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식의보감] 게장과 감은 상극? 경종은 과연 ‘게장과 감’ 때문에 죽었을까
[한동하의 식의보감] 게장과 감은 상극? 경종은 과연 ‘게장과 감’ 때문에 죽었을까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1.12.06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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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게와 감의 궁합은 상극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한국에서만큼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인해 근 300년간 이들 궁합에 대한 걱정이 이어져 왔다. 바로 조선 20대 왕인 경종이 게장과 감을 함께 먹고 죽었다는 풍문 때문이다.

‘경종의 죽음’, ‘게’와 ‘감’의 모진 악연들은 어떤 이유로 시작됐을까. 과연 사실일까. 이러한 궁금증을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통한 역사적 기록과 함께 <본초강목>의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또 그 인과관계 여부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자.

흔히들 경종은 ‘게장과 감을 함께’ 먹어서 죽었다고 알고 있지만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경종은 게장과 감을 먹을 당시 이미 중환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승정원일기>에는 내의원의 업무가 자세하게 기록돼 있어 경종의 병세가 사실에 가깝게 실려 있다. 우선 간략하게 경종이 승하한 1724년 여름의 병상일지를 살펴보자.

「7월 20일 경종은 가벼운 감기 증상을 보인다. 병세는 조금씩 악화되더니 8월 중순이 되어도 지독히 낫지 않았다. 주 증상은 식사를 멀리하고 잠을 잘 이루지 못하면서 두통, 오한, 번열감, 오심 등의 증상이 있었다. 이러한 증상은 기복을 보이다가 8월 20일에 약간 차도를 보인다.

그런데 경종은 20일 저녁에 게장과 감을 함께 먹고 배가 조이는 듯한 복통, 설사 등의 증상이 밤부터 새벽까지 이어졌다. 설사가 그치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21일 인삼속미음(人蔘粟米飮)과 함께 약방에서는 곽향정기산등을 처방해 올렸다.

설사 등의 증상은 여전해서 23일까지 이어지면서 정신이 혼미한 증상도 동반되었다. 그래서 인삼차 등이 처방되었다. 24일에는 인삼과 부자까지 처방되면서 콧잔등에 약간 온기가 생기고 증세가 호전되는 것으로 같았으나 24일 밤 새벽 경종은 결국 승하한다.」

이 내용은 약 30여일간의 경종의 병상일지다. 이를 시간적으로 보면 경종은 한 달 가까이 병을 앓고 있었고 병세가 악화되던 와중에 게장과 감을 먹었으며 4일 후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경종의 직·간접적인 사인은 무엇일까.

첫 번째 가설은 경종은 원래 앓고 있던 질환 때문에 죽었다는 것이다. 경종은 게장과 감을 섭취하기 전부터 거의 한 달 동안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미음만을 섭취했다. 식사를 거의 못 할 정도로 위장관 증상이 심했고 그만큼 병세는 심각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의관들은 다양한 처방을 했지만 차도는 거의 없었다. 병세가 악화되는 과정에서 게장과 감을 먹은 것뿐이다.

경종은 세자 때부터 근심 걱정이 많고 병약했다. 재위 기간에는 갈수록 건강이 나빠졌다. 이것을 보면 경종의 죽음은 게장과 감이 직접적인 원인이 아닐 수 있다. 게장과 감을 먹지 않았어도 어쩔 수 없이 병사를 면치 못했을 수 있다.

두 번째 가설로 게장과 감을 동시에 먹었기 때문에 죽었다는 것이다. 게와 감은 상극인 식품으로 함께 먹어서는 안 된다고 알려져 있다.

<조선왕조실록 경종 4년 8월 21일>에 ‘약방에서 입실하여 진찰을 하고 여러의원들이 임금에게 어제 게장을 진어하고 이어서 생감(生柿)을 진어한 것은 의가에서 매우 꺼려하는 것이라 하여 두시탕 및 곽향정기산을 진어하도록 청하였다’는 대목이 나온다.

의가에서 매우 꺼려한다는 근거가 바로 <본초강목>의 기록 때문이다. 본 서에는 ‘대개의 경우 감과 게를 함께 먹으면 사람에게 복통을 일으키고 설사를 하게 한다. 이 두 가지는 모두 기운이 차갑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더불어 한 가지 부작용 사례로 ‘혹자가 게를 먹고 많은 홍시를 먹었는데 밤이 되자 심하게 토하고 이에 토혈(吐血)까지 했으며 정신이 아득하여 인사불성이 되었다’라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게장과 감의 궁합 때문에 독살설이란 말까지 등장한다. 심지어 인원왕후와 영조가 게장과 감을 일부러 들이도록 했다는 음모론까지 등장한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주장들은 당시 소론 강경파가 의도적으로 독살 음모설을 퍼뜨렸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사실 게와 감을 함께 먹더라도 약간의 소화불량이 있을지언정 죽을 정도는 아니다. 따라서 게장과 감을 이용한 독살설은 허무맹랑한 주장이다.

경종이 승하한 24일에 약방에서는 인삼과 부자를 처방한 것을 보면 경종의 병증은 허냉한 상태의 소화기 증상이 있던 상태에서 서늘한 기운의 게장(혹은 감)을 먹어서 배탈, 설사가 심해졌을 가능성은 있다. 조심스럽게 경종의 체질은 혹시 냉체질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렇다고 해서 게와 감을 함께 먹어서 죽었다는 것은 혹세무민한 주장이다. 게와 감은 경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다.

마지막 세 번째 가설은 경종이 상한 게장으로 인한 ‘식중독’ 때문에 사망했다는 것이다.

<본초강목>에는 ‘무릇 게는 날 것을 삶던지 염장을 하던지 조(糟; 술 지게미)에 저장하던지 술에 담그든지 장즙(醬汁)에 담그든지 모두 맛이 좋다. 다만 오래된 것은 상하기 쉽다’라고 했다. 과거 게를 먹고 식중독이 잦았던 것은 분명하다. 특히 장즙에 담근 게장은 장시간 보관하기 때문에 더더욱 식중독이 많았을 것이다.

게장과 감은 상극으로 함께 먹어선 안 된다고 알려졌지만 게장이 상하거나 냉체질이 아니라면 문제 되지 않는다. 특히 제철을 맞은 게는 보관에 주의하면 이맘때 맛있고 건강하게 즐길 수 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요즘처럼 유통과 냉장시설이 잘 돼 있는 상황에서도 게장을 먹고 배탈이 나는 경우를 쉽게 경험한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더더욱 흔한 일이었을 것이다. 본인도 30여년 전 상한 게장을 먹고 밤새 복통 설사에 시달리다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다.

배는 간헐적으로 극심하게 쥐어짜듯 조이면서 아팠고 그럴 때면 수양성 설사를 동반했다. 난생처음으로 ‘이래서 탈수에 빠지면 죽는구나’ 싶었다. 경종 또한 배가 조이는 듯한 복통과 설사 등 특이적 증상이 있었다는 기록을 보면 상한 게장을 먹고 식중독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보통 식품의 변질과 부패는 향이나 색이 변하는 것을 보고 알 수 있지만 간장게장은 상해도 구별이 되지 않는다. 맛도 똑같다. 상함의 유무는 먹고 나서야 배탈 등의 증상으로 확인이 가능할 뿐이다.

그럼 게와 감의 상극 궁합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본초강목>에 기록된 게와 감의 상극에 관한 내용은 실제 관찰결과를 기록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상한 게를 먹고 난 이후 우연찮게 곧바로 감을 먹었던 사람들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게와 감은 같은 제철음식으로 동시에 먹는 경우가 분명 비일비재했을 것이다.

사실 게와 감이 둘 다 모두 서늘한 성질이기 때문에 궁합이 좋지 않다는 이시진의 설명은 어떻게 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속이 냉한 체질의 경우는 탈이 날 수 있지만 열 체질의 경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분명 지금도 누군가는 게와 감을 함께 아무런 탈없이 맛있게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 게가 제철이다. 꽃게찜, 꽃게탕도 좋고 게장으로도 만들어도 맛있다. 맹선의 <식료본초>에는 ‘게는 제반 열을 흐트러트리고 위기를 치료하며 경맥을 이롭게 하고 음식물을 소화시킨다. 식초와 함께 먹으면 관절을 부드럽게 하고 오장의 번민한 기를 제거하면서 사람을 이롭게 한다’고 했다. 게는 맛도 좋고 건강에도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종합하자면 게와 감은 이미 차가운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났을 때나 상극이다. 위장이 튼튼한 열체질이라면 게를 먹고 후식으로 감을 즐겨도 좋다. 경종의 죽음에 게와 감이 관련 됐다는 주장은 누명이자 오비이락일 뿐이다. 이제 게와 감 사이의 이간질을 멈추자. 상한 게가 아니라면 두려울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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