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식의보감] ‘잣’은 무병장수를 위한 신선(神仙)의 음식이었다
[한동하의 식의보감] ‘잣’은 무병장수를 위한 신선(神仙)의 음식이었다
  • 한동하 한의학 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2.05.16 07: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동하 한의학 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날이 더워지면서 여름철 별미 잣국수가 더욱 생각나는 요즘이다. 잣을 갈아 면을 담가 먹으면 미끈거리는 고소함이 온몸에 퍼진다. 잣만을 이용해 갈아 죽을 끓여 먹기도 한다. 간식으로도 좋고 주식으로 먹어도 좋다. 잣은 예로부터 신선의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무병장수를 위한다면 잣을 먹어보자.

잣은 잣나무의 열매를 말한다. 과거 잣을 칭하는 이름은 많았다. 대표적인 이름으로는 해송자(海松子)가 있지만 송자(松子), 송자인(松子仁), 송실(松實) 또한 대부분 잣을 의미한다. 단 백자(栢子)라는 열매는 측백나무의 열매로 백자인(栢子仁)이라고도 하는 다른 열매로 분류된다.

특히 과거에는 우리나라 잣을 최고로 쳤다. <본초강목>에는 ‘동이(東夷) 사람들은 과일로 삼아 먹기도 하는데, 중국에 있는 송자(松子, 잣)와는 같지 않다’ 또한 ‘신라에서 나는 것은 속살이 매우 향기롭고 맛있다’라고 기록하고 했다. 이에 과거 중국을 방문하는 사신의 진상품으로 잣은 인기가 많았다. 당시 중국의 잣은 약에만 넣어서 사용할 뿐 일반적으로 간식이나 주식으로 삼기에는 맛이 없었기 때문이다.

잣의 성질은 따뜻하다. <동의보감>에는 ‘성질은 조금 따뜻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고 했다. <동의보감>에는 주로 죽을 쑤어 먹으라고 했는데 모든 효능을 설명하면서 말미에 ‘죽을 쑤어 늘 먹으면 아주 좋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섭취할 필요가 있을 때 일시적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죽으로 상복했음을 알 수 있다.

잣은 수명을 늘린다. <향약집성방>에는 ‘장위(腸胃)를 따뜻하게 하고 오래 먹으면 몸이 가볍고 오래 살며 늙지 않는다’고 했다. 갈홍의 <포박자>에는 진나라 자영왕 때 항우의 공격으로 궁에서 산속으로 도망쳐 솔잎과 잣을 먹고 200년이나 살았다는 궁녀의 이야기를 적고 있다. 과장된 면이 없지 않으나 그만큼 건강하게 살고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잣은 문헌에 신선의 식품으로 많이 언급된다.

<본초강목>에는 잣을 섭취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 ‘잣을 복용하는 방법은 7월에 채취한 잣의 껍질을 제거하고 찧어 고(膏)처럼 만들어 둔다. 이것을 달걀만 하게 하여 술에 타서 하루 세 번 복용한다. 복용한 지 100일이 지나면 몸이 가벼워지고 300일이 지나면 500리를 걸어 다니며 곡기를 끊을 수 있고 오래 복용하면 신선이 된다. 갈증이 나면 즉시 물을 마신다’고 했다. 역시 효능은 과장됨이 있겠지만 잣은 무병장수의 식품이면서 술로 담가 오래 복용해야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잣은 피부에도 좋다. <본초정화>에는 ‘피부를 윤택하게 하고 안색을 좋게 한다’고 했다. 잣에는 다양한 비타민(비타민B2, 비타민E 등), 미네랄(철분 등)과 함께 불포화지방산도 풍부해 모세혈관 건강에도 도움을 주면서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고 혈색을 좋게 한다. 이에 다른 견과류와 마찬가지로 심혈관질환에도 좋다.

잣은 작지만 예로부터 무병장수를 위한 신선의 음식으로 여겨졌다. 있는 그대로 즐기거나 죽을 쒀 먹는 등 기호에 따라 다양하게 먹을 수 있는데 과다섭취하면 설사할 수 있어 적정량 섭취해야 한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잣은 변비에 좋다. <본초강목>에는 ‘허비(虛秘)를 치료한다’고 했다. 허비(虛秘)란 몸이 허약한 상태에서 생긴 변비로 주로 병후나 노인성 변비에 해당한다. 과식하면서 생긴 변비보다는 식사량이 너무 적어 몸이 허약하거나 항문에 힘들 주기 힘든 변비환자들에게 도움이 된다. 이 역시 잣에 포함된 불포화지방산과 함께 풍부한 식이섬유 때문이다. 따라서 잣은 많이 먹으면 설사를 하기도 한다.

잣은 기침에도 좋다. <본초강목>에는 ‘잣은 폐를 촉촉하게 하고 폐가 마르고 뭉쳐 나는 기침을 치료한다’고 했다. 폐를 보하는 데는 대표적으로 오미자와 맥문동을 많이 사용하는데 <동의사상신편>에는 ‘정을 기르는 것은 오미자보다 낫고, 폐를 윤택하게 하는 것은 맥문동보다 낫다’고 했다. 저자인 이제마는 사상체질별 약재로서 잣을 태음인 약으로 분류하고 있다. 오미자와 맥문동 모두 태음인 약이다.

<본초강목>에는 마른 기침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잣 1냥(37.5그램)과 호도 2냥을 갈아서 고(膏)를 만든 다음 졸인 꿀 반냥과 함께 섞어 둔다. 이것을 2돈씩 식후에 끓인 물에 타서 복용한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견과류 중에 호두가 기침에 좋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잣과도 궁합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잣은 살을 찌운다. <동의보감>에는 ‘몸이 허하고 마른 데 주로 쓴다. 사람을 살찌게 하고 튼튼하게 한다’고 했다. 따라서 마른 사람에게 특히 좋겠고 비만하거나 다이어트 중이라면 섭취량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미국 농무부(USDA) 자료를 참고하면 잣의 열량은 100g에 678Kcal로 쌀(130Kcal/100g)과 비교했을 때 칼로리가 무척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간혹 살찌는 것이 소원이라는 분들이 있는데 잣을 활용해볼 만하다.

반대로 잣은 다이어트에도 활용할 수 있다. <동의보감>에는 ‘잣을 먹으면 배고프지 않다’고 했다. 따라서 잣을 적절하게 섭취하면 배고픔을 막아 다른 음식의 섭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한의서에 보면 ‘곡물을 끊고자 할 때 잣을 먹는다’고 했다. 많이 먹으면 살을 찌우게 하지만 상대적으로 영양소가 풍부하기 때문에 다른 곡물의 섭취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잣을 조금씩 적절히 섭취하면 특히 쌀과 밀가루 같은 탄수화물을 줄이고자 할 때 도움이 될 것이다.

잣은 관절염에도 좋다. <주촌신방>에는 ‘골관절의 풍(風)에 주로 쓴다’고 했다. 관절의 풍이란 급성으로 나타나는 관절통을 말한다. <본초정화>에는 ‘풍비(風痺)를 치료한다’고 했다. 풍비란 온몸이 저리면서 아픈 증상을 말한다. 따라서 잣은 갑자기 뼈마디가 쑤시고 저리면서 통증이 있을 때 도움이 된다. 통풍(痛風)에도 풍(風)자가 들어가는데 참고로 견과류 중 땅콩을 제외하고는 퓨린함량이 그리 높지 않아 통풍을 악화시키거나 발작을 유발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잣은 두뇌활동에도 좋다. 잣에는 레시틴이 풍부해 뇌의 신경조직 발달과 보호에 도움을 준다. 따라서 건망증, 인지능력 강화, 치매를 예방하는 데도 좋다. 만일 잣을 간식처럼 먹고자 한다면 하루 20~40알 정도면 충분하다. 잣죽을 쑤어 먹겠다면 1회 한 주먹 정도를 활용하면 된다. 횟수와 섭취기간은 나타나는 증상에 따라 달리 하면 될 것이다.

‘진잎죽 먹고 잣죽 트림한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아주 거친 음식을 먹고도 잘 먹은 체하느라고 거드름을 부린다는 뜻이다. 이처럼 과거 잣죽이라면 남 부러울 것이 없는 식사였다. 과거 어르신들에게 식혜나 수정과에 잣을 띄워 올린 것에는 건강을 기원하는 바람이 담겨 있을 것이다. 잣죽 먹고 잣죽 트림을 해 보자. 잣은 작지만 큰 건강효과를 선사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