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肝)보는 의사 한광협의 청진기] ~한 뒤에야
[간(肝)보는 의사 한광협의 청진기] ~한 뒤에야
  • 한광협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ㅣ정리·한정선 기자 (fk0824@k-health.com)
  • 승인 2021.11.1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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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협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원장
한광협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원장

중국 명나라 문인 진계유는 연후(然後; 뒤에야)라는 제목으로 ‘일을 돌아본 뒤에야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냈음을 알았네 (省事 然後知 平日之費閒)/ 욕심을 줄인 뒤에야 이전의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네(寡慾 然後知 平日之病多)’라는 성찰의 글을 남겼다.

삶은 선택의 연속으로 돌이켜보면 누구나 후회되는 선택을 많이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 ‘백투더 퓨쳐(Back to the future)’나 ‘어바웃 타임(About time)’ 같은 영화가 공감을 얻는지도 모른다. 주인공들은 과거로 돌아가 후회되는 선택을 바꿔 원하는 삶을 살게 된다. 바둑에서는 복기(復碁)를 통해 자신의 잘못 둔 수를 알고 반복된 실수를 피한다. 

우리 인생도 미리 예측할 수 있으면 실수를 줄이고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을 하고 후회하는 것이 인생이고 이를 줄이는 것이 또 삶의 지혜다.

필자는 오랫동안 간질환자를 진료하면서 병이 깊어진 뒤에야 병원을 방문해 후회하는 환자들을 많이 봤다. 조금만 관심을 가졌으면 몸이 보내는 경고를 알아차릴 수 있었을 텐데 무시하다 병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간을 ‘침묵의 장기’라고 하는 이유는 병이 깊어져야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이고 간암을 ‘침묵의 살인자’라고 하는 이유도 증상이 나타나면 이미 병이 너무 진행돼 있기 때문이다.

대한간학회에서 10월 20일을 ‘간의 날’로 정하고 간에 대해 관심을 갖자고 하는 이유도 병이 깊어진 뒤에야 간이 소중한 것을 알게 되는 우(愚)를 범하지 말자는 뜻이다. 2월 2일을 ‘간암의 날’로 정한 이유도 간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 연 2회 2가지 검사를 받자는 뜻이다.

간염은 예방과 치료가 가능해 관심만 가지면 평생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하지만 무관심하거나 증상이 없다고 관리하지 않으면 병이 깊어져 말기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일부에서는 간이식으로 새 생명을 찾을 수 있지만 뇌사자 간이식이 활발하지 않아 가족내 기증자가 있는 경우에나 기회가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비교적 가족내 기증자가 많은 편이라 뇌사자 간이식의 부족함을 어느 정도 메우고 있다. 하지만 가족 중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새 생명을 얻기보다는 간이 망가지기 전에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간을 망가뜨리는 주범은 간염 바이러스와 나쁜 생활습관(과음, 과식, 운동부족, 약물남용 등)으로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간질환을 막을 수 있다. 

특히 B형간염은 백신접종으로 예방이 가능하고 국가건강검진 항목에 포함, 조기 발견 후 지속적인 항바이러스 치료를 통해 관리가 잘 되고 있다. 

C형간염은 진단만 되면 2~3개월 먹는 약을 통해 완치 가능하다. 그만큼 병이 깊어지기 전에 빨리 진단받고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자각증상이 없어 검진받지 않는 탓에 병이 진행된 뒤에야 발견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C형간염은 국가건강검진 항목에도 포함돼 있지 않아 별도로 검사를 받아야 알 수 있다. 

‘욕심을 줄인 뒤에야 이전의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네’라는 진계유의 시처럼 술과 음식에 대한 욕심을 줄이고 생활습관을 바꾸면 건강을 잃고 후회하는 일을 줄일 수 있다. 연말이면 모임이 많고 술자리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위드 코로나로 방역수칙이 다소 완화되면서 올 연말엔 자영업자의 근심은 좀 해소되지만 간이 혹사될까 걱정된다.

누구나 미래를 알거나 예측하고 싶어한다. 기상예보관과 점성술사는 닥쳐 올 미래를 예측하는 직업으로 차이점은 과학적근거를 바탕으로 하는지 아닌지의 차이이다. 누구나 현명한 선택을 하고 싶어하지만 선택의 결과를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미래를 예견하려는 노력을 한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을 이용해 주식의 변동이나 일기예보를 예측한다. 기상예보가 정확해진 이유는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예측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많은 정보와 경험의 자료를 통해 예측이 가능한데도 잘못된 선택을 하는 이유는 나쁜 습관과 욕심에 있다.

‘인디언의 말타기’라는 책에서 저자는 ‘인디언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 가끔씩 말을 세우고 뒤를 돌아보는 습관이 있는데 걸음이 느린 영혼에 대한 배려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하며 늘 자신을 돌아보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다’라고 했다. 

즉 정신없이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기만 하면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 왜 달리고 있는지 인생의 목표와 목적을 상실할 수 있다. 틈틈이 삶을 돌아보면서 자기 성찰을 해야 잘못된 방향으로 너무 멀리 가지 않게 된다. 

올 연말에는 인디언의 말타는 지혜를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용기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희망하는지에 대한 지식을 직면할 수 있는 힘이고 지혜는 분별력 있고 신중한 힘이다’라고 했다. 문제를 직면하는 힘과 분별력 있고 신중한 선택을 하는 지혜로 우리의 삶을 돌아아보며 중요한 것을 잃은 뒤에야 후회하지 않기 바란다. 부디 잘못된 선택 대신 지혜로운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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