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반응률 낮고 고약한 ‘췌장암’…치료길 조금씩 열려
약물반응률 낮고 고약한 ‘췌장암’…치료길 조금씩 열려
  • 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21.10.2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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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암은 섬유화 정도가 심해 약물침투가 어렵고 종양미세환경이 사막처럼 황량하고 면역세포인 T세포가 거의 없어 표적항암제나 면역항암제 역시 별 힘을 쓰지 못한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췌장암은 섬유화 정도가 심해 약물침투가 어렵다. 또 종양미세환경이 사막처럼 황량하고 면역세포인 T세포가 거의 없어 표적항암제나 면역항암제 역시 별 힘을 쓰지 못한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의학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다. 이에 과거 불치병으로 불리던 암 역시 완치율과 5년생존율이 증가하면서 극복 가능한 질환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여전히 5년생존율이 10%에 못 미치는 치명적인 암종이 있으니 바로 ‘췌장암’이다.

췌장은 인슐린과 글루카곤을 분비, 체내혈당을 조절하고 췌장액을 분비해 음식물소화를 돕는 기관이다. 문제는 췌장은 위, 십이지장, 소장, 대장 등 각종 소화기관에 둘러싸여 있어 CT나 MRI를 통해서도 종양발견이 어렵다는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각증상이 없어 조기발견도 어렵다. 췌장암이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이유다. 

■췌장암 예후가늠할 유전자변이 ‘ERCC6’ 발견

췌장암환자가 늘고 있다. 국가암정보센터에서 발표한 2021년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췌장암으로 진단된 환자는 7611명으로 전체 암의 3.1%를 차지하고 암중 8번째로 높은 발생률을 보인 것.

췌장암의 가장 큰 문제는 치료옵션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우선 췌장암 특성상 섬유화 정도가 심해 약물침투가 어렵다. 또 종양미세환경이 사막처럼 황량하고 면역세포인 T세포가 거의 없어 표적항암제나 면역항암제 역시 별 힘을 쓰지 못한다.

하지만 최근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류지곤 교수가 췌장암의 예후를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되는 유전자변이를 찾아내 환자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됐다.

연구팀은 2017~2019년 췌장암환자 103명의 유전자를 분석했다. 연구결과 예후 및 치료반응성 예측 등에 유용한 유전자 변이 ‘ERCC6’을 발견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ERCC6 유전자는 DNA손상과 복구에 관여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해당 변이가 있는 환자의 경우 폴피리녹스 항암요법에 좋은 반응을 보였다. 즉 ERCC6 유전자변이가 확인되면 폴피리녹스 요법을 우선처방해 장기생존을 꾀할 수 있는 것이다.

췌장암의 표준 항암치료는 ‘폴피리녹스 요법’과 ‘AG요법’ 등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폴피리녹스 요법은 4제요법으로 ▲5-플루오로우라실(5-FU) ▲이리노테칸 ▲류코보린 ▲옥살리플라틴 등의 약제를 합친 치료법이다. 반면 AG요법은 젬시타빈과 아브락산을 병행하는 치료법이다.

문제는 이 두 가지 요법 중 어떤 것을 적용해야 한다는 뚜렷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의료현장에서 치료방침을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ERCC6 유전자변이 발견으로 폴피리녹스 요법 투여시기를 결정짓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게 됐다.

류지곤 교수는 “특정항암제에 반응하는 ERCC6 유전자변이를 세계최초로 규명해 큰 의미가 있다”며 “향후 간단한 혈액채취로 항암화학요법을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바이오마커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설명했다.

불치의 병으로 여겨지던 췌장암에서 여러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전자변이, 광역학치료, 방사선치료 등이 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불치의 병으로 여겨지던 췌장암에서 여러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유전자변이, 광역학치료, 방사선치료 등이 대표적인 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세계 최초 복강경 이용한 광역학치료(PDT)

췌장암에 있어 ‘수술여부’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환자의 70%는 진단 당시 이미 전이가 심해 수술이 어렵고 나머지 30% 중에서도 80% 이상이 수술 후 재발한다. 하지만 최근 동성제약이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2세대 광민감제 ‘포토론’ 임상을 진행하면서 췌장암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옵션을 제기했다.

광역학을 이용한 췌장암 치료는 형광복강경을 이용,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광민감제를 암세포에 축적해 암세포만 골라 파괴하는 기전을 갖고 있다. 지난해 동성제약은 신촌세브란스병원과 췌장암에 광역학치료(PDT)를 적용하는 임상연구 계약을 체결, 기존 암 치료법에 반응하지 않는 국소진행성 췌장암환자를 대상으로 복강경하 종양내 광역학치료의 안정성과 유효성 확인하는 임상을 진행했다.

임상결과는 매우 긍정적이었다. 실제로 8월 진행된 대한광역학학회에서 신촌세브란스병원 췌장암 외과 황호경 교수가 ‘국소진행성 췌장암 환자에서의 복강경을 이용한 광역학 치료의 안전성 및 유효성 평가’를 발표한 것.

임상은 지난해 7월 첫 환자를 시작으로 총 4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모든 환자에서 시술 직후 종양괴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일부 환자에게서는 종양증가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 환자에서 종양이 축소됐지만 종양표지자 증가가 발견되면서 추후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물론 이번 임상 환자는 4명으로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황호경 교수에 따르면 발병부위가 주요 혈관침범 등으로 인해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은 췌장암에 있어 광역학치료는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으며 특히 안전성 면에서 광역학치료는 췌장염 등과 같은 수술후 합병증이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황호경 교수는 발표를 통해 “복강경을 이용한 광역학치료 시에 반드시 전신마취가 수반돼야 하기 때문에 반복적인 광역학치료의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며 “조심스럽게 영상의학과와의 협진으로 경피적 접근을 이용한 광역학치료법을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방사선치료 시행 및 미시행 그룹별 췌장암 세포주 증식 비교
방사선치료 시행 및 미시행 그룹별 췌장암 세포주 증식 비교

■수술 중 방사선치료(IORT)로 생존율↑

췌장암은 공격성이 강해 종양 절제 후에도 재발이 잦아 치료가 어렵다. 하지만 췌장암수술 후 방사선치료(IORT)를 적용하면 면역생성에 관여하는 여러 사이토카인 분비가 촉진돼 췌장암환자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연구는 강남세브란스병원 간담췌외과 박준성 교수팀이 진행했다. 연구팀은 2018년부터 췌장암수술 후 방사선치료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췌장암수술 후 직경 3.5cm 크기의 방사선 발생 장치 팁을 가까이해 10그래이(Gy) 수준의 단일 선량 방사선치료를 실시했다. 이때 수술 후 환자들에게 부착된 배액관을 통해 수집된 체액을 분석, 방사선치료효과를 살폈다.

연구팀은 방사선치료를 받은 환자군의 체액에 췌장암 세포 성장을 억제하는 사이토카인 분비가 많음을 확인했다. 또 췌장암 세포주와 환자의 체액을 동시에 배양했을 때 방사선치료를 받은 환자의 체액으로 배양한 그룹에서 췌장암 세포주 증식이 유의미하게 감소함을 밝혀냈다.

이때 방사선치료를 받은 환자군 체액에서 암종양 억제 작용에 핵심기능을 수행하는 사이토카인 성분이 더 많이 검출됐다. 항염증성 사이토카인 종류인 ‘TGF-Β’와 혈소판 유도성장인자 ‘PDGF-BB’가 유의미한 증가를 보였다.

박준성 교수는 “방사선치료가 환자의 면역반응을 증가시키는 것을 확인한 첫 번째 연구라 의미가 크다”며 “췌장암은 절제술이 아무리 잘 돼도 간이나 폐로의 원격전이와 국소전이가 많은 만큼 방사선치료가 췌장암환자의 생존율을 증진시키는 새로운 치료방법으로 충분한 경쟁력을 지녔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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