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肝) 보는 의사 한광협의 청진기] 존재의 이유
[간(肝) 보는 의사 한광협의 청진기] 존재의 이유
  • 한광협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원장ㅣ정리·한정선 기자 (fk0824@k-health.com)
  • 승인 2021.10.22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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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협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원장
한광협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원장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존재의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은 철학적 질문처럼 보이지만 누구나 존재의 이유가 있고 이를 찾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3년 연속 1위로 연간 자살로 인한 사망자가 1만3000명 이상이다. 

다행히 전체 자살률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젊은이들의 자살률은 오히려 늘고 있다. 자살하는 이유는 다양하나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지 못했거나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수능 점수를 잘 못 받아서 자살한 경우는 존재의 이유를 대학 입시에 둔 경우고 실연이나 취업문제로 자살한 경우는 존재의 이유를 사람관계나 진로문제에 둔 경우이다. 누구나 이 세상에 자신만의 고유 유전정보를 갖고 태어난다. 이렇게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존재가 자신의 고귀한 존재를 일찍 포기한다는 게 참 안타깝다. 

최근 화제가 된 ‘오징어게임’은 게임에 참여한 다른 존재를 제거해야 생존할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 안에서 처절하고 치열한 경쟁을 보여줌으로써 세계적인 공감을 줬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은 너무 가볍게 다뤄져 아쉬움이 남는다. 

반면 영화 마션(Martian)은 화성에 남겨진 우주인 한 명을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서 기적적으로 구출하는 영화로 생명의 존엄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직업도 존재의 이유가 있고 이를 직업관이나 직업윤리와 결부시킬 수 있다. 의사는 존재의 이유가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데 있어 영어로는 job이라고 하지 않고 calling이라 부른다. 즉 소명(召命)의식을 갖고 일하라는 뜻이다. 의사에게 생명의 회복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환자라도 여러 생명유지 장치를 통해 기적적인 생환을 지켜볼 것을 권하는 이유이다. 

역으로 생과 사의 현장에 오래 있다 보면 죽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필자는 간암환자를 진료할 때 종종 환자나 가족에게서 왜 그 환자가 오래 살아야하는지를 듣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암(癌)은 존재의 이유를 고려하지 않는다.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누구나 살아야 할 이유가 있고 생존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필자의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 60대 여성환자로 진행된 간암으로 인해 방사선과 약물치료를 받던 중 그녀의 30대 아들도 간암으로 같이 진료받았다. 그녀는 다행히 치료 반응이 좋아 수술까지 받았지만 아들은 치료효과를 보지 못하고 병이 진행돼 사망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병 호전보다 아들 병의 악화가 더 안타까워 자신은 죽어도 좋으니 아들을 살려 달라고 간청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후 그녀는 암이 완치됐다는 기쁜 소식을 통보받고도 자식을 먼저 보낸 비통함을 오랫동안 간직했다. 그녀의 존재의 이유는 자신보다 자식의 행복이었던 것이다.

지구상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각각 부여 받은 존재의 이유가 있다.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생존을 통해 전 세대에게 부여 받은 임무를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는 것. 마치 릴레이 육상경기에서 앞 주자가 넘겨준 바톤을 받아 정해진 구간을 최선을 다해 달린 후 다음 주자에게 바톤을 넘겨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 않은 종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류를 힘들게 하고 있지만 이 작은 바이러스의 존재 이유는 인간을 괴롭히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숙주에 기생해 증식함으로써 존재를 이어가는 것이다.

오래전 가수 김종환이 불렀던 ‘존재의 이유’는 무명의 그를 가수로서 존재감을 높여준 곡이다. ‘알 수 없는 또 다른 나의 미래가 나를 더욱 더 힘들게 하지만, 니가 있다는 것이 나를 존재하게 해, 니가 있어 나는 살 수 있는 거야’라고 노래했다.

많은 부모님들은 자식의 존재가 존재의 이유이다. 필자의 부모님은 한국전쟁 때문에 모든 것을 고향에 남겨두고 월남했다. 만일 피란민 생활의 어려움으로 출산까지 포기하셨으면 필자도 존재할 수 없었다. 희생으로 대학까지 보내주신 것에 감사할 뿐이다.

코로나로 더욱 취업이 어렵고 살아가기가 힘들어져 결혼도 미루고 출산을 포기하고 심지어 삶을 포기하려는 젊은이들에게 우리는 더 힘든 시기를 보냈다거나, 존재의 이유를 생존에 국한해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다른 것은 생존 그 이상의 저마다 부여된 존재의 이유를 생각하고 찾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사명(使命)이나 소명(召命)이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가 존재하는 자체도 누군가의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푸쉬킨의 시(詩)가 위로가 되기 바라면서 각자 존재의 이유를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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