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 약사의 약 부작용이야기] 항생제를 먹고 나면 꼭 ‘질염’이 와요
[배현 약사의 약 부작용이야기] 항생제를 먹고 나면 꼭 ‘질염’이 와요
  • 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1.12.24 10: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
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

“김하나(가명) 님, 오늘도 항생제 처방이 나왔네요. 증상이 완화돼도 꾸준하게 드셔야 하는 거 아시죠?”

“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항생제를 며칠 먹고 나면 꼭 질염이 와요.”

“그래요? 지금은 좀 어떠세요?”

“지금도 약간 그런 느낌이 있기는 해요. 여성 전용 유산균을 먹으면 좀 나은 것 같아서 사서 먹고 있어요.”

“병원에 가보진 않으셨어요?”

“이번엔 안 갔어요. 지난번에 병원에 가봤는데 곰팡이 약을 쓴다고 해서 안 가려고요. 항생제 먹는데 또 약을 쓰면 독할 것 같아서요.”

“에고, 그렇지 않아요. 복용하는 약이 아닌 질정을 사용하면 되는데요.”

“그래요?”

항생제는 세균에 작용하는 약입니다. 주로 세균이 증식하지 못하게 하거나 세균을 직접 죽이는 작용을 하죠. 세균과 동물 세포는 서로 다른 구조이기 때문에 항생제를 사용해도 인체에는 직접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물론 항생제 내성이나 알레르기 반응 등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항생제를 먹었을 때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은 생명체가 있습니다. 그건 우리 몸에 같이 살고 있는 세균들입니다. 인체 내부 조직을 제외한 피부, 입안, 위, 소장, 대장, 질, 각막 등등 모든 곳에 세균이 공생하고 있다고 보면 되는데요. 이런 미생물의 집합을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고 부릅니다.

앞서 말했듯이 항생제는 세균에 작용하는 약입니다. 세균 입장에서 봤을 때 인체에 유익한 균과 유해한 균이 따로 있지 않듯 항생제도 유익균과 유해균을 구분해 제거할 순 없습니다. 한 전문가는 항생제 복용은 미생물이 모여 있는 ‘산에 산불이 나서 몽땅 타버리고 재만 남는 것’이라고 표현했는데 매우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항생제를 복용하면 가장 먼저 위장관에 있는 미생물들이 죽게 됩니다. 장내 미생물은 음식물의 소화와 흡수를 돕죠. 만일 장내 미생물이 죽게 되면 음식물이 완전히 소화되지 못해 설사를 하게 됩니다. 특정 항생제에 잘 버티는 균들이 선택적으로 증식하면서 장염을 유발하기도 해요.

항생제가 피부, 임파선, 기관지 등에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위장관에서 흡수돼 혈중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혈액으로 이동한 항생제 성분은 혈관을 따라 전신으로 퍼져 나가고 각 조직으로 이동해 균 감염으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들을 치료하게 되죠. 이때도 마찬가지로 해당 조직에 존재하는 프로바이옴이 손상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여성 질 내에는 락토바실러스가 다수 존재합니다. 락토바실러스는 유산(젖산)을 생성하는 균으로 흔히 유산균이라고 불리죠. 유산은 질 내 산도를 낮춰 질 안의 유해균들이 증식하지 못하게 막아줍니다. 만일 항생제를 복용하고 나서 질 내에 존재하는 유산균들이 손상되면 이 기회를 틈타 병원성 미생물이 증식합니다. 이렇게 정상적인 점막 면역이 깨졌을 때 증식하는 균들을 ‘기회감염균’이라 불러요. 특히 곰팡이균에 해당하는 칸디다균이 번식하면서 질염을 일으키는데 이것이 바로 ‘칸디다성 질염’입니다.

여성에게 흔한 질염은 일반적으로 칸디다성과 세균성이 있습니다. 이 둘은 사용하는 약물이 달라 반드시 구분해 알아둬야 합니다. 위 표를 참고하면 쉽게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경우 모두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질정 등을 통해 증상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증상이 쉽게 개선되지 않거나 자꾸 재발한다면 반드시 의사 진료를 받아야 해요. 만성 칸디다성질염은 항진균제 처방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위 사례의 김하나 님 역시 항생제 복용 후 칸디다균이 이상증식한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로 인해 곰팡이균을 제거하는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처방을 받은 것이죠. 여성 전용 프로바이오틱스 복용 후 증상이 나아진 것은 프로바이오틱스가 질 내 손상받은 락토바실러스균을 공급해 칸디다균 증식이 억제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 칸디다균이 많이 번식한 상태에서는 의약품을 사용해 칸디다균을 억제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복용하는 항진균제가 부담스럽다면 클로트리마졸 질정(카네스텐질정, 바이엘코리아)을 사용해 쉽게 증상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덧붙여 칸디다성질염은 음부 가려움이나 화끈거림을 동반하는 외음염을 동반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때는 질정과 함께 바르는 항진균제를 병용해야 효과적으로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습니다.

잦은 질염과 방광염 때문에 항생제를 자주 복용하는 여성은 프로바이오틱스를 꾸준히 복용하는 것이 도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프로바이오틱스는 의약품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세요. 확실히 칸디다균에 의해 증상이 유발됐다고 판단될 때는 적절한 의약품을 사용해 신속하게 증상을 완화해야 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