 또한 탄닌의 역할이다. 그런데 중금속뿐 아니라 금속성이 대부분인 미네랄까지 흡착해 배출한다. 이러한 이유로 빈혈이 심하거나 골다공증이 심한 사람은 도토리묵을 피해야 한다.

무심코 도토리묵을 자주 먹으면 식품 속의 철분이나 칼슘 흡수가 방해돼 빈혈이나 골다공증이 심해질 수 있다. 매일 영양제를 섭취하는 사람은 최소 2시간 이상 시간 차를 두고 먹어야 한다.

무엇보다 도토리는 훌륭한 지사제다. 도토리를 약으로 사용하고자 한다면 말린 것을 가루내 보관해두면 된다. 설사가 날 때 활용하고자 한다면 물에 담가 떫은맛을 제거하지 않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차처럼 끓여 마시는 것보다 도토리 그 자체로 섭취하는 것이 낫다. 자잘한 보잘것없는 도토리도 지사제로 사용하면 작은 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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