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식의보감] 꿈뜰꿈뜰 굼벵이는 ‘미래식량’이자 훌륭한 ‘약’이다
[한동하의 식의보감] 꿈뜰꿈뜰 굼벵이는 ‘미래식량’이자 훌륭한 ‘약’이다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2.12.1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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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얼마 전 방송에서 미래식량으로 애벌레가 소개된 적이 있다. 애벌레는 말려서 과자로 만들기도 하고 각종 먹거리의 원료로 사용된다. 영양도 풍부하고 맛도 좋다고 한다. 굼벵이도 마찬가지다. 처음 접하는 분들은 굼벵이를 먹는 것에 대해 징그럽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굼벵이는 과거부터 훌륭한 약이었다.

굼벵이는 애벌레의 일종이다. 특히 장수풍뎅이나 딱정벌레의 유충인 애벌레를 굼벵이라고 부른다. 번데기와 혼동하기도 하는데 굼벵이는 애벌레 상태를 말하고 번데기는 굼벵이가 성충이 되는 과정에서 코쿤이라는 누에고치처럼 생긴 둥근 고치에서 생육하는 상태를 말한다. 사실 번데기를 먹는다면 굼벵이를 못 먹을 이유가 없다.

굼벵이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식품으로 일시적 허가를 받았다. 원래 딱정벌레의 일종인 갈색거저리의 애벌레 고소애(밀웜)만 허가됐으나 풍뎅이의 일종인 흰점박이꽃무지 굼벵이도 일시적으로 허가된 것이다.

식품 허가와 무관하게 굼벵이는 오래전부터 약으로 사용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딱정벌레목 꽃무지과 풍뎅이, 점박이꽃무지, 흰점박이꽃무지, 점박이풍뎅이, 흰점박이풍뎅이, 애점박이꽃무지의 유충을 통틀어 굼벵이라고 통칭해 약용했다.

옛날에는 썩은 나무 속이나 두엄 속, 오래된 초가집의 볏짚 지붕을 다시 이을 때 굼벵이를 구했다. 썩은 나무 중에서도 뽕나무와 측백나무, 버드나무에서 자라는 것이 좋다고 했는데 초가집 볏짚 속에 사는 굼벵이도 약으로 많이 사용했다. 특히 겨울철에 잡은 굼벵이가 가장 좋다고 했다.

굼벵이는 한자로 제조(蠐螬)라고 한다. <본초강목>에서는 ‘물건을 좀먹는 소리를 형상화한 것이다’라고 했다. 실제로 굼벵이들을 모아놓으면 ‘사각사각’ 소리가 난다. 굼벵이는 약으로 사용할 때는 생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말려서 가루 내기도 했다. 가루 내는 방법으로는 <동의보감>에 ‘굼벵이를 잡아 그늘에서 말리고 찹쌀과 함께 볶는다. 찹쌀이 그을면 꺼내어 입 주위와 몸통의 검은 것을 버리고 쓴다’고 했다.

굼벵이는 맛이 짜고 성질은 약간 따뜻하면서 독이 있다. 어떤 한의서는 약간 서늘하다고 하기도 했다. 이제마는 <동의수세보원>에서 굼벵이를 태음인 약으로 분류해 놓았으나 기타 체질에 활용해도 무난하다.

굼벵이는 몸에 이로운 영양성분이 풍부해 예로부터 훌륭한 약으로 활용됐다. 이에 미래의 인류 건강을 위한 새로운 식량으로 주목받고 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굼벵이는 혈액순환을 촉진한다. <본초강목>에는 ‘굼벵이는 악혈(惡血)과 어혈(瘀血), 비기(痺氣)와 골절상, 어혈이 옆구리에 있어 단단하고 그득해져 아픈 증상을 치료한다. 뼈가 부러지거나 삐어 생긴 어혈이 뭉친 증상을 치료한다’고 했다. 또 ‘월경이 막힌 증상을 치료한다. 혈병(血病)을 주치하고 통증을 멎게 한다’고 했다.

악혈(惡血)과 어혈(瘀血)은 제반 혈액순환 장애를 말한다. 최근 굼벵이에 혈액응고 억제, 혈전형성 억제, 혈소판응집 억제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보고됐다. 이는 기존 한의서의 어혈을 제거한다는 효능을 뒷받침한다. 굼벵이는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진통작용이 있어서 교통사고 후유증에도 사용해볼 만하다. 이때는 말린 굼벵이를 불에 쫴 가루 내 술에 타 먹는 것이 좋다.

굼벵이는 출산 후 유즙 분비를 촉진한다. <본초강목>에는 ‘굼벵이는 출산 후 속이 찬 증상을 치료하고 젖이 나오게 한다’고 했다. 굼벵이는 먼 옛날부터 약이나 식품으로도 사용했지만 당시 옛날 사람들도 징그럽다고 여긴 것 같다. 또 ‘돼지발굽과 함께 국을 끓여 유모에게 먹게 하는데 알아채지 못한다’고 했다. 이 내용을 보면 당시에도 굼벵이를 먹는 것을 꺼려 했던 것 같다. 돼지발굽은 그 자체로도 유즙 분비를 촉진하는데 굼벵이와 함께 먹으면 더 효과적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굼벵이는 안구건강에도 좋다. <본초강목>에는 ‘눈의 군살과 푸른 예막과 흰 막이 생긴 것을 치료한다’고 했다. <동의보감>에는 ‘예장(瞖障, 백내장의 일종)을 없애고 청맹(靑盲, 실명 질환의 일종)을 치료한다. 생굼벵이의 즙을 내어 눈 속에 떨어뜨리거나 불에 쬐어 말려서 가루 내어 먹는다’고 했다.

<본초강목>에는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성충이란 사람의 어머니 왕씨가 눈이 멀었는데, 계집종이 굼벵이를 잡아서 쪄 익혀 먹이자 왕씨는 그것을 맛있다고 하면서 잘 먹었다. 성충이 돌아와 그 일을 알아차리고는 어미를 끌어안고 통곡을 하자 어미의 눈이 곧바로 뜨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내용은 아마도 영양결핍으로 인한 시력상실에 굼벵이를 먹고서 시력이 회복됐던 경험을 기록한 것 같다.

동물성 영양소인 비타민B12(코발라민)는 엽산과 함께 시력상실의 원인이 되는 황반변성의 진행을 늦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실제로 굼벵이에는 비타민B12가 풍부하다. 참고로 엽산은 녹황색 채소에 풍부한데 열에 약해 생으로 먹어야 손실을 막는다. 따라서 동물성 식품을 거의 먹지 않고 채소를 항상 끓이거나 익혀 먹으면 비타민B12와 엽산이 결핍될 수 있다. 위 기록이 사실이라면 성충의 어머니 왕 씨는 영양결핍에 의한 실명이었을 것이다.

굼벵이는 영양의 보고다. 무엇보다 단백질과 아미노산, 칼슘, 마그네슘, 인, 아연 등의 미네랄은 물론 비타민A(레티놀), 비타민B군 등 다양한 비타민성분도 풍부하다. 이에 굼벵이를 미래식량이라고 한 것이다.

굼벵이는 구순염이나 구내염, 후두염에도 좋다. <본초강목>에는 ‘굼벵이는 입술이 헌 데가 생긴 것을 치료한다’고 했다. ‘어린아이의 순긴(脣緊, 구순염)에 굼벵이를 가루내서 돼지비계에 개어 발라준다’고 했다. 또 ‘붉거나 흰 구창(口瘡, 구내염)에 생굼벵이를 갈아 낸 즙을 자주 발라주면 효과가 난다’고 했다. 굼벵이는 피부나 점막의 염증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굼벵이가 아니더라도 굼벵이 말린 것을 물에 섞어 발라줘도 도움이 된다.

많은 문헌에 보면 굼벵이는 파상풍이나 쇠붙이에 상처를 입었을 때 발생하는 단독(丹毒, 급성 감염성 피부염), 호랑이에 물려서 난 상처, 대나무가 살 속에 박혔을 때 등등 다양한 외과적인 상처에 사용한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을 보면 굼벵이는 소염작용과 상처회복을 촉진하는 효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하찮아 보여도 나름대로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굼벵이를 감히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굼벵이는 미래 인류를 먹여 살릴 소중한 식량자원이자 미래 인류의 새로운 건강원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굼벵이도 먹으려면 귀하다’라는 속담이 생겨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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