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자생식물 주권확보, 이름 제자리 찾기부터 시작해야
[특별기고] 자생식물 주권확보, 이름 제자리 찾기부터 시작해야
  • 글·최영태 국립수목원장ㅣ정리·헬스경향 양정원 기자 (desk@k-health.com)
  • 승인 2022.07.28 09: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영태 국립수목원장

우리는 누구나 좋은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뜻과 소리를 염두에 두고 이름을 짓는다. 또 나쁜 이름은 법적 절차를 거쳐 바꾸기도 한다. 이름이 가지는 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름을 불렀을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는 김춘수 시인의 시구처럼 식물의 이름은 단순히 특징을 나타내는 것을 넘어 그 식물의 존재의미와 생태적 가치, 자생지역의 역사적 의미, 민족문화까지도 내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식물은 일본과 중국에 비해 100년 뒤에야 서양에 알려졌다. 1800년대 중반 러시아군함이 동해안을 측량하면서 철쭉 등 50여종의 목본을 수집해 서구로 보낸 것을 시작으로 영국, 독일, 러시아 등이 한반도 식물을 수집, 학술지에 발표하면서부터였다.

특히 본격적인 한반도 식물조사는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의 지원 아래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 1882-1952)에 의해 이뤄졌다. 그는 1909년 한반도의 식물을 함경남북도, 주로 원산시역을 중심으로 처음 조사를 시작, 1914년 ‘조선의 식물지(Flora of Koreana)’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이후 본격적인 조사를 통해  ‘조선식물(朝鮮植物)’(1914)과 ‘조선삼림식물편(朝鮮森林植物編)’(1915∼1939)을 발표했다.

이때 조사된 채집품은 1만4000여점에 달하며 대부분 도쿄대학교 식물표본관에 소장돼 있다. 이중 많은 식물이 나카이에 의해 최초로 기재됐으며 전체 채집표본의 약 7%인 980여점이 기준표본(Type specimen)으로 인용됐다.

나카이에 의해 신규 발표된 학명에는 일본식 지명이나 일본인의 이름이 올라갔다. 보라색 꽃이 아름다운 금강초롱꽃이 대표적인 예이다. 금강초롱꽃의 학명은 ‘Hanabusaya asiatica Nakai’로 당시 초대 일본공사였던 하나부사 요시카다의 이름을 땄다. 섬초롱꽃, 섬기린초, 섬현삼, 섬꼬리풀 등은 독도의 일본식 이름인 다케시마(Takeshima)가 종소명으로 포함돼 있다.

식물은 일반적으로 두 종류의 이름을 가진다. 한 가지는 학명(Scientific name)으로 '조류, 균류와 식물에 대한 국제명명규약(이하 명명규약)'에 의해 전 세계적으로 정당하게 발표된 하나의 이름을 공통으로 사용하게 된다. 학명은 안정성을 근간으로 선취권을 인정한다. 학명이 변경되는 경우는 연구를 통해 대상 식물종이 다른 속 또는 종하분류군으로 옮겨가 학명이 변경되거나 다른 종으로 통합되는 경우 등이 있다.

다른 속으로 옮겨가더라도 종소명은 그대로 유지되는데 단 옮겨간 속에서 같은 종소명이 사용된 경우가 있을 때 이름이 바뀌게 된다. 따라서 일본식 종소명이 붙어있는 식물의 이름에서 그 잔재를 완전히 없애기는 매우 어렵다.

식물의 학명은 명명규약에 따라 명명되며 ‘학명은 단순히 그 학명이나 해당 소명이 어울리지 않거나 맞지 않을 경우 또한 이보다도 다른 학명이 더 선호되거나 더 잘 알려지거나 학명이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이유만으로 폐기할 수 없다’(명명규약 제 51조). 또 식물의 학명은 정당공표되고 합법적인 이름 중 분류학적 또는 명명학적 연구결과에 따라 선택된다.

나머지 하나는 일반명이다. 일반명은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우리가 쓰는 한글식물이름은 모두 일반명에 해당된다. 각 국가는 자국어로 된 고유한 식물이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식물의 국명(일반명)은 시대상황 및 맞춤법의 변화, 지역특성에 따라 동일식물에 서로 다른 이름이 붙여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산림청 국립수목원은 2007년 한국식물분류학회와 함께 국가적 차원에서 우리나라 식물자원에 대한 표준화된 목록인 ‘국가표준 식물목록’을 발간했다.

국가표준 식물목록은 우리나라 식물에 대한 올바른 학명과 알려진 모든 일반명을 연구․정리하고 국가수목유전자원목록심의회의 객관적 심의과정을 거쳐 표준화된 학명과 국명 사용을 장려했다. 그 결과 같은 식물에 여러 식물명이 혼용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심각한 정보전달 또는 의사소통의 오류를 해소하고 체계적인 국가식물자원관리가 가능하게 됐다. 또 우리나라 식물분류학계를 발전시키고 학계 및 일반인에게 우리 식물이름의 기준이 됐다.  

2014년 나고야의정서 발효 이후 자국의 생물주권에 대한 관심과 중요도는 어느 때보다 커졌으며 체계적인 목록작성을 통한 우리 식물의 주권확보는 필수적이다. 국립수목원은 자생식물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조사를 통해 신종 및 미기록종 발굴과 함께 지속적인 국가표준 식물목록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도 산림청 국립수목원은 산림생물종 보존·관리의 선도기관으로서 한반도에 분포하는 모든 식물종에 대한 학명과 국명을 연구·정리하고 지속적인 연구와 국제학회에서의 연구 활동을 통해 우리 식물이 국제사회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도록 꾸준히 노력하고자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