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 약사의 약 부작용 이야기] 구충제, 먹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배현 약사의 약 부작용 이야기] 구충제, 먹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 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2.01.07 18:46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
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

“또리로리 또리로리~”. 약국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밝은미소약국입니다.”

“약사님, 제가 집에 있는 구충제를 먹었는데요. 배가 아파서요. 괜찮을까요?”

“아, 그러셨어요. 약을 복용하고 바로 복통이 있으셨나요?”

“아니요. 약 먹고 한참 지나니 배가 아팠어요. 화장실 갔다 오고 나서 좀 괜찮아지긴 했는데. 이거 부작용인가요?”

“화장실 갔다 오고 나서 좀 괜찮아졌다는 거죠? 그럼 정상적인 반응일 수 있어요. 일단 지켜 보시고요. 만일 증상이 없어지지 않으면 내과 진료를 받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정상적인 반응일 수도 있군요. 알겠습니다.”

오래된 이야기긴 하지만 구충제를 먹는 게 과연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찬반 의견이 신문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습니다. 알벤다졸과 플루벤다졸 같은 약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토양 매개성 기생충약을 굳이 먹을 필요가 있느냐는 거죠.

그도 그럴 것이 과거에는 회충과 요충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는 곡식을 키울 때 인분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요즘에는 농사에 화학 비료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토양 매개성 기생충 발생은 많이 줄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약국에서 구충제를 구매해 굳이 복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2012년 기생충 감염률이 3% 정도로 조사됐고 보고된 전체 1234건 중 186건이 요충, 회충, 편충 등 토양성 기생충 감염이었습니다. 요충이나 회충 등은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거의 병원 진료를 받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많은 사람에게 기생충 감염이 발생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많은 보육 시설에서도 지속적으로 요충 검사를 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에서 감염 사실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없어질 것만 같던 토양 매개성 기생충 감염. 왜 계속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요?

첫째, 반려동물을 실내에서 키우는 가정이 늘었습니다. 주로 개와 고양이 분변에서 나온 기생충 알을 사람이 먹어 감염되는 것이죠.

둘째, 동남아시아처럼 토양 매개성 기생충이 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현지에서 먹는 채소 등에 기생충 알이 묻은 것을 모르고 먹으면 자신도 모르게 감염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일 년에 한두 번 약국에서 구충제를 구입해 복용하는 것은 매우 가성비 높은 셀프메디케이션이라 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알벤다졸과 플루벤다졸은 기생충이 당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 굶겨 죽입니다. 기생충이 죽으면 소화 효소 등에 의해 분해돼 버리죠. 과거 구충제는 기생충을 기절시켜 배출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복용 후 대변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만일 기생충 감염이 보다 다량으로 있었다면 다 소화되지 않은 기생충들로 인해 복통이나 설사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때 대변을 보고 나면 사체들이 배출되기 때문에 증상이 덜해지죠. 이 정도로 다량의 성충이 있었다면 알도 당연히 존재할 테니 3주 후에 구충제를 한 번 더 복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 구충제를 복용한 후 복통을 호소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알벤다졸 부작용 보고는 어느 정도나 됐을까요?

감염과 화학요법에 발표된 [알벤다졸과 프라지콴텔; 리뷰와 한국에서 안전모니터링]에 의하면 2006년~2015년까지 10년 동안 알벤다졸 부작용 보고는 총 256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중 확실한 것은 1건, 가능성이 있는 것까지 합쳐도 120건에 불과했습니다. 연관 없는 것으로 파악된 것까지 다 합쳐도 256건밖에 안 되죠. 일반의약품인 알벤다졸이 얼마나 팔렸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매우 안전한 약임은 확실합니다.

알벤다졸 복용 후 가장 흔한 부작용으로는 메스꺼움, 구토, 소화불량, 설사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혈압 저하나 빈혈, 두드러기, 부종, 간기능 저하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니 약 복용 후 불편한 증상이 있다면 약사와 바로 상의해주세요.

사실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따로 있습니다. 한국인 기생충 감염 중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간흡충, 폐흡충, 장흡충 등 흡충류 감염입니다. 전체의 70%나 되죠. 흡충류 감염은 주로 해산물 등을 날것으로 먹었을 때 발생하는데요. 이것들은 알벤다졸이나 플루벤다졸로는 제거되지 않습니다. 육류나 해산물을 날것으로 먹고 감염이 일어나는 촌충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때는 프라지콴텔이라는 구충제를 복용해야 해요. 프라지콴텔은 전문의약품으로 반드시 의사에게 처방받아 복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과연 프라지콴텔을 계속 전문의약품으로 분류하는 것이 맞을진 고민이 필요합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과거에 기생충 감염 하면 토양 매개성 감염이었습니다. 그만큼 환자가 많았고 복용 시 부작용도 많지 않기 때문에 알벤다졸은 환자가 직접 선택해 복용할 수 있도록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됐던 것이죠.

그런데 이제 상황이 바뀌어 토양 매개성 감염보다 육류와 해산물에 의한 흡충류 감염이 더 많은 상황입니다. 따라서 일반의약품 구충제 범위가 바뀌거나 더 확장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프라지콴텔은 알벤다졸과 달리 인체 내로 흡수돼 효과를 보이기 때문에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동일한 자료에 의하면 환자들이 2012년~2016년까지 프라지콴텔 총 17만2000정을 복용했는데 부작용 건수는 10년 동안 63건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은 같은 기간 알벤다졸 복용 후 발생한 이상반응의 절반 정도에 해당해요. 프라지콴텔이 매우 안전한 약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약국에서 구충제를 구입하는 분들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회를 많이 먹어 그렇다고 답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알벤다졸은 효과가 없으니 병원가서 처방받으라 안내해드려도 귀찮아서 싫다고 그냥 가시거나 굳이 알벤다졸을 드시겠다고 합니다.

이는 약물 오용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필요 없는 알벤다졸 복용으로 인해 오히려 부작용 위험만 높아질 수 있어요. 삶의 환경이 변한 만큼 구충제 복용에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특히 부작용 우려가 적어 소비자가 셀프메디케이션 할 수 있는 범위라면 더욱 더 일반의약품으로 전환돼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생충 박사 서민 교수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디스토시드와 의사 처방, 2012년 9월 4일 기사) 일부를 발췌하며 칼럼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만일 디스토시드(프라지콴텔)가 회충약처럼 일반약으로 분류되어 의사 처방 없이도 구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 경우 지금처럼 쓸데없이 회충약을 먹는 일이 줄어들고, 현재 3%대를 넘나드는 기생충 감염률도 줄어들지 않을까? 물론 약은 의사가 처방하는 게 원칙이지만, 우리나라의 기생충 감염 상황이 과거와 달라졌고 디스토시드 복용 시 심각한 부작용이 보고된 바도 없으니 국민 건강 차원에서 디스토시드의 일반약 전환을 한 번쯤 고려해 봄 직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유정 2022-01-31 18:16:14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