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훈 교수의 의료기기 이야기] 슬러시주사로 지방성형? ‘아이스슬러리’
[허창훈 교수의 의료기기 이야기] 슬러시주사로 지방성형? ‘아이스슬러리’
  • 글·허창훈 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ㅣ정리·한정선 기자 (fk0824@k-health.com)
  • 승인 2022.06.29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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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창훈 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

어느덧 아이스크림이나 빙수처럼 찬 음식이 반가운 무더운 여름이다. 언제부터인지 주스 등 음료를 살짝 얼려 만든 ‘슬러시’가 어린이들에게는 여름철 대표메뉴가 됐다. 2년 전 미국 하버드대학의 가리비안(Lilit Garibyan) 교수가 슬러시(아이스슬러리, ice slurry)를 주사해 지방층을 줄이는 논문을 출간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아이스슬러리 제조기와 아이스슬러리(출처=미국의학레이저학회 공식유튜브채널)

하지만 2달 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개최된 미국의학레이저학회 발표를 통해 많은 의학자들이 새로운 의료기기의 탄생을 알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슬러리’는 흙탕물처럼 온도와는 무관한 액체와 고체의 혼합물을 의미하지만 ‘슬러시’는 얼음이나 눈이 살짝 녹은 상태로 ‘아이스슬러리’는 결국 ‘슬러시’와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팝시클이라는 얼음과자에 의해 뺨에 지방염이 생기는 보고에 착안해 2010년에 이미 냉동지방분해 의료기기를 시판해 대박신화를 이룬 하버드 의대 연구팀이 이번에는 주사용 냉매를 직접 주입하는 연구를 진행한 것이다.

아이스슬러리 주사기. 일반주사기에 온도저하를 막아주는 보호막이 있다. 주삿바늘은 14~15게이지를 사용한다(출처=성형재건외과 국제오픈(Plast Reconstr Surg Glob Open) 2021;9:e3818).

의료용 아이스슬러리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온도를 낮추면 조직의 산소요구량을 줄이고 기초대사량을 줄이기 때문에 허혈성손상으로부터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심혈관계수술과 장기이식수술에서 이미 사용돼 왔지만 외부에 접촉시켜 온도를 낮추기 위한 방법으로만 사용됐을 뿐 주사용으로 개발된 생체적합형 아이스슬러리는 없었다.

가리비안 교수는 여러 조합으로 실험한 결과 최종적으로 생리식염수와 10%의 글리세롤을 섞어 영하 4.8도의 아이스슬러리를 만들어 주사했으며 첫 연구에서는 식품용 슬러시를 만드는 기기를 소독해 동물실험을 진행했다.

아이스슬러리 1회 주사 후 8주후의 돼지 피부(출처=성형재건외과(Plast Reconstr Surg) 2020 Apr;145(4):725e-733e).

인체와 가장 유사한 돼지 피부의 경우 30ml의 아이스슬러리를 1회 주사하고 8주 후 지방의 55%, 약 15ml를 주사하면 25% 감소됐음을 보고했으며 또 다른 논문을 통해 아이스슬러리주사로 신경섬유도 마비시킬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후 12명의 자원자를 대상으로 안전성인체시험도 진행했는데 통증은 10점 만점에 0~5점까지 다양하게 나타났고 과반수 이상에서 며칠 동안 홍반, 부종, 멍이 발생했지만 대부분의 부작용은 2주만 지나면 사라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가리비안 교수 연구팀은 수면무호흡증후군이 혀 속 지방조직비대와 관련 있다는 사실에 착안, 수면무호흡증후군 치료연구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비록 많은 의학자들이 아이스슬러리주사로 간편한 지방성형효과를 보고 싶어 하지만 뱃살을 빼기 위해 가리비안 교수의 첫 동물실험논문을 따라 만든 아이스슬러리 1리터를 주사한 66세의 여성환자가 급성신부전으로 응급실로 실려 갔다는 보고도 있어 적정치료법에 대한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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