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식의보감] 식량부터 약, 화장품까지…‘달팽이’의 만능 효과
[한동하의 식의보감] 식량부터 약, 화장품까지…‘달팽이’의 만능 효과
  • 한동하 한의학 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3.01.0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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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 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달팽이 요리하면 프랑스가 떠오른다. 프랑스 요리 중에는 ‘에스카르고(escargot)’라 불리는 유명한 달팽이요리가 있다. 누군가는 ‘달팽이를 어떻게 먹어?’라고 놀라지만 알고 보니 달팽이는 동양에서도 즐겨 먹었다. 아니 약으로 사용해왔다. 오늘은 한의서에 기록된 달팽이의 효능에 대해 살펴보자.

달팽이는 달팽이과에 속하는 연체동물을 총칭하는 이름이다. 한자어로는 보통 와우(蝸牛)라 쓴다. <본초강목>에는 ‘와우(蝸牛)는 모양이 과(瓜) 자와 비슷하고 소와 같은 뿔이 있으므로 이렇게 이름 지어졌다’라고 했다. 달팽이 머리에는 4개의 더듬이가 있는데 위에 있는 큰 더듬이 2개가 마치 소의 뿔처럼 보이는 것이다.

<장자>에는 달팽이의 왼쪽 뿔 위에 있는 나라를 만(蠻), 오른쪽 뿔 위에 있는 나라를 촉(觸)이라 하는데 지극히 하찮은 일로 서로 다투는 인간사를 비유해서 ‘만촉(蠻觸)의 싸움’이라고 표현한 내용이 나온다. 일종의 ‘우물 안 개구리’ 같은 것이다.

와우(蝸牛)는 집진 달팽이를 말하고 집이 없는 민달팽이는 활유(蛞蝓)라고 한다. 문헌을 보면 활유의 약성은 집진 달팽이인 와우와 비슷하다고 했다.

달팽이는 성질이 차면서 맛은 짜고 독은 없다. <본초강목>에는 ‘약간 독이 있다’고 했다. 달팽이를 약으로 사용할 때는 말려서 볶아서 쓴다고 했다. 달팽이 효능의 제강으로 <본초강목>에서는 ‘와우가 여러 가지 병을 주치하는 것은 대체로 열을 풀어주고 독을 없애는 효능을 취한 것이다’라고 했다. 쉽게 말하면 달팽이는 청열해독(淸熱解毒)제인 셈이다.

달팽이는 구안와사에 사용했다. <동의보감>에는 ‘적풍(賊風)으로 입과 눈이 돌아간 것을 치료한다’고 했다. 적풍(賊風)은 바람을 맞았다는 말이다. 입과 눈이 동시에 돌아간 것을 구안와사라고 하며 말초성 안면신경마비의 증상이다. 참고로 중풍에 의한 안면마비는 눈은 정상이고 입만 돌아간다.

달팽이는 염좌에 좋다. <동의보감>에는 ‘발을 삔 것에 쓴다’고 했다. 구안와사나 염좌에는 구체적인 적용법이 나와 있지 않지만 아마도 먹어서 치료하는 것보다는 생달팽이를 으깨 안면마비 부위나 염좌 부위에 붙이는 방법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달팽이는 탈항에도 좋다. <본초강목>에는 ‘대변을 보다 항문이 빠진 증상을 치료한다’고 했다. <부인대전양방>에는 ‘대장에 오랫동안 허냉(虛冷)이 쌓여 매번 대변 볼 때 항문이 빠지고 거둬들일 수 없는 것을 치료한다. 와우 한냥을 껍질을 제거하고 생것을 간다. 이것을 돼지기름과 섞어서 바르면 바로 수축하게 된다’고 했다. 달팽이는 조직을 부드럽게 하면서도 수축시키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달팽이는 치질에도 좋다. <동의보감>에는 ‘치질로 가려울 때는 강물로 자주 씻고 달팽이를 갈아서 바른다’고 했다. <본초강목>에는 ‘여러 가지 종독(腫毒)과 치루(痔漏)를 치료한다’고 했다. <의방합편>에는 ‘치창(痔瘡)으로 통증이 있는 경우에 와우를 그늘에서 말려 가루 내어 바르면 바로 낫는다. 참기름에 달팽이를 반 달쯤 담갔다가 그 기름을 환부에 바르면 또한 효과가 있다’고 했다. 달팽이는 피부 조직이 헐어서 나타난 창(瘡)을 아물게 하는 효과가 있다.

달팽이는 발작을 치료한다. <동의보감>에는 ‘경간(驚癎)을 치료한다’고 했다. 또 ‘갓난이의 경풍에 쓰는 약 중에 가장 좋다. 곱게 갈아서 약에 넣어 쓴다’고 했다. <본초강목>에는 ‘어린아이의 제풍(臍風)과 촬구(撮口)를 치료한다’고 했다. 제풍과 촬구는 소아 경간에 나타나는 증상이다. 앞선 사용법으로는 주로 피부에 붙여서 적용했으나 먹는 방법으로 치료 효과를 나타냈다. 달팽이는 단단하게 굳으면서 나타나는 강직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

달팽이는 식량부터 약, 화장품까지 알고 보면 인간의 삶과 건강에 큰 도움을 준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달팽이는 갈증을 줄인다. <동의보감>에는 ‘소갈(消渴)을 멎게 한다’고 했다. <본초강목>에는 ‘생것을 갈아서 낸 즙을 마시면 소갈이 멎는다’라고 했다. 또 ‘소갈을 치료하는데, 모양이 둥글고 큰 와우 14마리를 물 3홉과 함께 새지 않는 그릇에 하룻밤 담가 둔다. 이 물을 마시는데, 불과 세 번이면 낫는다’고 했다. 달팽이는 촉촉하고 끈적거리기 때문에 습(濕)이 많다. 따라서 소갈 등의 조(燥)한 증상에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달팽이는 대소변이 나오지 않을 때도 사용했다. <동의보감>에는 ‘와우고(蝸牛膏, 달팽이를 찧어서 고약처럼 만든 것)는 대소변 불통을 치료한다. 달팽이 3마리를 껍질째 질게 찧은 것에 사향을 조금 넣는다. 이것을 배꼽에 붙이고 손으로 문지르면 곧 대소변이 나온다’라고 했다. 아마도 피부자극 증상과 마찰을 통해 장운동을 촉진시키고 속을 따뜻하게 하는 결과로 생각된다.

<본초강목>에는 ‘후비(喉痺)를 없애며, 코피를 멎게 하고, 귀가 먹은 것을 통하게 한다’고 했다. ‘후비로 부어올라 목구멍이 막힌 증상 : 와우를 면에 싸서 물에 적신 다음 이것을 입에 물고 있으면 잠시 뒤에 소통된다’고 했다. 특히 ‘코피가 멎지 않는 증상에는 햇볕에 말린 와우 1마리와 갑오징어 뼈 반 돈을 가루 내어 코에 불어 넣는다’고 했다. 이러한 효과는 달팽이에 소염진통효과와 함께 상처 회복을 촉진해 지혈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달팽이의 끈적이는 뮤신도 약으로 사용했다. <본초강목>에는 ‘발배(發背)의 초기에 살아 있는 와우 200개에 새로 길어 온 물 1잔을 넣은 다음 뜨거운 물에 하룻밤 동안 중탕한다. 여기서 나온 거품만 가지고 좋은 조개가루에 개어 창(瘡)에 발라 준다. 하루에 십여 차례 하고 환부에서 열과 통증이 멎으면 창이 낫는다’고 했다. 발배(發背)란 종기나 등창과 같은 등에 난 화농성 피부질환을 말한다.

달팽이는 얼굴의 창(瘡)을 치료했다. <약산호고종방촬요>에는 ‘얼굴의 독창(毒瘡) 초기에 쓴다. 달팽이 2마리를 장(漿) 약간과 함께 찧어서 종이 위에 발라 병소에 붙이면 바로 낫는다. 종이에 작은 구멍 하나를 내어 놓아 독기가 빠져나가게 한다. 대단히 효과가 좋다’고 했다.

이것은 바로 달팽이 몸체에서 분비되는 뮤신을 외용제로 사용한 것이다. 실제로 시중에는 달팽이 크림 또는 에스카르고 크림 등으로 해서 화장품이 유통되고 있다. 해당 제품들의 설명을 보면 달팽이 점액 속 뮤신(글라이코사미노글리칸)을 함유했다고 돼 있다.

달팽이껍질도 와각(蝸殼)이라고 해서 약으로 사용했다. <본초강목>에는 ‘온갖 감병(疳病)을 치료한다. 충치, 얼굴에 생긴 붉은 창, 코에 생긴 주사비, 오랜 설사로 항문이 빠져나오는 증상 등을 치료한다’고 했다. 감병(疳病)은 소아가 위장장애로 인한 몸이 마르는 병증을 말한다. 내용을 보면 달팽이 자체와 효과가 비슷하다.

하찮아 보이는 달팽이에게 다양한 효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식량으로 먹기도 했고 약으로 먹기도 했고 외용제로도 활용했다. 심지어 피부건강을 위해서도 다용됐다. 달팽이의 두 뿔은 서로 만족을 모르고 다툰다지만 그래도 달팽이는 얇은 껍데기라도 편하게 쉴 곳으로 삼아 안분지족(安分知足)하며 살아간다. 달팽이에는 인간사와 건강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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