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식의보감] 병들어 죽은 ‘누에(백강잠)와 누에 번데기’, 사람에겐 귀한 ‘약’
[한동하의 식의보감] 병들어 죽은 ‘누에(백강잠)와 누에 번데기’, 사람에겐 귀한 ‘약’
  • 한동하 한의학 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2.12.2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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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 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과거에는 뽕잎을 먹여 누에를 키우는 경우 직접 누에고치를 잘라 그 안의 번데기를 볶아 먹기도 했다. 누에 번데기는 영양분이 풍부하면서도 맛있는 간식이었다. 누에는 명주실을 만드는 원료로 사용됐는데 누에를 키우던 중 하얗게 병들어 말라죽은 누에는 약으로 사용했다.

누에는 누에나방과에 속하는 누에나방의 유충(애벌레)이다. 누에를 키우는 곳을 잠실(蠶室)이라고 하는데 서울의 잠실이란 지명도 뽕나무밭이 많아서 누에를 키우는 곳이었다. 요즘 젊은사람들에는 생소한 양잠업(養蠶業)의 의미도 누에고치를 키워 소득을 내는 일을 말한다. 이때 잠(蠶)은 누에를 의미한다.

누에를 키우다 보면 하얗게 말라 죽어 있는 것들이 있다. 이것을 백강잠(白殭蠶)이라고 한다. 정확하게는 백강잠은 누에가 백강병균의 감염 또는 인공접종에 의해 백강병으로 경직돼 죽은 충체를 말한다. 백강잠(白殭蠶)은 색은 흰색[白]이고 단단하게 굳은[彊] 누에[蠶]라는 의미다. 한의약에서는 백강잠을 약으로 많이 사용했다.

과거 백강잠은 당뇨병에 특효로 알려져 있었다. 20여년 전만 해도 경동시장 약제사장에 가보면 길거리에 백강잠을 놓고 ‘당뇨병에 특효’라고 푯말을 적어 놓고 파는 할아버지들도 많았다. 실제로 동물실험 결과 백강잠 추출물이 혈당강하 효과뿐 아니라 혈중 인슐린 분비를 증가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참고로 백강잠은 현재 식품 허가품목이 아니기 때문에 한의원에서 한의사들만 처방 가능하다.

인터넷에 나오는 백강잠 분말은 복용하면 안 된다.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백강잠은 식용이 아니고 비누나 화장품 원료로 유통되는 것이다. 식품으로는 ‘누에분말’ 또는 ‘누에가루’ 등이 유통되고 있다. 최근에는 백강잠이 아닌 누에 자체를 이용한 연구도 활발한데 누에 자체도 혈강강하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백강잠은 비록 말라 죽은 누에지만 어린아이의 경기, 피부 가려움증, 급성후두염 등에 효과적으로 사용되는 등 사람에게는 여러모로 귀한 약이 돼 왔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백강잠은 맛이 짜고 매우며 성질은 평이하고 독은 없다. <본초강목>에는 ‘강잠(殭蠶)은 누에가 풍병(風病)으로 죽은 것이다. 풍(風)을 치료하고 담(痰)을 삭이며 뭉친 것을 흩어 내고 경락을 운행하니 그 기운이 서로 감응하기 때문에 뜻대로 부리는 것이다’라고 했다. 일종의 동기상구(同氣相求)로 풍병에 걸린 것을 이용해서 풍을 치료한다는 것이다.

백강잠은 어린아이의 경기와 야제(夜啼)를 치료한다. <본초강목>에는 ‘어린아이의 경간(驚癎)과 밤에 우는 증상을 치료한다’고 했다. 아이가 갑자기 사지가 굳으면서 발작을 일으키는 것을 경기라고 한다. 백강잠은 감기 후 고열로 인한 열성경기에 도움이 된다. 또 밥을 잘 먹고 튼실하면서도 짜증과 화를 잘 내는 소아경기에 사용할 수 있다.

<본초정화>에는 ‘소아의 경간과 야제(夜啼)가 심허(心虛)나 혈허(血虛)가 원인이고 외사(外邪)가 없는 경우라면 사용하면 안 된다. 요즘 소아의 경간을 치료할 때 허실을 가리지 않고 모두 구분 없이 쓰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라고 했다. 몸이 너무 허약하고 심약한 아이들의 경기에는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고열이나 별다른 신경학적인 질환이 아니더라도 뇌발달이 미성숙 상태이기 때문에 생리적인 상태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백강잠은 사람의 안색을 좋게 한다. <본초강목>에는 ‘검은 반점이 생긴 것을 없애며, 사람의 안색을 좋게 만든다’고 했다. 이때는 주로 가루 내 외용제로 사용했다. ‘얼굴이 검어지는 증상에 백강잠 가루를 물에 개어 얼굴에 발라 준다. 얼굴에 기미와 주근깨가 끼는 증상에 사람의 안색을 좋게 한다. 백강잠, 흑견우(나팔꽃씨), 세신 같은 양을 가루 내고 비누처럼 만들어 날마다 쓴다’고 했다. 백강잠 가루를 꿀에 개어 발라주는 방법으로도 사용했다. 현재 인터넷에 백강잠이 비누나 화장품 원료로 허가받아 유통되는 근거가 될 수 있는 내용들이다.

백강잠은 피부가 헌 곳이나 가려움증, 감각장애에도 좋다. <동의보감>에는 ‘기미와 창(瘡)의 흉터를 없애며, 모든 풍질(風疾)로 피부가 가렵거나 저린 것을 치료한다’고 했다. 이에 피부의 감각이 둔해지는 마목감(痲木感), 피부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가려울 때, 두드러기 증상, 어린선(魚鱗蘚)에도 백강잠을 처방하기도 한다. 이때는 먹어서 치료한다.

한의학에서는 피부의 감각장애나 가려움증의 원인을 풍(風)으로 보기도 하는데 이때 백강잠이 효과적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백강잠은 풍(風)으로 죽은 것으로 피부의 풍사(風邪)를 제거하는 것이다. 또 발작적으로 기침하는 경우, 목 안이 간질거리면서 기침을 할 때도 임상비법이 된다.

백강잠은 급성 후두염이나 편도선염에 좋다. <본초강목>에는 ‘중풍으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증상, 급성 후비(喉痺, 후두염)로 죽을 것 같을 때를 치료한다’고 했다. 심지어 목구멍이 붓고 아픈 증상이나 후비에는 목구멍에 들어가기만 하면 바로 나으며, 효과가 나지 않는 경우가 없으니 크게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까지 했다.

이때 먹어서도 좋지만 백강잠을 달여서 가글해도 좋고 백강잠 용액을 작은 스프레이에 넣어서 자주 뿌려줘도 좋다. 또 백강잠 가루를 대롱을 이용해서 해당 부위에 불어주는 방법도 있는데 이때는 자칫 가루가 기도로 들어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누에 번데기는 잠용(蠶蛹) 또는 잠용자(蚕蛹子)라고 했다. <동의보감>에는 ‘성질이 평(平)하고 맛은 달며 독이 없다. 풍과 허로로 야위는 것을 치료한다’고 했다. 누에 번데기는 식용으로도 아주 오래전부터 먹었다. <본초강목>에는 ‘잠용(蠶蛹, 누에 번데기). 오서(吳瑞)가 말하기를 누에고치를 켠 뒤의 용자(蛹子, 번데기)가 된 것을 지금 사람들이 먹는데, 이것을 소봉아(小蜂兒)라고 한다’고 했다.

오서는 <일용본초>를 지은 원나라 문종 때 의사다. 이를 보면 중국에서 누에 번데기의 식용역사는 최소 이보다 이전으로 여겨진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양잠(養蠶)은 중국을 통해서 유입됐으며 삼한시대 이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또한 역사가 오래된 것을 알 수 있다.

누에 번데기는 소갈(消渴)에 사용했다. <태평성혜방>에는 ‘소갈과 열을 치료하고 혹은 심신이 번란한 것을 치료한다. 잠용(蠶蛹, 누에 번데기) 1냥에 청주와 물을 넣고 물의 양이 증발될 때까지 달여서 맑힌 다음 번데기를 빼내고 그 물을 따뜻하게 하여 복용한다’고 했다. 백강잠의 기록에 소갈을 치료한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누에 번데기가 소갈을 치료한다는 것을 보면 앞서 백강잠이 당뇨병에 특효였다는 효능도 추론 가능하다.

누에 번데기는 염증과 상처를 빠르게 아물게 한다. <주촌신방>에는 ‘도검상(刀劍傷)에는 잠용(蠶蛹)을 가루로 만들어 바르면 완전히 아문다. 다른 창종(瘡腫)이라도 새살을 만들고 벌어진 곳을 아물게 한다’고 했다. 애벌레나 번데기는 아주 빨리 자라게 하는 유전자적 특성이 있기 때문에 다른 동물의 상처 또한 빠르게 회복시키는 효능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백강잠이나 누에 번데기를 보면 세상만물이 모두 약이라는 생각이 든다. 선조들은 옷감을 얻기 위해 키우던 누에가 병들어 죽어도 버리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백강잠은 결국 누에나방이 되지 못했지만 사람의 건강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결코 아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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